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쪼개면 남는 것

- 복잡한 하루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

by진공

“쌤, ‘프라임 넘버’면 ‘프라임 스테이크’처럼 최고급이고 중요한 숫자라는 뜻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이름은 하필 ‘소수’예요? 작은 수도 아닌데. 그리고 귀한 애들을 왜 굳이 가루가 되도록 쪼개서 소인수분해까지 해요? 그냥 놔두면 안 돼요?”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 앞에서 익숙한 설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웃으며 설명했다. 여기서 소수는 소수점이 붙는 수를 뜻하는 소수와 한자부터 다르다고. 소인수분해도 소수를 붙잡아 잘게 쪼개는 일이 아니라, 1보다 큰 자연수를 소수들의 곱으로 나타내는 일이라고. 소수는 분해의 재료인데 괜히 분해당하는 억울한 처지가 된 셈이었다.


나는 소인수분해를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60을 6과 10의 곱으로 놓고 시작하든, 3과 20의 곱으로 놓고 시작하든 끝까지 분해하면 2, 2, 3, 5가 남는다. 출발은 달라도 소인수의 구성은 순서를 제외하면 같다. 소수는 1보다 큰 자연수 가운데 1과 자기 자신만을 양의 약수로 갖는 수다.


그 명료함이 좋았다. 큰 수가 눈앞에 놓여 있어도 하나씩 살피다 보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드러났다. 학생이 다른 길로 풀어 와도 마지막에 같은 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칠판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복잡한 문제를 만났다. 요양병원 주방이었다. 한쪽에서는 반찬이 익고 다른 쪽에서는 국이 끓었다. 작업대에는 식판이 늘어섰고, 사람마다 다른 음식의 형태와 양을 맞추어야 했다. 한 일을 끝내기도 전에 다음 일이 밀려왔다. 국솥 뚜껑을 열면 또 다른 문제가 이미 끓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보였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어느 일을 먼저 끝내야 다음 일이 풀리는지 알지 못했다. 커다란 수 하나를 받아 놓고 첫 약수조차 찾지 못한 기분이었다.


몇 해를 보내며 작업의 순서가 몸에 익었다. 일이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순서 아래에 있는 것들이 보였다.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한 끼를 보내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준비해야 했다. 음식은 지정된 식이에 맞아야 했다. 위생을 지켜야 했고, 이름표와 식판을 정확히 맞추어야 했다.


말로 적으면 평범했다.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나머지를 잘한 것으로 대신할 수 없었다. 음식이 맛있어도 먹을 수 없는 형태로 나가면 곤란했다. 시간을 맞추었어도 이름표가 바뀌면 제대로 보낸 식사가 아니었다.


그때 오래전 칠판에 적던 소수가 떠올랐다. 주방의 일도 끝까지 살펴보면 더는 생략할 수 없는 것들에 닿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빼놓을 수 없고, 어제 잘했다는 이유로 오늘 건너뛸 수도 없는 일들이었다.


내게는 그것들이 주방의 소수처럼 보였다.


물론 한 끼를 수학식으로 만들 수는 없다. 바카라임을 두 번 곱하고 성실을 세 번 곱한다고 좋은 식사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소인수분해의 명료함을 삶에 그대로 옮길 생각은 없다. 다만 복잡한 일을 만났을 때 무엇부터 지켜야 하는지 묻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배식 시간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급해진다. 식판을 하나라도 빨리 완성하고 싶어진다. 이미 확인한 이름표를 다시 보는 일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익숙한 손은 다음 식판으로 가려는데 눈은 아직 앞의 이름을 읽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기본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었다. 손을 잠깐 멈추고 이름표와 음식을 맞춰 보는 동작이었다. 마지막 식판까지 같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수학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소인수분해를 거의 끝냈는데 마지막 합성수를 그대로 두고 답을 적는 학생이 있었다. 큰 줄기는 맞았지만 한 번 더 나누어야 했다. 풀이를 안다는 것과 끝까지 마치는 것은 달랐다.


나 역시 일을 안다는 이유로 마지막 확인을 가볍게 여길 수 있었다. 오래 해 온 일일수록 몸은 빠르게 움직였고, 눈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기본은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사람에게도 매번 다시 필요한 일이었다.


배식이 끝나 작업대가 비면 잠시 주방이 조용해진다. 특별히 칭찬받을 일도 없고, 기록할 만한 사건도 없다. 그저 한 끼가 지나갔다. 다음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도구를 씻고 자리를 정리한다.


예전에는 그런 시간을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으로 여겼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정해진 음식이 준비되었고, 필요한 형태로 나뉘었으며, 각자의 식판에 놓였다. 눈에 띄는 사건이 없도록 여러 사람이 제 일을 한 것이다.


별 탈 없이 한 끼를 보냈다는 사실 안에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수고가 있었다. 국을 끓인 사람만의 솜씨도, 식판을 확인한 사람만의 주의도 아니었다. 각자의 일이 이어져야 가능한 하루였다.


나는 처음에 주방 일을 잘한다는 것을 빠른 칼질이나 능숙한 조리로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능력은 중요하다. 다만 눈에 띄는 솜씨 아래에 반복해서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해져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 일, 내 몫을 마친 뒤 다음 사람에게 제대로 이어 주는 일이다.


학생이 물었던 질문으로 돌아간다.


“소인수분해를 왜 해요? 그냥 놔두면 안 돼요?”


그때는 수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그 질문을 내 일에 가져와 본다. 오늘의 한 끼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바쁘게 움직였다는 기억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인수분해는 마지막에 남은 소수들을 다시 곱하면 처음의 수가 된다. 일도 기본을 몇 가지 적어 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하나하나를 실제로 해내야 한 끼가 된다.


배식이 끝난 작업대 앞에서 생각한다. 오늘도 시간을 맞추었는지, 식이를 제대로 확인했는지, 마지막까지 놓친 것은 없었는지.


내가 찾아낸 기본은 특별하지 않다.


어렵다면, 그것을 내일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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