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과 마을의 탄생>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05

by호시우행

따스한 봄기운이 감도는 들판으로 한 농부가 홀로 걸어나가 부드럽게 일군 흙 위에 씨앗을 뿌리는 장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밭 한쪽에 조심스럽게 알곡을 묻고 조심조심 고운 흙을 덮는다. 그러나 단지 씨앗을 땅에 내던지듯 묻었다고 해서 농사의 거룩한 여정이 완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뭄이 들면 멀리 떨어진 강가에서 물을 파 올려 밭두렁으로 대어야 하고, 여름철 장마에 무섭게 치솟는 잡초를 온몸이 땀에 젖도록 매일같이 뽑아내어야 하며, 가을날 작물이 노랗게 익어가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낫을 들어 거두어들여야 한다. 수확한 곡식을 자루에 담아 헛간으로 짊어지고 오는 일조차 단 한 사람의 외로운 노동으로는 벅차기 마련이다.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인간과 땅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형에도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연결망이 촘촘히 짜여졌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해졌고, 그 일손을 빌려오기 위해서는 서로를 묶어주는 정교한 관계의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씨앗 하나를 땅에 심는 행위는 땅과 인류의 생태적 관계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인간 슬롯의 내부 구조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농경이 삶의 전면에 자리 잡기 이전에도 인류는 이미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어울려 살아왔다. 사냥감을 둘러싸고 힘을 모았고, 공동체 안에서 아이를 함께 돌보았으며, 거두어들인 야생 과실과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었을 것이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협력해 왔다는 사실 자체는 농업 이전의 수렵채집 시대나 농경 개막 이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냥과 채집을 생계로 삼던 무리 역시 풍요로운 거주지 한곳을 수개월 이상 오래 이용하기도 했고, 농경이 출범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하루아침에 한 장소에 기적처럼 정착한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농사라는 정직한 반복 속에서, 사람들이 동일한 장소와 계절의 파동을 함께 맞대고 경험하는 일이 비할 바 없이 구체적이고 밀도 높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사람이 일구는 밭은 아무리 무거워도 집처럼 들고 다른 구릉으로 옮겨 갈 수 없다. 한 번 흙 속에 내려앉은 작물은 수확의 계절이 올 때까지 수개월 동안 오롯이 그 자리에서 자라난다. 파종할 절기가 오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밭으로 나가야 했고, 잡초가 성해지면 다시 그 밭으로 무릎을 굴려야 했으며, 열매가 매달리면 또다시 그 동일한 땅으로 걸어가야 했다. 한 계절의 농사가 끝난 뒤에도, 다가오는 계절의 새로운 농사가 같은 장소에서 농부를 고요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 집의 밭에서 푸른 씨앗이 싹을 틔우면, 그 울타리 바로 옆집의 밭에서도 동일한 햇살을 받으며 씨앗이 차오른다. 어느 집에서는 메주를 쑬 콩을 심고, 옆집에서는 조나 수수를 심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물을 대어 논을 만들고, 누군가는 비탈진 구릉을 일구어 밭을 만든다. 농사짓는 품목과 방식은 집집마다 제각기 달랐지만,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계절의 시간표는 완벽히 하나로 겹쳐 있었다.


단비가 내리면 온 동네의 밭이 다 함께 촉촉하게 젖어 들었고, 지독한 가뭄이 찾아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들어가는 작물을 바라보며 똑같은 시름에 잠겼다. 결실을 거두는 수확기가 찾아오면 온 동네에 한꺼번에 손길이 필요한 일들이 몰아쳤다. 농사의 시간은 한 개인이나 단일한 가구의 단독적인 시간을 넘어, 마을 전체가 삶을 통째로 나누어 겪어내는 공통의 시간으로 변모해 갔다.


