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싸웠다

Week 8

by킹오황

이런 표현이 정확한 건진 모르겠지만, 미국 헌법 판례로 수업 시간에 친구들끼리 싸웠다. 교수님은 우리 LLM 학생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걸 권장한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의견이 과해지고, 다른 학생의 의견을 무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인신공격에 가까운 수준으로 말다툼이 일어났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문제는 동성결혼이었다. 먼저 동성결혼에 관한 미국 헌법 판례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본다면,


1. Bowers v. Hardwick (1986): 대법원은 동성 간 성행위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지 않음. 즉,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도 합헌이라고 말함.

2. Lawrence v. Texas (2003): 대법원은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며,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을 위헌으로 판단. 기존 Bowers 판례를 뒤집음.

3. Obergefell v. Hodges (2015): 대법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할 기본권이 있다고 판단. 이에 미국의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도록 함.


특히, Obergefell 판례에서는 미국의 유명한 대법관 중 한 명인 Scalia가 반대의견을 냈는데, 국민이 뽑은 사람도 아닌 9명의 대법관이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하느냐며, 미국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동성결혼에 대해 기본권(fundamental right)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여기에 대해 우리 반 D는 Scalia가 맞다며,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할 기본권이 있다고 인정한 대법원의 Obergefell 판례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했다. 그는 자기 나라의 헌법에도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며, 남녀가 아이를 낳고 가족을 형성하는 전통적인 결혼을 강조했다.


나는 그 나라의 문화가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우리 반의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어떻게 동성결혼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냐면서 말이다. A는 인종차별이나 마찬가지라고 했고, B는 곧바로 D 의견에 반대한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C는 자신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데 그럼 자기 결혼은 뭐냐라며 따졌다. D는 다시 동성결혼을 지지하지 않지만 respect 한다고 표현을 누그러뜨렸는데도, 친구들은 손을 들고 공격적인 태도를 이어갔다. 내가 미처 알아듣지 못한 D의 발언이 더 있었나 싶더라.


교수님이 쉬는 시간을 갖자고 하는 바람에 갈등이 해소가 되지 않은 채 그냥 넘어갔다. D에게 다가가서 위로를 했더니, 그는 앞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는 건 피해야겠다고 하더라.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에서 말을 조심하겠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사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수업 시간에 나도 한마디 했었다. 한창 여러 사람들과 D가 언쟁을 벌이고 있을 때 나는 오늘 할당된 발표량을 채우기 위해 눈치 없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평소 내가 바라보는 헌법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아래와 같이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부족해서 100% 전달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발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그나마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인 걸로 봐서 할당량은 채운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Scalia의 결론과 다르게 누구랑 결혼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기본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판례를 읽어보면 나는 Scalia의 입장과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Scalia가 헌법을 해석하는 방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 헌법에는 동성결혼의 권리가 기본권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대법관들이 헌법의 적법절차 규정을 폭넓게 해석하여 기본권을 도출하는 방식은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D가 제기한 헌법 해석의 문제에 동의한다."


이건 아무래도 법 문언만으로 입법자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도록 법령을 심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 때문일 것이다. 법의 단어나 문장이 하나의 뜻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이를 국민이나 법원이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자의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법제를 가르쳐 주신 분들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도 주의해서 쓰고, 문장을 여러 번 다듬는 일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 헌법 판례에서 결론을 정해놓고 필요하면 자신의 논리에 유리한 역사나 해외 사례를 끌어다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전 결론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선례구속의 원칙(stare decisis)도 대법원은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는 것 같다. Scalia도 대법원이 어떤 판례에서는 선례가 중요하다 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판례에서는 선례를 뒤집은 점에 대해 일관성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오늘 수업에서 교수님은 대법원이 헌법을 해석할 때 선례, 역사, 전통, 국제법 등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둬야 할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질문 자체가 미국 대법원의 헌법해석에 통일된 기준이 없다는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외골수같이 헌법의 문언과 제정 당시의 의미를 중시하던 Scalia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저 동쪽 멀리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미국 헌법의 논쟁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한국에 돌아가 헌법 개정 절차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게 된다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비싼 돈 주고 배운 걸 써먹을 기회를 달라!


IMG_0351.jpeg내가 좋아하는 Sohn Library 다른 각도. 왼쪽 테이블이 내 전용 자리다.


참, 다음 주에 우리 학교에 미국 대법관 중 한 명인 Justice Barrett이 강연하러 온다. 실제 강연장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첨으로 뽑았는데, 운 좋게 내가 뽑혔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보던 대법관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기대가 크다.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길래 강연장에 핸드폰도 못 가져가게 할 정도일까. 거기다 Barrett이 Scalia 밑에서 일했단 사실을 알고 나니 더 흥분이 되었다. 강연이 끝나면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그랬는데, 미국인 친구가 그러다 총 맞을 수도 있으니 아서라고 했다.


참 2, 로스쿨 반장선거 결과가 나왔다. 나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고 칠레가 되었다. 물론 내가 누구를 뽑았는지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칠레에게 축하의 인사를 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날에 터키랑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터키는 일부러 선거 운동을 안 했다고 했다. 우리들은 다 법조인인 만큼, 누구에게 누구를 뽑으라고 할 필요도 없고 우리의 합리적인 선택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땐 솔직히 좀 멋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결과를 보면 멋보다는 실리가 더 우선인 거 같다. 터키도 나도 배운 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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