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고른 씨앗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7

by호시우행

한 봉지에서 꺼낸 동일한 콩 알갱이 수십 알을 산비탈 자갈밭과 물이 잘 빠지지 않는 평야 지대 들판에 나누어 심어보는 가상의 실험을 해본다. 봄날 씨앗을 심는 순간 두 밭으로 들어간 알곡의 생물학적 조상은 완벽히 같다. 심는 농부의 다정한 손길과 정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씨앗이 땅속에서 소리 없이 눈을 틔우고, 잎을 펼치며, 여름날 피어난 꽃을 거쳐 가을의 꼬투리를 차오르게 하는 동안 두 밭은 완벽히 다른 생태적 시련과 환경의 조건을 식물에게 내놓는다.


어느 밭은 비가 조금만 내려도 물이 오랫동안 빠지지 않아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하고 썩어 들어간다. 어느 밭은 빗물이 흙 사이를 금세 타고 내려가 늘 타들어 가는 건조함과 싸워야 한다. 어떤 구릉은 아침 햇살부터 온종일 따스한 볕을 받지만, 산자락 밑 밭은 늦은 아침까지 길게 늘어진 산 그림자 속에 서늘하게 갇혀 있다.


칼바람이 사정없이 들이치는 바람받이 밭에서는 줄기가 부러지지 않고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견디는 개체만이 살아남아 결실을 맺는다. 서리가 일찍 내리고 가을이 짧은 서늘한 골짜기에서는 그 짧은 생육기간 안에 서둘러 꽃을 피우고 알곡을 단단하게 영글어내는 개체만이 다음 해 농사의 씨앗으로 이어질 기회를 얻는다.


씨앗은 분명 같은 모습과 동일한 유전자를 안고 밭에 들어갔지만, 그 밭이 내놓은 환경에 따라 완벽히 다른 삶의 일대기를 살아내게 되는 것이다. 가을이 찾아와 농부가 두 밭의 수확물을 섞지 않고 밭마다 따로 거두어들여 살피기 시작하면, 그 미세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생태적 차이는 눈앞에 선명한 자국으로 드러난다. 한 줄기에 꼬투리가 얼마나 밀도 있게 달렸는지, 알맹이가 껍질 속까지 꽉 찼는지, 익어서 고개를 숙이는 시기가 언제인지, 여름철 폭우와 바람에 줄기가 얼마나 견뎌냈는지, 무서운 잎마름병이 돌았을 때 어떤 포기가 끝까지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버는지가 농부의 눈과 손끝에 정확히 들어온다.


그리고 그 가을 마당에서 무엇을 다음 해의 씨앗으로 가려내어 남길 것인가는, 그 밭이 가진 고유한 생태적 조건과 그 밭을 일구는 농부의 절박한 필요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는 습한 들판에서는 습기를 머금어도 뿌리가 무르지 않는 특성이 생존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물이 늘 부족하고 가뭄이 일상인 척박한 구릉지에서는 가뭄의 시간을 끝내 버텨내는 단단함이 무엇보다 귀하다. 추위가 서둘러 찾아오는 높은 고지대에서는 짧은 여름 동안 속전속결로 익어가는 성질이 요구되며, 특정 곰팡이나 병충해가 매년 극성을 부리는 골짜기에서는 그 병을 유연하게 넘아서는 면역력이 종자의 자격이 된다.


이 극적인 차이는 단 한 해의 짧은 재배 경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농민은 자기 밭의 미세한 토양과 기후 속에서 어떤 개체가 끝까지 버텨내는지를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몸으로 깨닫게 된다. 장대비가 몰아쳐 들판을 쓸고 지나간 다음 날, 밭둑으로 달려 나가 바닥에 허탈하게 쓰러진 줄기와 꿋꿋하게 서 있는 줄기를 눈여겨본다.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어 온 들판의 잎이 타들어 갈 때, 마지막까지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강인한 포기의 위치를 가슴속에 또렷이 기억해 둔다. 전염병이 한 바퀴 쓸고 지나갔을 때 어떤 포기가 덜 상했는지 살피고, 서리가 내리기 직전 어떤 알곡이 끝까지 속을 탄탄하게 채웠는지를 세심하게 비교한다.