마을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는 단순히 집 몇 채가 물리적으로 인접해 모여 있다고 해서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일상적인 삶과 노동이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의지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의 망이 형성된다. 전통 농촌 슬롯에서 그 영향력은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마을 정자나무 옆의 공동 우물과 관개용 보(洑)를 함께 관리해야 했고, 수확물을 실어 나르는 마을의 오솔길을 함께 정비해야 했으며, 집안의 귀한 농기구를 서로 빌리고 빌려주어야 했다. 볍씨를 틔우고 모를 내는 파종기와,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을 끝내야 하는 가을철에는 수십 가구의 일손이 한날한시에 절박하게 필요했다. 한 집의 노동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중노동이 닥쳐올 때마다 이웃의 손길을 빌리는 품앗이와 두레 같은 정교한 노동 공유망이 자연스럽게 결성되었다. 농사는 혼자의 결단으로 시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혼자만의 힘으로 무사히 완결 짓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생활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의 가장 작은 밑천인 씨앗 역시 그 복잡하고 따스한 사람 사이의 관계망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가구에서 거두어들인 우수한 씨앗이 이웃집의 빈 바구니로 흘러 들어가 다음 해의 심을거리가 되기도 했다. 자기 집 밭에는 없는 희귀한 작물이나 새로운 곡식을 이웃이 가지고 있다면 정성껏 청하여 나누어 받을 수도 있었다. 한 집의 수확물이 다른 집의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생명의 연쇄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해에 한 농가의 밭에서 꼬투리가 굵고 단단한 콩이 유난히 잘 여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마침 옆집은 지난여름 장마로 콩 농사를 망쳐 내년에 심을 종자가 턱없이 부족한 처지였다. 풍작을 이룬 농부가 기꺼이 고운 콩 한 됫박을 덜어 이웃의 손에 가만히 쥐여주었다. 씨앗을 넘겨받은 사람은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그것을 솥에 넣고 삶아 먹지 않고, 곡간 윗목에 소중히 보존해 두었다가 이듬해 봄 자기 밭에 정성껏 뿌렸다. 그 박한 땅에서 푸른 싹이 돋아나고 계절을 견뎌내어 다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건강한 알갱이들이 그다음 해를 지탱할 새로운 씨앗이 되었다. 한 집의 마당에서 시작된 곡식이 다른 집의 농사를 가동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아늑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씨앗을 건네고 받는 일에는 단지 생물학적인 종자 알갱이만 건너간 것이 아니었다. 그 씨앗이 도대체 어떤 토양에서 잘 적응했는지, 언제쯤 파종했을 때 싹이 잘 틔었는지, 가뭄이 들이닥쳤을 때 어떻게 수분을 유지해 주었는지에 관한 농부의 축적된 경험과 서사도 함께 전해졌다.


“그저 흙에 심으면 잘 자란다”는 막연한 지침보다, “우리 집 비탈밭에서는 아카시아 꽃이 피어날 즈음 심었을 때 결실이 가장 좋았다”는 구체적인 현장의 경험담이 이웃에게는 목숨을 지탱해 줄 귀중한 정보가 되었다. 씨앗을 나누어주는 사람은 자신이 수년 동안 흙을 매만지며 깨달은 고유한 노하우를 씨앗과 함께 건넸고, 넘겨받은 사람은 자신의 밭에서 그 씨앗을 다시 가꾸며 자기만의 새로운 농사 경험을 덧붙였다.


그 모든 세심한 노하우와 시행착오들은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마을 전체의 공동 기억으로 고스란히 쌓여갔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네 밭에서 어떤 작물이 가장 건강하게 자라나는지 훤히 꿰뚫어 보게 되었다. 누가 씨앗의 눈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가려내는지, 누가 토굴에 습기가 차지 않게 씨앗을 완벽하게 보관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떤 노인은 기후의 변화를 읽어내어 파종의 적기를 귀신같이 맞추었고, 어떤 아낙은 특정 팥이나 콩의 벌레를 막아내는 고유한 농법을 알고 있었다. 농사에 필요한 그 모든 다채로운 지식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한꺼번에 모여 있을 수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해마다 봄이 오면 담장 너머로 이웃에게 농사법을 묻고 조언을 구해야 했다.


