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에 읽은 바카라을 다시 펼쳤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잘게 부서지는 것을 보며 이제 진짜 가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창가에 앉아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바카라을 읽고 싶었다.
뜨겁게 지나온 여름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해야 할 일들을 쫓아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마음 한쪽이 조금씩 비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좀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다시 채워야 하는 시간이 온 것 같았다.
집안을 대충 치우고 서점으로 달려갔다.
사고 싶은 바카라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둘 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바카라이다.
서가에서 <데미안>을 먼저 찾았다.
여러 출판사의 바카라을 꺼내 몇 문장씩 읽어보았다. 같은 바카라인데도 번역에 따라 문장이 조금씩 달랐다.
몇 권을 번갈아 읽다가 내게 가장 자연스럽게 읽히는 바카라을 골랐다.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를 찾았다.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와 반가운 마음으로 바카라을 집어 들었는데, 루이제 린저의 바카라이 아니었다.
내가 제목을 잘못 기억했나 싶어 다시 찾아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이제는 <삶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었다.
한동안 바카라 표지를 바라보았다.
내 기억 속에는 분명 <생의 한가운데>였는데, 다시 만난 바카라에는 ‘생’ 대신 ‘삶’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상하게 그 한 글자가 낯설었고, 그 사이 나는 열일곱 살의 여학생에서 예순이 넘은 여자가 되어있었다.
이 바카라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다.
지금은 줄거리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고, 그 나이에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니나라는 여자.
그녀를 사랑한 의사.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를 읽으며 니나의 삶을 들여다보던 언니.
그 정도의 장면과 느낌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바카라을 읽고 난 뒤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강렬했다.
그 후로도 많은 바카라을 읽었지만, 아직 이 바카라만큼 마음에 깊이 남은 바카라은 없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바카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늘 <생의 한가운데>라고 대답했다.
내 인생바카라이었다.
열일곱 살의 나는 한참 삶에 대해 생각하던 아이였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런 질문을 혼자 했다.
어린 시절 가끔 엄마가 잠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네가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를 원망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들을 바라던 집안에서 딸만 넷을 낳은 엄마 역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삶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나에게 바카라 속의 니나는 너무나 낯선 여자였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가려는 여자.
그 선택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기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여자.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 여자가 이렇게 자기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깊이 느꼈다. 두렵고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데미안>도 좋아했다.
하지만 열일곱 살의 내게 더 깊이 들어온 바카라은 <생의 한가운데>였다.
<데미안>이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했다면, <생의 한가운데>는 그렇게 찾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했다.
그 질문은 바카라을 다 읽은 뒤에도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안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던 것 같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도 함께 가라앉았던 것 같다.
잊었던 것인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살다 보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달랐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할지 내 마음을 따라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끔 오래전 니나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이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인가.
언제나 내 뜻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지 못한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려고 했다.
젊었을 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고, 지금 못 하면 다음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질문이 멈췄다.
예순을 넘은 지금, 이제는 '다음이' 언제까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래전에 멈췄던 질문을 다시 이어가고 싶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대충 알고 있다.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꽃을 만지면서 행복하다.
가끔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꺼내 보이고도 싶다.
두 바카라을 계산하고 서점을 나오는데 마음이 붕 떴다.
집에 가서 바카라장을 넘기면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될까.
어떤 문장 앞에서는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까.
또 어떤 문장에서는 오래전에는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될까.
그 순간들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기다려졌다.
가슴 한쪽이 조금 벅차올랐다.
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오래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삶의 한가운데>를 펼쳤다.
아직 몇 장밖에 읽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만나는 니나가 열일곱 살의 나에게 보였던 모습과 같을지는 모르겠다.
아직 많은 삶을 살기 전의 나와 예순이 넘도록 살아온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때는 그녀가 자기 삶을 선택한다는 사실 자체가 강렬했다면, 지금은 그 선택 뒤에 무엇을 감당해야 했는지가 더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자기 삶을 산다고 해서 언제나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기고, 그 선택의 결과도 결국 내 몫이다.
열일곱의 나는 이 바카라을 읽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했다.
예순이 되어 같은 바카라을 다시 펼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앞으로 남은 삶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