그리고 그 밭에서의 깊은 기억은 다가올 계절의 씨앗을 가려내는 농부의 손끝으로 정직하게 들어간다. 현대적인 정밀 유전학 실험실이나 차가운 유리 온실이 없어도, 매년 전국의 수많은 밭에서는 이 위대한 생명적 선택과 도태가 일어났다. 농민이 해마다 자신이 평생을 일구어온 고유한 밭에서 씨앗을 가려 남기고 다시 흙으로 되돌려 보증하는 동안, 그 땅의 생태적 환경과 인간의 엄정한 의식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땅이 혼자서 임의로 씨앗의 형태를 바꾼 것도 아니다. 사람이 혼자만의 욕심으로 씨앗의 유전을 새로 창조해 낸 것도 아니다. 씨앗은 언제나 흙이 내놓은 자연의 환경과, 농부가 투영한 욕망의 접점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


동일한 종자가 서로 다른 흙과 물길을 만나면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적 결과는 완벽히 달라진다. 그 험난한 환경을 견뎌내어 살아남고 다음 세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개체와, 환경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개체 사이에 거대한 격차가 발생한다. 그리고 농민은 그 살아남은 개체들의 정직한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며 다음 해의 씨앗을 다시 가려낸다. 이 미세한 선택과 적응의 과정이 수십 세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쉼 없이 축적되고 이어지면, 그 밭에서 자라나는 씨앗 집단의 유전적·형태적 성질 역시 본래의 모습을 넘어 완벽히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시골 마을의 오래된 토종씨앗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씨앗의 겉모습이나 알갱이의 색깔만을 단편적으로 관찰해서는 안 된다. 그 씨앗이 도대체 어떠한 산자락과 물길 속에서 수없이 반복 재배되었는지, 어떤 혹독한 자연 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이 대를 이어 남겨졌는지, 그리고 그 땅을 일구던 농민들은 과연 어떠한 특성을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겼는지를 함께 통합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과 들의 차이는, 단순히 지형의 물리적 높낮이나 경사도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비탈진 산밭에서는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거리 사이에서도 흙의 깊이가 완벽히 다르고 자갈의 비율이 천차만별이다. 빗물이 땅속에 머무는 시간과 흘러 내려가는 속도 또한 완전히 다르다. 골짜기 아래쪽에는 항상 서늘한 습기와 물이 웅덩이로 모여들고, 능선 위의 밭은 태양의 강렬한 햇볕과 사계절의 매서운 바람을 몸으로 직접 맞받아쳐야 한다. 큰 강을 끼고 있는 들판은 정기적인 강물의 범람과 습기의 영향을 진하게 받고, 바닷가 구릉의 밭은 소금기를 머금은 자욱한 해풍과 거친 바람의 시련을 매일같이 받아내어야 한다.


동일한 시군 단위의 행정구역 안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식물이 매일 마주하는 생생한 생태적 세계는 결코 단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봄철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산간 골짜기와, 겨울에도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온화한 해안가의 생육 조건은 천지 차이다. 여름의 해가 짧은 북향 비탈과 해가 길게 머무는 남향 들판의 농사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장마철 폭우가 집중되는 지역과 여름 내내 비가 드문 건조한 지역에서는, 비록 동일한 콩이나 벼를 기른다 할지라도 그 작물에게 요구되는 생물학적 견딤의 성질이 완벽히 달라진다.


식물에게 자기 발 밑의 토양과 피부에 닿는 기후 조건은 한가한 추상적 배경이 아니다. 매일의 생존을 걸고 온몸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처절한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땅의 물리적·기후적 조건만으로 토종씨앗의 다채로운 역사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완벽히 동일한 환경의 밭을 곁에 두고 농사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 밭을 일구는 농부의 주관적인 가치관과 삶의 지향에 따라 선택되어 남는 씨앗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농부는 당장 장터에 내다 팔아 식구들의 푼돈을 만들 수 있도록 수확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개체를 선발하여 남기고, 어떤 농부는 수확량이 다소 적더라도 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의 개체를 고집스럽게 골라 남긴다. 여름철 장마에 줄기가 비틀려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들보다 보름 일찍 익어 시장에 가장 먼저 출하할 수 있는 조생종의 특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더 나아가 각 가정의 부엌이 요구하는 문화적·음식적 필요 역시 씨앗의 엄격한 선발 과정 속으로 깊숙이 개입해 들어온다. 매일같이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집에서는 솥에 얹어 밥을 지었을 때 찰기와 윤기가 흐르는 알곡을 최고의 씨앗으로 가려낸다. 가문의 행사나 명절마다 떡을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는 집에서는 떡을 찔 때 고소한 향과 독특한 질감을 내는 개체를 종자로 지켜낸다. 해마다 메주를 쑤고 정성껏 장을 담그는 집에서는 발효되었을 때 깊은 감칠맛과 풍부한 단백질을 내뿜는 콩의 성질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반면 장터로 나아가 도시 소비자들에게 곡식을 파는 상업적 농부에게는 알맹이의 균일한 크기, 깨끗한 외형,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 저장성과 먼 길을 실어 나수송해도 부서지지 않는 운송성이 씨앗 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이처럼 같은 땅, 같은 기후 속에서 자라난 작물일지라도, 그 작물을 바라보는 인간이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다음 해의 흙으로 건너가는 씨앗의 얼굴은 완벽히 달라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있는 수많은 지역의 토종씨앗은, 순수한 자연만이 홀로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도 아니며, 인간의 자의적인 욕망만으로 조각해 낸 인공의 작품도 아니다.


