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차와 다도(茶道)

마시는 행위에 담긴 불교적 명상

by능도

불교에서는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깊은 수행으로 여긴다.


이를 ‘다선일미(茶禪一味)’,

즉 차의 맛과 선(禪)의 맛은 결국 하나라는 말로 표현한다.


찻물을 끓이고, 잔을 데우고, 향을 음미하며 찻물을 삼키는 전 과정이 깨어있는 알아차림(正念)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사찰의 승려들이 곡차를 대할 때도 이 ‘다도(茶道)’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술꾼들은 술을 마실 때 취기를 쫓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산사의 수행자들은 곡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우주의 섭리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곡차를 마시는 행위는 방탕한 음주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움직이는 명상’이었다.


곡차 명상의 첫걸음은 잔을 채우는 비움과 채움의 미학에서 시작된다.

스님들은 잔에 곡차를 가득 채우지 않는다.

잔의 칠 할만 채우고 나머지 삼 할은 비워둔다.


가득 채우면 넘치기 마련이고, 넘치면 탐욕이 되기 때문이다.


잔을 채우며 내 마음의 욕심이 어디까지 차올랐는지 먼저 살피는 것이다.


그다음은 향을 맡는 ‘수식(數息)’의 시간이다.


잔을 코끝에 대고 숨을 깊이 들이쉬면, 쌀이 삭으며 내어놓은 달콤한 향과 누룩의 묵직한 내음, 그리고 함께 넣은 솔잎의 알싸한 향이 온 정신을 깨운다.


이 향기를 맡으며 스님들은 천지자연의 기운을 느낀다.


한 톨의 쌀이 스님들의 잔에 담기기까지 필요한 햇살과 바람, 농부의 땀방울, 그리고 항아리 속에서 보이지 않게 일했던 미생물의 노고가 향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마침내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을 때, 곡차는 혀끝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져나간다.


곡차의 은은한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단전(丹田)에 이르면, 굳어있던 육신의 긴장이 풀리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우던 망상과 화두의 매듭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이때 스님들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맑아짐’을 경험한다.

술의 기운을 빌려 내 안의 집착을 한 꺼풀 벗겨내고,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선의 시인들이나 승려들이 달빛 아래 홀로 곡차를 마시며 대자연과 대화를 나누었던 풍류는 바로 이러한 명상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에게 곡차 잔은 속세의 시름을 잊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존재를 지우고 우주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통로였다.


차를 마시듯 그윽하게, 그리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음미하는 곡차.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황홀한 선(禪)의 잔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