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지는 것과 나를 잃는 것은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조금씩 상대에게 맞추기 시작한다.
“뭐 먹고 싶어?”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어디 갈까?”
“네가 가고 싶은 데 가자.”
처음에는 별일 아니다.
좋아하니까 그럴 수 있다.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이상해진다.
약속을 잡을 때도 상대의 시간을 먼저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상대가 싫어할까 봐 삼키고,
서운한 일이 생겨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넘어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관계에서 뭘 좋아했지?
사람과 가까워졌는데,
이상하게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관계란 서로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를 잘 알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사이.
물론 그런 가까움은 좋다.
그런데 가까워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묘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상대의 감정은 더 잘 보이는데,
오히려 내 감정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상대가 서운하지 않을지가 먼저 보이고,
내가 서운한지는 나중이 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금방 알겠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좋은 관계에는 가까워지는 마음만큼이나
나에게 돌아오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고,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혼자 있고,
상대와 생각이 달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멀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그런 마음을 경계라고 생각한다.
경계라고 하면 보통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경계는 꼭 멀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경계는 가까워져도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거리다.
내가 어디까지 괜찮은지 알고 있으니
그 안에서는 마음 놓고 가까워질 수 있다.
문제는 그 거리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많이 맞춰주다가 상처받으면 생각한다.
‘다시는 이렇게까지 하지 말아야지.’
다음에는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다.
조금만 이상해도 거리를 두고,
상처받을 것 같으면 먼저 마음을 닫는다.
그러면 당분간은 편하다.
다칠 일이 줄어드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외롭다.
누군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면 다시 마음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너무 빨리 가까워진다.
그리고 또 상처받는다.
다시 멀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종종 이렇게 움직인다.
상처받으면 멀어지고,
외로우면 가까워진다.
너무 가까워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멀리 가버린다.
너무 멀어서 외로워지면
다시 누군가에게 너무 가까이 간다.
그러다 보면 관계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진다.
“혼자가 편해.”
“이제 사람한테 기대 안 해.”
하지만 정말 사람이 피곤한 걸까.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가까운 곳과 너무 먼 곳만 오가느라 지친 것인지도 모른다.
좋아한다고 모든 것을 맞춰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벽을 세울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가고 싶은 곳을 따라갈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할 수도 있다.
상대가 힘들다면 기다려줄 수도 있고,
기다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면
그것 역시 말할 수 있다.
상대에게 기대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서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가 아니라,
가까워져도 각자가 사라지지 않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내가 나로 있어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자꾸 힘들어진다면,
상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만 바라보기 전에
한번 나에게 물어봐도 좋겠다.
나는 지금 이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가까워지기 위해 나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