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접죽과 70점 사이에서 배운 것
26. 17. 3. 20.
병원 주방의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나를 맞는 것은 숫자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수량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조리사의 일이 시작된다. 일반죽 스물여섯 개, 대접죽 열일곱 개, 간죽 세 개, 맑은 국 스무 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암호처럼 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끼니에 준비해야 할 음식이다.
숫자는 끼니마다 달라진다. 간죽이 네 개였다가 세 개가 되고, 일반죽이 두 개 늘기도 한다. 어제의 수량을 잘 기억하는 것보다 지금 적힌 수량을 정확하게 읽는 일이 중요하다.
하나가 모자라면 다시 세고, 하나가 남아도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곳에서 숫자 하나는 누군가의 한 끼다. 많이 준비했다고 잘한 것도 아니고, 대충 맞았다고 끝낼 수도 없다.
우리는 사람의 식사를 빠뜨리지 않기 위해 먼저 수를 센다. 같은 형태의 식사를 묶고 각각 몇 개가 필요한지 적는다. 그렇게 해야 백여 명의 한 끼를 제시간에 준비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이 이름표 하나 앞에서 손이 멈췄다.
‘K 환자, 대접죽+밥.’
병원 주방에서 일한 지 네 번째 해였지만 낯선 표기였다. 죽에서 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밥을 조금 곁들이는 경우는 보았어도, 이름표에 아예 두 가지가 함께 적혀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굴부터 찌푸려졌다. 따로 기억하고 챙겨야 할 식판이 하나 늘었다. 대접죽을 준비한 뒤 밥도 놓아야 했고, 배식 전에 빠뜨리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바쁜 주방에서 예외는 손이 한 번 더 가는 일이었다.
그때 영양사가 말했다.
“그분은 끝까지 밥을 드시고 싶어 하세요.”
불평하던 말이 멈췄다. 나는 죽과 밥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보고 있었다. 그분에게는 밥을 먹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이름표의 더하기 기호 뒤에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밥을 원하는 이유까지 들은 것은 아니었다. 오래 먹어 온 음식이어서인지, 죽보다 밥맛이 좋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모두 알아야만 그 바람이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영양사가 전해 준 말만으로도 내가 준비해야 할 식사가 달리 보였다.
주방에서는 일반식과 죽식을 구분해야 한다. 반찬을 그대로 드릴지 다질지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런 구분이 있어야 각자에게 맞는 음식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분류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도 그 안에 잘 들어맞기를 바랐던 것 같다. 밥을 드시는 분은 밥으로, 죽을 드시는 분은 죽으로 정리되면 일이 수월했다.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는 표시가 내려오자 그 사정보다 분류가 하나 늘었다는 사실부터 불편해했다.
그날 이름표는 분류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순서를 다시 알려 주었다. 내가 편하게 세려고 정해 놓은 칸에 사람의 식사가 모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교실에서도 비슷한 일을 오래 해 왔다. 학생의 시험지를 받으면 점수부터 보았다. 70점, 80점, 95점. 지난번보다 올랐는지 내려갔는지 확인하고, 어떤 문제에서 점수를 잃었는지 살폈다.
점수는 필요했다. 다만 점수를 본 순간 설명까지 너무 빨리 끝내 버릴 때가 있었다. 개념이 부족하구나. 또 계산을 틀렸구나.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짐작하기도 했다.
마음에도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었다면 나는 벌금 고지서를 제법 받았을 것이다.
70점을 받은 학생이 70점짜리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같은 70점을 받은 학생들이 같은 내용을 알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떤 학생은 개념을 이해했지만 계산에서 실수했고, 다른 학생은 공식을 외워 답은 맞혔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그 차이를 알려면 답 옆의 풀이를 읽어야 했다. 왜 그 식을 세웠는지 묻고, 어느 줄에서 생각이 달라졌는지 살펴야 했다. 점수는 어디를 들여다볼지 알려 주는 출발점이었다. 설명을 끝내는 문장은 아니었다.
병원에서도 교실에서도 내가 빠지기 쉬운 실수는 닮아 있었다. 필요한 정보 하나를 확인한 뒤 더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다.
정확하게 셌다는 것과 충분히 살폈다는 것은 달랐다.
K 환자의 이름표를 본 뒤에도 바쁜 날에는 따로 챙겨야 할 것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학생이 같은 실수를 하면 설명부터 반복하고 싶어진다. 사람이 달라지는 속도는 깨달음을 문장으로 적는 속도보다 훨씬 느린 모양이다.
그럴 때면 영양사의 말을 떠올린다.
“그분은 끝까지 밥을 드시고 싶어 하세요.”
내가 추가 작업이라고 여긴 것이 누군가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한 숟가락이었다. 교실에서 내가 반복 설명이라고 여긴 시간도 학생에게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 앞에 머무는 시간일 수 있다.
준비할 것을 하나 더 챙기고 질문을 한 번 더 하는 일은 해 볼 수 있다. 숫자를 확인한 뒤에도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아침이면 다시 화이트보드의 수량을 읽는다. 밥과 죽을 세고 이름표를 확인한다. 저녁에는 학생의 답을 보고 틀린 문제에 표시할 것이다. 두 곳 모두 숫자가 있어야 내 일을 할 수 있다.
식수표에서는 한 명으로 센다. 그렇게 정확히 세어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한 명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과 몸의 사정, 아직 놓치고 싶지 않은 바람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대접죽+밥.’
이름표 한 장이 그것을 알려 주었다. 한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죽 한 그릇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학생의 시험지에도 다시 눈을 돌린다. 70점 아래에 그 학생이 쓰고 지운 풀이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