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설렌다.
매달 한 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인데도, 통장에 찍힌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만큼은 괜히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마 한 달을 통틀어 내 통장이 가장 풍요로운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근하고 조금 있다 띠리링 알람이 울린다. 000원 입금, 은행 앱을 열어본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알림!
어제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잔액을 바라보며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숫자 몇 개가 늘어났을 뿐인데 마음까지 넉넉해진 기분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평소보다 조금쯤은 나를 위해 써도 괜찮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도 생긴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월급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관리비와 공과금이 빠져나가고, 지난달의 나에게 빌려 쓴 것 같은 카드대금도 제 몫을 챙겨간다. 아이들 학원비와 보험료, 통신비, 각종 자동이체까지 줄줄이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월급은 분명 내 이름으로 들어왔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잠시 내 통장을 경유했을 뿐 각자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었던 돈 같다.
그래서인지 월급날 통장 잔고는 더욱 특별하다.
조금 뒤면 사라질 숫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찰나만큼은 온전히 바라보고 싶어진다. 마치 해 질 무렵 가장 붉게 물드는 노을처럼,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아름다운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그때,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작은 욕심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오늘 점심은 조금 비싼 걸 먹어도 되지 않을까?”
평소 같으면 메뉴판의 가격부터 살폈을 텐데 월급날만큼은 먹고 싶은 것을 먼저 고른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평소보다 몇 천 원 비싼 커피 한 잔도 괜찮을 것 같다.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 대신 이름이 길고 달콤한 커피를 주문해 들고 나오면, 별것 아닌데도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부터 눈여겨보던 옷이 생각난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몇 번이나 결제를 망설였던 신발도 떠오른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른다.
월급날의 나는 평소의 나보다 조금 대담하다.
통장 잔고가 사람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며칠 뒤 다시 은행 앱을 열어보면 한때 그렇게 든든했던 숫자는 어디론가 흩어져 있다. 월급날의 위풍당당했던 통장 잔고는 사라지고, 현실적인 숫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제야 나는 생각한다.
‘그날 그 커피는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실 걸 그랬나.’
‘그 옷은 정말 필요했던 걸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후회만 남지는 않는다.
조금 비싼 점심을 먹으며 느꼈던 만족감, 달콤한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었던 오후, 새 신발을 신고 나섰던 날의 기분도 결국 한 달을 살아가는 작은 즐거움이었으니까.
어쩌면 월급은 통장을 채우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나가기 위해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학원비가 되고, 가족의 식비가 되고, 전기와 가스를 밝히고, 지난달의 약속을 갚고, 때로는 나를 위한 커피 한 잔과 새 옷 한 벌이 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돈은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
그래서 오늘도 월급날의 통장 잔고를 잠시 바라본다.
지금이 아마 이번 달에 네가 가장 찬란한 순간이겠지.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을 알지만 괜찮다.
각자 갈 곳이 있다면 잘 찾아가기를.
공과금으로도 잘 가고, 카드대금으로도 잘 가고, 아이들 학원비로도 무사히 가렴.
그리고 아주 조금쯤은 나를 위해 남아주면 더 고맙고.
얼마 남지 않을 내 통장 잔고야.
이번 달도 잘 지나쳐 가라.
빈자리가 조금 쓸쓸하기는 하겠지만,
나는 또 살아가고, 또 일하고, 또 기다릴 테니.
우리 한 달 뒤,
가장 풍요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