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재미있어지는 거리
요즘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별로 궁금하지 않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금세 피곤해진다. 쉬는 날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원래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인가?”
혹은 나이가 들면서 호기심이 줄어든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어쩌면 호기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관심을 단순히 호기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가 궁금해도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그 궁금함은 금세 조급함이 된다. 나를 좋아하는지, 이 관계가 어디로 가는지, 나와 맞는 사람인지 빨리 확인하고 싶어진다.
반대로 여유가 있어도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면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관심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여유와, 바깥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호기심.
마음이 급하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작은 말과 표정에도 의미를 찾고, 궁금해하기 전에 판단하게 된다. 어쩌면 그때 우리는 상대를 알아가는 것보다, 나를 지키는 데 더 많은 마음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유가 그 반대의 상태에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상대를 천천히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이 모습을 생각하면 성벽 위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는 사람이 떠오른다.
발밑에는 자신을 지켜주는 단단한 벽이 있고, 아래에는 필요할 때 닫을 수 있는 성문이 있다. 누군가 다가온다고 곧바로 맞서거나 피할 필요는 없다. 아직 그 사람을 안으로 들이지 않고도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바라볼 수 있다.
나를 지킬 수 있으니, 서두르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이때 생기는 마음의 공간을 여유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간이 많거나 느긋한 상태가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안전함에서 생기는 마음의 빈자리다.
사람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기보다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지 먼저 살핀다. 당장 나를 지켜야 하니 천천히 알아갈 틈이 없다.
반대로 안전하다고 느끼면 모르는 것을 잠시 모르는 채로 둘 수 있다.
당장 판단하거나 답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제야 나를 지키는 데 쓰던 마음을 바깥으로 돌릴 수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저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나는 왜 이 사람이 조금 궁금할까.
여유가 생긴 자리에 호기심이 들어온다.
호기심은 억지로 만들기 어렵다. ‘이제부터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누군가가 갑자기 궁금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기심은 별것 아닌 곳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이 취미에서 비교적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일에는 해야 하는 것이 많다. 정해진 시간과 결과가 있고, 잘해야 한다는 마음도 따라온다. 반면 취미는 조금 다르다. 꼭 잘하지 않아도 되고, 도움이 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좋아서 해도 된다.
그림이 좋아 그림을 배우러 갔는데 어느 순간 옆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궁금해진다. 달리는 것이 좋아 러닝 모임에 나갔다가 함께 뛰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바카라 한 권이 좋아 모였는데 바카라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서로의 삶을 궁금해한다.
무언가를 향하던 호기심이 어느 순간 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옮겨간다.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
그 한마디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다. 어쩌면 우리가 취향이 비슷한 사람에게 쉽게 반가움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관심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여유와,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호기심.
여유 + 호기심 = 관심
그리고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사람을 알아가는 일에는 자연스럽게 재미가 생긴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것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어디까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반은 알고, 반은 모른다.
그래서 재미있다.
규칙만 있고 변수가 없다면 지루하고, 반대로 변수만 있고 규칙이 없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안전한 틀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 움직일 때 재미가 생긴다.
사람을 알아가는 일도 비슷하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상대에게 나를 모두 맡길 필요도 없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거리 안에서 그 사람의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한다.
“이 사람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
그 순간 사람이 조금 재미있어진다.
이런 사람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쉽게 조급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느라 자기 중심을 잃지도 않고, 자신을 지키느라 모든 사람에게 문을 닫지도 않는다.
좋아 보이기 위해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바라본다.
나는 그런 관심에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
자기 중심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것.
관심은 마음이 가는 감정이라 억지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여유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궁금함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관심을 이렇게 생각한다.
관심은 안전한 거리에서 마음이 가는 것을 허락하는 능력이다.
그러니 요즘 아무도 궁금하지 않다면, 내가 원래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부터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이렇게 물어봐도 좋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궁금해할 만큼 여유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