- 이름과 식판만 보고 내가 만들어 낸 사람
병동에는 환자가 있고, 주방에는 그분들의 이름표가 먼저 도착한다. 나는 매일 백 명이 넘는 환자의 식사를 준비하지만 얼굴을 모르는 분이 많다. 이름표에 적힌 식이와 음식의 양을 보고 한 끼를 준비한다. 업무에 필요한 정보는 익숙해져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
한동안 2병동의 A 환자를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에서 먼저 그런 인상을 받았다. 돌아오는 식판도 유난히 단정했다. 사용한 그릇과 종지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나는 깔끔한 분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 그 단정함을 여성이라는 짐작에 보탰다.
A 환자의 식판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간장이 따로 나가 종지가 하나 더 놓였다. 보통 네 개가 놓이는 자리에 그분에게는 다섯 개가 있었다.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식판은 매일 알아보았다.
어느 날 그 식판에 약봉지 하나가 딸려 왔다. 적힌 이름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없었는데도 내 짐작이 더 확실해진 기분이었다. 같은 정보를 한 번 더 보았을 뿐인데, 근거가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받아들였다.
얼마 뒤 요양보호사에게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2병동 A 여성 환자분, 대충 나이가 어떻게 돼요?”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 환자 남자분인데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의 성별을 이미 사실처럼 말하고 있었다. 질문은 나이를 묻는 형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확인하지 않은 답이 들어 있었다.
실제로 알고 있던 것은 이름과 식이, 간장이 따로 나간다는 것, 식판이 단정하게 돌아온다는 것뿐이었다. 단정함이 성별을 알려 주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그릇을 포개 놓았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빈칸을 채운 것은 내 고정관념이었다.
수학을 가르치다 비슷한 장면을 만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풀이가 맞는 것 같은데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질문했다. 식을 따라가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이 삼각형이 직각삼각형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학생이 되물었다.
“이거 직각삼각형 아니에요?”
그림은 그럴듯했다. 한 변은 수평이고 다른 변은 수직에 가까웠다. 얼핏 보면 두 선분이 직각으로 만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직각기호도 없었고, 문제의 조건에도 직각이라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보여도 주어진 조건이 없으면 단정하면 안 돼. 직각이라는 걸 먼저 확인하거나 증명해야 해.”
그 말을 하고 나니 A 환자가 떠올랐다. 학생은 그림에 없는 조건을 보탰고, 나는 이름표에 없는 정보를 보탰다. 둘 다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수학 문제에서는 조건 하나를 잘못 읽으면 그 뒤의 계산이 아무리 정확해도 답이 달라진다. A 환자에 대한 내 생각도 그랬다. 여성이라는 짐작을 먼저 세운 뒤 단정한 식판을 그 짐작에 맞춰 읽었다. 반대의 가능성을 살피기보다 이미 생각한 이야기에 근거를 붙였다.
학생의 풀이에서는 그런 오류를 찾으면서 내 생각에서는 좀처럼 찾아내지 못했다. 남의 계산에는 빨간 펜이 빠른데 내 짐작에는 채점이 후했다.
그 일을 겪은 뒤 내가 알고 있다는 말부터 돌아보게 되었다. 그 환자의 식판을 안다는 것과 그 환자를 안다는 것은 달랐다. 이름을 여러 번 읽었다고 그 사람에 관한 정보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익숙함이 앎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관찰한 행동 옆에 확인하지 않은 이유를 붙여 놓고, 나중에는 둘을 함께 기억한다. 그렇게 내가 보탠 설명이 그 사람의 모습으로 굳어진다.
모든 판단을 멈출 수는 없다. 일을 하려면 판단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무엇을 보고 판단했는지는 구별할 수 있어야 했다. 확인한 사실인지, 상대에게 들은 말인지, 아니면 내가 보탠 해석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A 환자의 경우에는 간단했다. 모르던 것을 물으면 되었다. 그런데 나는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잘못 안다는 확신이 질문을 막고 있었다.
수학에서는 직각기호가 없더라도 다른 조건으로 직각임을 증명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쉽게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성별이나 나이처럼 물어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는가 하면, 행동의 이유처럼 본인에게 들어도 더 오래 생각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 차이를 한꺼번에 ‘사람은 알 수 없다’는 말로 덮고 싶지는 않다. 알 수 있는 것은 제대로 확인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 채 남겨 두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짐작을 사실처럼 말하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지금도 이름표를 보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연상이 생기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다만 그 모습은 내가 떠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A 환자에게 나갈 간장 종지를 챙긴다. 다섯 번째 종지까지 놓인 식판을 확인한다. 지금 내 손으로 정확하게 해야 할 일이다.
그 밖의 정보를 묻는다면 ‘여성 환자분’이라는 말을 먼저 붙이지 않을 것이다.
직각기호가 없는 그림 앞에서 학생에게 했던 말을, 이제는 나에게도 해 본다.
주어지지 않은 조건을 먼저 써넣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