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五戒)의 틈새

술은 왜 ‘차계(遮戒)’가 되었나

by능도

불교에 입문하는 재가신자나 승려가 가장 먼저 마음에 새기는 다섯 가지 절대적인 약속이 있다.

이를 오계(五戒)라 부른다.


살생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음행 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바로 ‘술을 마시지 말 것(불음주계, 不飮酒戒)’이다.


계율의 서슬이 이토록 푸른데, 어떻게 산사 한쪽 깊은 곳에서는 향기로운 술 냄새가 피어오를 수 있었을까?


스님들이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술을 탐했던 것일까?


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계율을 분류하는 독특한 시선, 즉 ‘성계(性戒)’와 ‘차계(遮戒)’의 개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불교에서 구별하는 첫 번째 계율인 성계(性戒)는 행위 그 자체로 이미 악하고 죄가 되는 것들을 뜻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인류 보편의 도덕 기준으로 부도덕하며, 행하는 순간 업(業)을 쌓게 된다.


반면 술을 금하는 불음주계는 차계(遮戒)에 속한다.

차계란 행위 자체는 본래 악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더 큰 잘못이나 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에 ‘미연에 차단(遮斷)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쌀과 누룩과 물이 만나 익은 액체 자체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문제는 그 액체가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가 이성을 마비시켰을 때 일어난다.


술에 취한 인간은 너무나 쉽게 거짓말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살생과 음행의 늪으로 걸어 들어간다.


즉, 술은 앞선 네 가지 무거운 죄를 짓게 만드는 ‘방화쇠’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차계’라는 성격 덕분에 사찰의 곡차는 숨 쉴 틈새를 얻었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방탕함에 이르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술의 쓰임새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의 절은 겨울이 되면 뼈를 깎는 추위가 찾아온다.

하루 열두 시간씩 차가운 선방 바닥에 앉아 면벽 수행을 하는 스님들에게는 기혈이 막히거나 동상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때 한 잔의 술은 체온을 올리고 혈액 순환을 돕는 최고의 ‘약(藥)’이었다.


불교 법전인 《사분율(四分律)》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술을 사용하는 것을 일부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수행자들에게 곡차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독약이 아니었다.


혹독한 환경에서 몸을 지켜 수행을 이어가게 만드는 약장이자, 차를 음미하듯 그윽하게 마음을 가다듬는 도구였다.


물질의 취하게 하는 성질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부려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


그것이 바로 승려들이 술을 마시면서도 "나는 술이 아니라 곡차를 마신다"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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