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오늘을 지나가는 중입니다!

by최미혜

막히는 출근길, 유난히 눈에 띄는 차 한 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뒷유리에는 ‘초보운전’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하필이면 추월하기도 어려운 일차선 도로다. 앞차는 시속 15킬로미터쯤 되는 속도로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평소 느긋한 성격이라고 자부하는 나도 계속되는 느릿느릿한 운전에 슬슬 약이 오른다.

‘조금만 빨리 가면 안 되나.’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한데 도로의 시간만 유난히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앞차를 바라보다가 오래전 나의 초보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백미러를 볼 여유조차 없었다. 앞만 바라보면서도 다리는 덜덜 떨렸고, 액셀을 밟을 때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복잡한 길에 들어서도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낯선 곳에 갈 때면 길을 잘못 드는 것도 예사였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 속 안내 음성은 얼마나 자주 그 말을 반복했던지, 어느 순간에는 가장 익숙한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앞만 보며 달렸다. 때로는 길을 잘못 들고, 한참을 돌아가고, 뒤에서 울리는 경적에 심장이 내려앉기도 했지만 결국 목적지에는 도착했다.

그렇게 조금씩 길을 익혔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운전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차선을 바꿀 때 자연스럽게 거울을 보고, 다른 차들의 속도에 맞추어 흐름을 탄다. 너무 느리지도, 지나치게 빠르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운전한다. 초보운전 차량이 보이면 미리 피해 가거나 어떻게든 앞질러 가는 것도 어느새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운전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답답함을 견디게 하며 길을 배웠고, 누군가의 기다림 덕분에 조금씩 익숙해진 사람이다.

다시 앞차를 바라본다.

운전자는 얼마나 긴장하고 있을까.

혹시 처음 가보는 길은 아닐까.

뒤에서 내가 답답해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느끼며 더욱 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짜증이 누그러진다.

‘그래, 조금만 더 가보자.’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지만 마음속으로 앞차를 응원해 본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어떤 순간에는 초보자다.

운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처음 시작한 일, 처음 맡은 자리, 처음 가보는 곳, 처음 겪는 관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서툴다.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온 힘을 다해야 겨우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몇 초면 되는 일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몇 분이 걸린다.

그래서 어쩌면 삶에서 필요한 것은 언제나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를 견뎌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저 초보운전자도 능숙하게 차선을 바꾸고, 여유롭게 운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긴장을 까맣게 잊은 채 자신보다 느린 차를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그때 오늘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신 역시 한때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기억해야 한다.

도로는 빠른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차가 있고 운전할 자격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길이다. 능숙한 사람에게 조금 더 빠르게 달릴 권리가 있다면, 서툰 사람에게도 자신의 속도로 길을 익혀갈 권리가 있다.

오히려 천천히 가는 초보운전자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이 능숙하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끼어들고, 몇 초를 앞서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운전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우리는 자꾸 빠른 사람이 된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지고, 기다리는 일이 답답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처음이었던 시절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내 앞에서 천천히 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한때의 서툰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오늘 출근길, 나는 조금 늦게 달린다.

앞차가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따라간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때로는 천천히 가는 사람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 주는 것도

함께 길을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누군가의 서툰 오늘은

어쩌면 오래전 나의 모습이었으므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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