하늘의 햇빛과 강물의 흐름, 토양의 질감과 사계절의 기온이 끊임없이 작용하고, 그 위로 농민의 땀 젖은 선택과 부엌의 다정한 음식 문화가 겹겹이 중첩되어 나타난 인문 생태학적 결실이다. 한 세대의 밭에서 살아남아 선택된 씨앗이 다가오는 세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그다음 세대가 마주한 변경된 환경과 농부의 선택이 다시 그 씨앗의 유전적 몸체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오늘날 우리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토종씨앗의 다채로운 외형적 차이 역시 바로 이러한 기나긴 적응과 선택의 역사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알맹이의 색깔이 검고, 붉고, 점박이로 제각기 다른 이유, 씨앗을 감싸고 있는 껍질의 두께가 두껍거나 얇은 이유, 줄기의 키가 하늘로 높이 자라거나 바닥으로 납작하게 엎드리는 이유, 그리고 가을철 익어가는 절기의 날짜가 저마다 다른 이유. 이 모든 미세한 차이들의 껍질 내부에는, 특정한 지리적 환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농민의 따스한 손길에 의해 선택되어 온 아득한 생존의 역사가 농밀하게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토종씨앗이 지닌 이 모든 유전적 차이점을 오직 그 지역의 자연환경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단화하여 말할 수는 없다. 역사의 굽이마다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유전자와 씨앗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고, 밭과 밭 사이에서 바람과 곤충을 매개로 한 자연스러운 유전적 교류와 교배가 쉼 없이 일어났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적 돌연변이가 출현하기도 했으며, 씨앗을 가려내는 농민의 선발 기준 역시 시대의 변화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새로워졌다.


지역의 토종씨앗은 결코 단 하나의 획일적인 원인이나 고정된 공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연의 생태적 시련과 인간의 문화적 욕망, 그리고 세월의 흐름이라는 수많은 불확실한 과정들이 겹겹이 포개어져 나타난 다원적 결서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농업의 생태적 다양성과 토종의 가치를 바라볼 때, 지구상 어디에서나 완벽하게 작동하는 '단 하나의 가장 우수한 모범 씨앗'만을 찾는 단견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여름철 가뭄이 아득하게 이어지는 혹독한 해에는 건조한 토양을 견뎌내는 뿌리 깊은 특성이 농가의 생존을 결정짓는다. 반대로 장마와 태풍이 들판을 쓸고 지나가는 해에는 물속에서도 뿌리가 무르지 않거나 강풍에 줄기가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특성이 무엇보다 절박해진다. 지구적인 기후의 변동성이 극심해지고 예측할 수 없는 이상 기후가 일상화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작물의 생물학적 특성 역시 매년 다채롭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인류 농업의 역사에서 품종의 '다양성'이 생존의 절대적 안전망으로 작동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형질과 성격을 지닌 다채로운 씨앗들은, 각기 다른 기후적 시련과 토양의 조건 속에서 저마다 다른 생존의 가능성을 유연하게 발휘할 수 있다. 하나의 씨앗이 지상 위의 모든 혹독한 환경을 완벽하게 극복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토종씨앗들이 저마다 다른 미시적 환경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낼 수만 있다면, 이상 기후와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인류 농업 전체가 무너지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태적 안전지대의 폭은 비할 바 없이 넓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적 다양성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씨앗을 땅에 심고, 가을철 결실을 거두어들이며, 그중 우수한 개체를 정성껏 가려내어, 다가오는 봄날 다시 흙으로 내어주는 정직한 노동이 수세기에 걸쳐 반복되어야만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그 긴 세월의 도막 동안 어떤 씨앗은 환경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어떤 씨앗은 농부의 절박한 선택을 받아 끝내 지상 위에 남았다. 농민은 자기 집 밭에 가장 적합한 작물의 성질을 몸으로 익혀갔고, 씨앗은 수많은 세대의 선택을 거치며 그 지역의 농사와 삶의 문화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땅은 매년 가뭄과 추위라는 엄정한 생태적 조건을 내놓고, 농민은 그 잔혹한 조건 속에서 미래를 지탱할 씨앗을 정성껏 가려낸다. 그리고 씨앗은 그 땅과 인간의 조화로운 교감 사이에서 조용히 다음 세대의 삶으로 건너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토종씨앗'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세월이 오래된 고대의 유물이나 옛날 씨앗만을 뜻하지 않는다. 특정 지역의 고유한 토양과 기후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재배되고, 그곳의 가혹한 생태적 환경과 농부의 피땀 어린 노동, 그리고 부엌의 정겨운 음식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가려지고 선택되어 온 생명체라는 점에 참된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조그마한 토종씨앗 한 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겉보기에는 그저 작고 단단한 식물의 알갱이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그 씨앗이 거쳐 온 아득한 세월의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완벽히 새로운 문명사적 서사가 펼쳐진다.