이 지식은 결코 종이 바카라이나 숫자로 정리된 정형화된 표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지나간 해의 농사를 함께 되돌아보고, 이웃의 밭둑을 지나치며 작물의 자람세를 유심히 살피며, 수확량의 미세한 차이를 서로 비교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몸과 입을 통해 전승되었다. 올해 지독한 가뭄이 몰아쳤음에도 어느 집의 콩 줄기가 유독 푸르고 단단하게 버텨냈다면,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밭에서 나온 씨앗으로 쏠렸다. 어떤 집의 팥이 유난히 빛깔이 고르고 부드럽게 무른다면 그 집의 종자 보관법을 나아가 물었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밭에서 얻은 고귀한 실천적 경험이 이웃의 밭으로 건너가고, 그 결과가 다시 마을이라는 공간의 집단적 지혜로 단단하게 축적된 것이다.


씨앗에 붙은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 역시 이러한 정겨운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종자를 누구네 집에서 처음 넘겨받았는지 기억하고, 어느 가문에서 수대째 순수하게 심어왔는지를 마을 사람 모두가 인지했다. 어떤 씨앗이 비탈진 밭에 적합하고 어떤 씨앗이 물이 풍부한 습지에 적합한지 함께 논의했다. 씨앗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낟알의 생김새나 색깔을 구분하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그 씨앗을 손에 쥐고 있는 농부의 이름과, 그 씨앗을 직접 심어 가꾸어본 이웃들의 역사를 함께 알아가는 정서적·슬롯적 행위였다.


농경이 요구하는 혹독한 노동의 성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 결속을 더욱 단단하고 두텁게 만들었다.

봄철 파종기가 다가오면 마을의 모든 가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손길을 기다렸고, 가을철 수확기가 되면 온 동네의 일손이 한꺼번에 부족해져 아우성을 쳤다. 누군가 내 밭의 모내기를 먼저 팔을 붙들어 도와주면, 다음 날에는 나 역시 낫을 들고 그 사람의 밭으로 달려가 모내기를 도와야 했다. 노동을 주고받는 엄정하고도 따뜻한 품앗이 체계가 정착된 것이다. 오늘 남의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한 농부는 다음 농사철에 자신의 밭에서 이웃들의 든든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농사는 한 가구의 사적인 노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웃의 노동과 힘이 겹쳐지면서 비로소 마을 전체의 공적인 과업으로 완성되었다. 어느 집에 남편이 아파 모내기가 늦어지는지, 어느 집의 밭이 가뭄으로 말라붙었는지, 어느 가구에 내년에 심을 seed가 부족하여 발을 구르는지를 이웃들은 훤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밭 상태와 가정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었다. 마을은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실질적인 욕구와 노동이 서로 유기적으로 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그 관계망 속에서 씨앗은 다른 일반적인 농기구와는 완벽히 다른 생태적 지위를 가졌다. 괭이나 쟁기 같은 농기구는 잠시 이웃에게 빌려주었다가 사용이 끝나면 본래의 모양 그대로 돌려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씨앗은 일단 이웃의 밭에 들어가 땅속에 묻히고 나면, 풍성한 수확이라는 완벽히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여 돌아온다. 오늘 넘겨받은 한 줌의 씨앗은 내년 농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그 수확물에서 다시 다음 세대의 씨앗이 잉태되어 남겨진다. 한 번 건네어진 씨앗은 몇 번의 계절을 거쳐 또다시 사람과 사람의 손을 타고 마을 전체로 유유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씨앗을 둘러싼 관계망에는 깊은 시간의 기억과 슬롯적 신뢰가 요구되었다. 어떤 씨앗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마을 전체가 파악해야 했고, 그 씨앗이 어디서부터 유래하여 이어져 왔는지를 공유해야 했다.


