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업에서 살아남기

Week 6

by킹오황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State and Local Government 수업이다. 금요일 오후에 10명 정도의 학생이 듣는 아기자기한 수업이다. 가장 늦게 주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전우애가 느껴진다. 교수님도 학생들도 수업 내내 유머 감각을 발산할 정도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내가 다 못 알아듣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 수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내가 외국인이라고 열외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나에게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수업 시간에 발표도 해야 하고, 교수님 질문에 대답도 해야 하며, 각종 퀴즈도 다 풀어서 제출해야 한다. 학생들끼리 조를 짜서 하는 과제도 빠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수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IMG_0263.jpeg10월이지만, UGA의 강렬한 햇빛은 여전히 여름의 것이다.


교수님은 하나의 판례를 가지고 학생들과 토론하듯 깊게 파고드는 전통적인 소크라테스식 수업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여러 개의 판례를 읽어오도록 과제를 내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요약 발표를 시킨다. 지원자가 없으면 무작위로 학생을 시키기 때문에 이것도 나름 콜드콜이긴 하다.


수업 중에 교수님이랑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순간 교수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미스터 리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대답해 볼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라서 "I'm sorry?"라고 질문을 다시 말해달라는 의미로 되물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됐는지, 교수님이 괜히 나에게 물었던 걸 미안해하며 다른 학생에게 질문을 돌렸다. 별일은 아니었지만, 이후로 교수님 눈을 못 쳐다보고 있다.


수업 내내 교수님 눈치 보는 것도 일이다. 언제 어떤 질문이 갑자기 나에게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마음 편히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집중해서 교수님 말을 경청해도 잘 못 따라가는데 말이다. 그래서 방안을 강구했다.


나에게 콜드콜이 안 오도록 하기 위해서 기회가 있을 때 미리 발표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판례를 다 읽어보고 요약해서 준비해 뒀다가 제일 발표하기 쉬운 내용이다 싶으면 손을 든다. 미리 준비해 간 스크립트를 보면서 말하면 되니깐 부담도 적다. 심지어 깍두기 같던 내가 발표하겠다고 하면 교수님도 흐뭇해하며, 이거 Jones는 대답 못했는데 내가 살려준 거니 가점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등의 농담을 한다. 내 기를 살려주는 듯하다.




어쨌든, 매 수업마다 한 번의 임팩트 있는 발표로 수업 시간을 잘 넘기고 있다. 요즘은 어떻게든 미국식 유머 감각을 살려 농담을 섞어 보려고도 하는데 쉽지는 않다.


한 번은 Athens 시 의회에 참여하라는 과제가 있어서 온라인으로 다 챙겨본 후 여기에 대한 감상을 준비해 갔고,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것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시민들이 단상에 나와 시장과 위원회 위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마치 "미국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더니 뒤에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름 웃음 포인트를 넣었던 건데, 누군가 웃어줘서 정말 고마웠다. 자신감이 생겼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수업 시간에 조지아주 상원의원이 온라인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질문할 의도는 없었지만 혹시 몰라 의원에게 질문 거리를 미리 준비는 해 뒀었다. 그런데 강연 중에 의원이 자기 아들이 태권도를 한다고 하는 걸 들으니 왠지 개그 욕심이 생겼다. 그래도 내가 한국 사람인데 태권도는 한번 또 언급해줘야 할 거 같아서, 강연이 끝나자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후, "I'm from South Korea, but I'm not good at Taekwondo, though."라고 덧붙였다. 누군가 웃어줄 줄 알았는데 교실 분위기가 썰렁했다.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이 와서 본인도 태권도 검은띠라고 뭐 이렇게 말을 걸어 주었지만, 뭔가 의원 앞에서 과감히 농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나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금요일 오후에 이 수업이 끝나면 아내를 빨리 만나고 싶어진다. 항상 이야기할 게 많다. 아내는 초등학생 아들이 수업 마치고 쪼르르 달려와 그날 있었던 걸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초등학생들도 나처럼 아등바등거리면서 수업 시간을 버티는 걸까. 그래서 할 말이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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