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이름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한때는 새벽마다 『반야심경』을 암송하고 108배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지금은 시 한 편을 소리 내어 읽는 날이 많다. 오래 외우던 문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어느 새벽에는 익숙한 구절이 입속에서 되살아났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예전에는 틀리지 않고 외우는 데 급급했다. 그날은 한 구절 앞에 오래 머물렀다. 경전의 뜻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문장을 되뇌는 동안 지금의 모습을 고정된 전부로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새벽 주방에서 국자를 든 나와 저녁에 수학을 가르치는 내가 떠올랐다.
나는 오랫동안 수학 강사였다. 칠판 앞이 익숙했고 사람들도 그 이름으로 나를 기억했다. 병원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에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두 일을 함께 하는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마음속에서는 둘을 같은 자리에 놓지 못했다.
수학을 가르치는 나는 오래된 나였다. 주방에서 일하는 나는 생계를 위해 잠시 다른 길로 들어선 나였다.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젠가 제대로 살아 보고 싶은 나였다.
세 역할을 구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줄을 세우고 있었다. 하나는 돌아가고 싶은 자리였고, 하나는 견뎌야 할 자리였으며, 또 하나는 앞으로 도착해야 할 자리였다. 지금 내 하루 안에서 모두 하고 있는 일인데도 어떤 것은 본래의 삶으로, 어떤 것은 임시의 삶으로 여겼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해 왔다. 정작 내 마음속에는 작은 인사위원회가 있었다. 같은 사람을 놓고 분필을 들었을 때와 국자를 들었을 때의 평가가 달랐다. 위원장이 나였으니 항의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주방 일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도 지나온 경력을 현재의 일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처럼 내세우려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주방에서 일을 잘하고 싶으면서도 언젠가는 다른 이름으로 더 분명하게 설명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에는 아직 얻지 못한 인정까지 미리 담아 두었다.
그러는 동안 현재의 일은 자꾸 다음 삶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조리사로 보내는 시간은 생활을 버티는 시간이었고, 수학 수업은 익숙한 능력으로 수입을 얻는 시간이었으며, 글쓰기는 그 모든 시간 바깥에서 해야 할 진짜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누고 나면 하루 대부분이 진짜 삶에 도착하기 전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내가 쓰는 글에는 주방이 자꾸 들어왔다. 식판을 준비하며 만난 사람과 동료의 말이 문장이 되었다. 수학을 가르치던 경험도 따라왔다. 학생 앞에서 했던 판단을 병원에서 돌아보았고, 주방에서 겪은 일을 수업에서 다시 생각했다.
잠시 거쳐 간다고 여긴 시간이 이미 내 생각과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살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꾸 바깥을 가리켰다. 진짜 나는 저쪽에 있을 것이라고.
국자와 분필은 분명 다르다. 국자는 국을 뜨고 분필은 칠판에 식을 쓴다. 서로 다른 도구를 억지로 하나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 차이 때문에 내가 여러 사람으로 찢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도구를 들었을 때의 내가 더 가치 있는지 판정하려는 마음이었다.
수학 강사로 일한 시간이 길다고 해서 그 이름이 나의 원본이고 나머지는 복사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 시작한 일이 앞선 삶보다 덜 진짜일 이유도 없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짧다고 아직 작가가 될 준비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문장을 쓰고 고치는 동안에는 이미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자 오래 붙들었던 질문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을 고르면 주방에서 일하는 나는 무엇이 될까. 글을 쓰는 사람을 고르면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은 내 삶에서 빠지는 것일까.
어느 하나가 나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느 하나도 진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었다.
『반야심경』의 문장을 내 삶에 비추어 읽는 것도 그 지점까지였다. 경전이 내 직업 문제의 답을 적어 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름 하나를 붙들어 변하지 않는 나를 확보하려는 마음을 돌아보게 했다.
이름은 필요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때 조리사라고 말하고 수학 강사라고 말한다. 다만 그 이름에 나의 높낮이까지 맡기지 않으려 한다. 이름이 바뀌어도 지나온 시간이 없어지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이전의 내가 거짓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모든 갈등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쓸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고, 몸이 힘든 날에는 다른 생활을 꿈꾼다. 앞으로 하는 일이 달라질 수도 있다. 현재를 인정하는 것과 지금의 생활을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이유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하찮게 만들지는 않고 싶다. 오늘의 일은 오늘 실제로 하고 있는 내 삶이다. 나중에 더 좋은 이름을 얻어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시간이 아니다.
새벽이면 국자를 잡는다. 저녁이면 수학바카라을 펼친다. 도서관에서 바카라장을 넘기고, 빈 화면 앞에서 문장을 고치는 시간도 있다. 각각의 자리에서 서툴고, 때로는 익숙하며, 아직 배우고 있다.
이제는 그중 어느 모습이 진짜인지 고르는 데 힘을 덜 쓰려 한다.
국자를 든 시간을 마치고 분필을 든다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의 다른 일을 이어 가는 것이다.
진짜 나는 어느 이름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국자를 들고 있는 나도, 분필을 들고 있는 나도 이미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