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에게 친정에 가라고 말했다.

by올리브맘

작년에 동서에게 말했다.

“이제 추석에는 시댁에 오지 말고 친정에 가고, 설에는 시댁에서 함께 보내자.”


나는 결혼을 해도 딸 역시 자식인데, 명절마다 시댁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이 늘 불편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명절을 조정했다.


나는 명절이면 늘 시댁이 먼저이고, 친정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런 풍경이 싫었지만, 나 혼자 세상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 전에는 딸로 명절을 보냈지만, 결혼 뒤에는 며느리로 보내야 했고 그 모습은 사뭇 달랐다.


1991년에 결혼을 했다. 맏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수십 번의 명절을 지내며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나물을 만들고, 국을 끓였다. 명절에 모일 친척들이 먹을 음식에, 돌아갈 때 싸줄 음식까지 준비했다. 처음 10년은 그 일을 나 혼자 다 했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차례 상차림의 순서를 맞췄다. 그렇게 도리라고 여기며 해온 일을 지난해 추석 차례상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내려놓았다.


나는 딸 넷 가운데 맏딸이다. 아들을 바라던 집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남자라는 이유로 먼저 주어지는 자리와 여자라는 이유로 기대되는 역할이 못마땅했고, 딸이라는 이유로 달라지는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일들은 오히려 가벼운 것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자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시댁에 잘하고, 남편을 잘 받들고, 살림을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했다.

명절에는 해야 할 음식과 일, 의무가 더 많아졌다. 몸이 힘든 것만으로는 내가 명절을 싫어했던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의무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싫었던 것 같다.


나에게 결혼 뒤의 명절은 오랫동안 ‘야만의 시대’였다. 너무 심한 표현일까. 하지만 내가 겪은 마음을 다른 말로 바꾸기는 어렵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한 사람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싫다는 마음마저 쉽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내게는 폭력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음식을 많이 만들어서만은 아니었고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이 내 선택이었다면 힘들어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기 싫은 마음을 품고 짜증이 나면서도 명절을 치렀다. 다음 명절이 오면 그런 마음으로 다시 그 자리에 섰다. 그렇게 한 해씩 지났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싫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내가 나쁜 사람 같다.


왜 늘 시댁부터여야 할까.

남편도 부모가 있고 나도 부모가 있는데, 왜 한쪽 집은 먼저 가야 하는 곳이고 다른 한쪽은 그다음에야 가는 곳이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그러면 너무 오래 이어져온 일이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그러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상한 취급을 받거나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 싫어 더는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에게 종종 했던 말이 있었다. 언젠가 내가 며느리를 맞게 된다면, 추석이나 설 중 한 번은 친정에 먼저 가라고 하겠다고.


아직 시어머님이 계시지만, 시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제사와 차례를 물려받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결정을 더 미룰 필요가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해왔다는 사실이 그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오래 해왔다고 해서 내게 힘들었던 일을 다른 사람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셔서 명절에 뵈러 갈 곳이 없지만, 동서는 다르다. 동서도 누군가의 딸이다. 동서의 친정에서도 딸과 함께 보내는 명절을 반가워하시지 않을까.


그래서 작년에 동서에게 올해 추석에는 시댁에 오지 말고 친정에 가라고 했다. 이 말을 하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세상이 내 생각과 비슷하게 변해줘서 고맙다. 오래전부터 불편했던 일을 바꾸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오래 살아 익숙해졌으니 계속하자는 말보다, 오래 해보았으니 이제 바꾸어도 되겠다는 말이 나에게는 더 맞다. 내가 싫었던 일을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는 해야 할 일과 의무에 싸여 명절을 보냈다면, 이제는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명절을 보내고 싶다. 함께 먹는 음식에도 만드는 사람의 행복이 담기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가족이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즐겁고 고맙다. 다만 명절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은 마음을 누르며 음식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동서도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추석에도 나는 전을 부쳤다. 집에 있는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식구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넣어 동그랑땡도 만들고 깻잎전과 고추전도 부쳤다. 호박전도 부치고, 내가 좋아하는 빈대떡도 함께 부쳤다.



종류는 여러 가지였지만 많이 하지 않아도 됐다. 모일 친척들이 먹고 돌아갈 때 가져갈 몫까지 준비할 필요 없이, 우리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만들면 됐다. 다음 날 차례를 지낼 때까지 기다렸다 먹지 않아도 됐다. 부치면서 바로 먹으니 맛있었다.


올해도 전을 부치는 일은 같았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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