그러나 마을의 이 모든 관계가 언제나 동화처럼 평등하고 따뜻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전통 농촌 공동체 내부에도 엄연히 계층의 차이와 갈등, 소유의 격차와 냉혹한 이해관계가 서려 있었다. 우수한 씨앗을 풍부하게 소유한 대농과, 당장 심을 씨앗조차 없어 이웃에게 구걸해야 하는 가난한 소작농 사이에 권력의 차이가 생겨났다. 희귀하고 수확량이 뛰어난 씨앗을 둘러싸고 농가 간에 소리 없는 경쟁과 질시가 벌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마을은 단순히 서로를 온정적으로 돕기만 하는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라, 협력과 경쟁, 상부상조와 갈등이 얽히고설켜 존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에는 인간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위력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리 이기적인 개인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모든 농사일을 처리하고, 모든 종류의 씨앗을 독점하며, 모든 농업 지식을 홀로 가질 수는 없었다. 농경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물리적 힘과 경험적 지혜를 반드시 빌려야만 하는 생존의 구조를 명확하게 각인시켰다.


씨앗은 바로 그 필수적인 필요와 온정이 오가는 가장 핵심적인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한 가구에서 부족했던 씨앗이 이웃의 나눔을 통해 채워질 수 있었고, 한 농부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교한 농사법을 이웃 노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씨앗은 스스로 인격이 있어 공동체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만나고 의지해야 하는 정직한 농사의 과정 속에서, 씨앗은 사람들의 손과 손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 다녔을 뿐이다.


이 깊은 관계가 수십 수백 년 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지자, 씨앗이 품은 역사는 한 개인의 짧은 일생보다 훨씬 더 길고 웅장해졌다. 선대 농부가 정성껏 심었던 씨앗을 그의 자식이 이어받아 심었고, 이웃집 사위가 받아 가 자기 밭에 다시 심었다. 한 가문의 장독대에서 나온 씨앗 한 주머니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마을 전체의 밭으로 넓게 퍼져나가기도 했다. 한 사람의 농사가 다음 사람의 농사로 매끄럽게 건너가는 그 길목에서, 씨앗은 세대와 세대의 경계를 번쩍 들어 올려 건너갔다.


마을이라는 공간의 역사적 변화는 그 안에서 자라나는 씨앗의 변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나 기근, 산업화로 인해 사람들이 고향 마을을 떠나면 그 땅에서 농사를 이어갈 사람의 손길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밭을 일구는 농가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그 씨앗들이 심겨서 자라날 토양의 면적도 좁아졌다. 사람들의 식습관과 음식 문화가 변하면, 그 음식을 만드는 데 쓰이던 특정한 토종 작물을 밭에 심어야 할 인문학적 이유도 힘을 잃고 약해졌다. 마을의 생활 양식이 달라지면, 씨앗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정교한 슬롯적 관계망 역시 서서히 해체되거나 변형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어떤 고유한 씨앗이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밭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심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씨앗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농부들의 생활과 문화가 여전히 그 땅에서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누군가 봄날 그 씨앗을 흙에 심고 있다는 것은, 그 작물이 가져다주는 고유한 맛과 향을 잊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작물의 특성에 딱 들어맞는 정교한 농사법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숙련된 농부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다가올 해에도 그 씨앗을 손에서 놓지 않고 남겨두어야 할 정직한 이유가 그 마을에 살아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씨앗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은 씨앗 자체가 지닌 생물학적 번식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을 해마다 잊지 않고 땅에 심고 가꾸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 양식과 문화가 깊숙이 관여한다. 밭이 존재하고, 농부가 존재하며, 농사를 이어가야 할 명확한 삶의 이유가 살아있을 때에만 씨앗은 무사히 다음 계절의 흙으로 건너갈 수 있다. 씨앗을 둘러싼 인간의 일상과 생활망이 끊어지는 순간, 씨앗 역시 더 이상 지상 위에서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통 '마을'을 단순히 콘크리트 도로나 주택의 집합, 혹은 행정 구역의 경계선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농업 문명 속에서 마을은 동일한 수원의 물을 나누어 쓰고, 같은 오솔길을 함께 지나다니며, 동일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몸으로 겪어내고, 서로의 농사와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던 거대한 생명 생활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씨앗은 그 생명의 공간 속을 혈액처럼 자유롭게 흐르고 움직였다.


