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藥)이 된 술 3화
겨울의 산사는 혹독하다.
콘크리트 벽과 보일러가 없던 옛 시절, 깊은 산속에 자리한 절의 추위는 뼈를 깎는 듯했다.
새벽 3시, 천지를 뒤흔드는 도량석 소리에 눈을 떠 차가운 법당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가 온몸의 기혈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하루 열두 시간씩 면벽 수행을 하던 스님들에게 이 겨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장벽이었다.
오래 앉아있다 보면 다리가 마비되고 혈액 순환이 통하지 않아 동상에 걸리거나, 기가 한 곳에 뭉쳐 몸이 망가지는 ‘선병(禪病)’을 얻기 십상이었다.
이처럼 가혹한 환경에서 몸을 지켜내고 수행을 지속하게 만든 숨은 공신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뜨거운 온기를 품은 ‘약(藥)으로서의 곡차’였다.
앞서 이야기했듯 불교의 법전인 《사분율(四分律)》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술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몸이 아플 때, 혹은 기혈이 막혔을 때 한 잔의 술은 정식 계율을 깨뜨리는 ‘방탕한 음주’가 아니라 육신이라는 도구를 고쳐 쓰는 ‘약 처방’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사찰에서 빚어진 곡차가 일반 저 저잣거리의 술과 달랐던 점은 바로 이 ‘약용(藥用)’ 목적에 충실했다는 데 있다.
스님들은 단순히 쌀과 누룩으로만 술을 빚지 않았다.
산과 들에 자생하는 약재들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스님들은 곡차를 빚을 때 다양한 약재를 첨가했다.
• 몸을 따뜻하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솔잎과 송화 가루,
• 머리를 맑게 하고 기운을 돋우는 산초와 구기자,
• 추위를 물리치고 위장을 보호하는 계피와 생강 등이 항아리 속에서 함께 익어갔다.
겨울 선방의 스님들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수행을 마치고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나와 따뜻하게 데운 곡차를 작은 잔으로 한두 잔씩 마셨다.
입안 가득 퍼지는 알싸한 약재의 향과 뒤이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은, 막혔던 혈관을 뚫고 온몸에 온기를 돌게 했다.
그것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酒)이 아니라, 내일의 수행을 이어가기 위해 육신이라는 마차에 치는 기름과 같았다.
사찰의 곡차는 차가운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찾아낸 지혜의 산물이었다.
엄격한 계율조차도 생명을 살리고 수행을 돕는 자비의 마음 앞에서는 부드러운 방편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산사의 겨울밤, 은밀하게 번지던 곡차의 향기는 스님들의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