그 작고 단단한 껍질 안에는 산비탈의 가파른 경사와 강물의 유유한 물길이 차곡차곡 들어차 있고, 여름철 폭우의 무서움과 겨울철 서리의 시련을 견뎌낸 계절의 기억이 소리 없이 잠들어 있다. 지독한 가뭄과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명의 의지가 서려 있고, 수확한 곡식더미 속에서 내년의 생명줄을 이어나가기 위해 가장 좋은 낟알을 가려내던 농부의 거친 손길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밥을 짓고, 떡을 찌며, 장을 담그던 어머니들의 다정한 부엌이 요구했던 삶의 나날들도 그 씨앗의 유전자 속에 깊이 스며있다.


물론 씨앗이 머릿속으로 그 모든 과거의 역사를 인간처럼 하나하나 기억하고 반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 세대에 걸쳐 어떠한 씨앗이 잔혹한 생태적 시련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았고, 어떠한 씨앗이 농부의 선택을 받아 다행히 사라지지 않았는지를 추적해 보면, 우리는 그 씨앗의 몸체 속에서 그 땅과 사람들이 살아온 숭고한 생존의 흔적을 또렷하게 읽어낼 수 있다.


땅이 씨앗을 향해 인간의 언어로 직접 말을 건네는 것은 아니다. 땅은 그저 물을 품었다가 흘려보내고, 태양의 열기를 안았다가 매서운 추위를 내놓으며, 때로는 거친 바람을 일으켜 식물의 줄기를 시험할 뿐이다. 그리고 그 정직한 자연의 조건 속에서, 어떤 식물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가오는 계절로 자신의 유전자를 넘길 것인가의 생태적 가능성이 정해진다.


농민 역시 땅의 거창한 계시를 귀로 들으며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밭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포기와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포기를 정직하게 관찰하며, 다가올 농사를 지탱할 가장 강인하고 고마운 씨앗을 눈과 손으로 가려낼 뿐이다.


그리고 그 자연의 도태와 인간의 선택이 만나는 미세한 접점 사이에서, 한 지역의 토종씨앗은 세월을 타고 조금씩 자기만의 정갈한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따라서 특정한 지역의 토종씨앗이 오늘날 그토록 특별하고 고귀한 이유가, 단지 그 씨앗이 그 땅에서 처음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가혹한 생태적 시련 속에서 끝내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그 땅을 일구는 농민의 따스한 손길에 의해 가려져 선택되었고,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 부엌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필요로 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때 완벽히 다른 낯선 이국이나 타관에서 흘러 들어온 씨앗일지라도, 그 땅의 흙과 물을 만나 수십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재배되고 선택되는 과정을 거쳤다면, 그 씨앗 역시 그 지역의 농사와 삶의 문화 속에 완벽하게 녹아든 고귀한 토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씨앗은 사람의 발길과 장터의 물길, 그리고 역사라는 거대한 도로를 타고 지구상 곳곳으로 쉴 새 없이 움직여 왔다. 우리가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 긴 이동의 길 끝에서 씨앗을 다정하게 맞아주는 정직한 '땅'과 '농부의 손길'이다. 씨앗이 낯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들어온 뒤에도, 그 생명적 서사는 결코 허무하게 끝나지 않는다. 그곳의 새로운 흙과 물, 그리고 매서운 기후가 완벽히 새로운 생태적 조건을 식물에게 내놓으며, 그 땅의 농부는 그 조건 속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미래를 지탱할 씨앗을 정성껏 가려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 길을 걸어온 씨앗은 비로소 한 지역의 아득한 세월과 밀도 높게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깊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과연 ‘우리 집 밭과 우리 동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씨앗’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 역시 조금씩 다채롭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아 땅과 인간의 시간을 깊이 품어 안은 씨앗은, 과연 어떠한 구체적인 서사와 깊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작고 단단한 몸체 속에 새겨 넣게 되었을까.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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