한 농가의 마당에서 나온 씨앗이 이웃집 비탈밭에서 푸르게 자라나고, 그 밭에서 영글어간 알곡이 또 다른 이웃의 손으로 건너갔다. 한 노인에게서 전수받은 농법이 이웃의 밭에서 성공적으로 시험되었다. 가을철 수확이 풍성하면 그 기쁨과 경험이 마을의 기억으로 남았고,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면 다음 해에 피해야 할 소중한 교훈이 되었다. 씨앗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갈 때마다, 인간의 삶과 경험 역시 함께 확장되고 깊어졌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대를 이어온 토종씨앗을 단순히 그 마을이라는 폐쇄된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던 고립된 존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 씨앗은 단 한 사람의 손에만 이기적으로 머물지 않았고, 단 한 집안의 밭에만 고집스럽게 머물지도 않았다. 수많은 사람과 사람의 손을 타고 모세혈관처럼 오가면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생명이었다. 어떤 씨앗이 마침내 ‘우리 마을의 씨앗’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면, 그 작은 껍질 안에는 한 장소에서 이어온 아득한 시간과, 수많은 농부들의 땀 젖은 손을 거쳐 온 거친 세월이 함께 서려 있는 것이다.


마을은 이처럼 씨앗의 생명을 지속해서 이어주는 거룩한 인문학적 장소였다. 그러나 마을은 씨앗을 꽁꽁 묶어 보관만 하는 정적인 박물관이 아니었다. 농부들이 해마다 심고, 거두며, 이웃과 기꺼이 나누는 동적인 과정 속에서 씨앗은 다음 계절을 향해 끊임없이 넘어가고 발전했다. 한 집의 농사가 옆집의 농사와 사슬처럼 이어지고,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농업 문명이 땅 위에 정착하면서 인간은 단지 지리적인 흙 위에만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누에게서 우수한 씨앗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지 알고, 누구에게 가뭄을 이겨낼 농법을 물어야 하는지 알고, 농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를 아는 정교한 인간 관계망 속에도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씨앗의 이 거침없는 움직임은 하나의 마을이라는 협소한 경계선 내부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다른 마을로 이동할 때, 그의 바느질 주머니 속 씨앗도 함께 먼 길을 떠났다. 장터에서 만난 낯선 이웃들 사이에서도 우수한 씨앗은 정당한 거래와 교환을 통해 경계를 넘어 건너갔다. 타관으로 시집을 가는 딸의 손에 친정어머니가 눈물로 쥐여준 솜주머니 속 씨앗은 전혀 새로운 가문의 밭으로 뿌리를 내리러 갔다. 이웃 마을의 뛰어난 종자를 소문으로 듣고 달려가 받아 와 자기 집 밭에 심는 적극적인 시도들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한 마을의 역사 속에서 단단하게 이어져 온 씨앗이 낯선 땅으로 이동해 가면, 그곳에서는 완벽히 새로운 토양과 낯선 기후, 그리고 새로운 농부의 손길을 만나게 된다. 같은 조상에서 출발한 씨앗일지라도 다른 땅과 다른 사람을 만나면 완벽히 다른 모습과 향을 지닌 작물로 다채롭게 변모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농부가 다시 자기 집 밭에 맞게 씨앗을 가려내면서 새로운 역사와 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씨앗은 그렇게 마을과 마을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지상 위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흘러갔다. 그렇다면 씨앗은 과연 어떠한 길을 타고, 사람의 손과 발을 따라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이동해 나갔던 것일까.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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