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대사의 풍류

정신을 맑게 하면 그것이 곧 차(茶)다

by능도
진묵대사 영정

조선 중기의 명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는 석가모니의 소생이라 불릴 만큼 불법(佛法)에 통달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파격적인 기행과 풍류로 저잣거리와 산사를 뒤흔든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일화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역시 ‘곡차’에 얽힌 이야기다.


어느 날, 진묵대사가 길을 가다 한 무리의 농부들이 논두렁에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술 냄새를 맡은 대사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평소 대사의 거침없는 풍류를 익히 알고 있던 농부들이 장난기가 발동해 대사에게 사발을 내밀었다.


“스님, 아무리 진묵대사라 하셔도 중의 몸으로 이 독한 술을 드실 수 있겠습니까?”


대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발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그 유명한 한마디를 던졌다.


“이것을 ‘술’이라 하면 내가 마시지 않을 것이요, ‘곡차(곡식으로 만든 차)’라 하면 마시겠노라.”


이 일화는 오랜 세월 동안 계율을 어긴 승려의 구차한 변명이나 재치 있는 말장난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진묵대사가 평생을 걸쳐 보여준 수행의 깊이를 들여다보면, 이 말속에는 대승불교의 핵심을 꿰뚫는 철학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사는 뒤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마셔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면 그것이 술이고, 정신을 오히려 맑고 깨어있게 하면 그것이 곧 차다.”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 가르친다.

물질 그 자체에는 선도 악도 없다.


독사에게 물을 주면 독을 만들고, 젖소에게 물을 주면 우유를 만들 듯, 똑같은 액체라도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과 정신의 깊이에 따라 본질이 바뀐다는 뜻이다.


진묵대사에게 곡차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유흥의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굳어있던 육신의 집착을 허물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무애(無碍)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실제로 대사는 술에 취하면 붓을 들어 거침없이 시를 썼고, 그 시들은 하나같이 번뇌를 벗어던진 해탈의 세계를 노래했다.


세상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제정신을 잃었지만, 대사는 곡차를 마시고 비로소 거짓된 세상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물질의 성질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물질을 부려 마음을 맑게 씻어낸 것, 이것이 바로 진묵대사가 보여준 곡차의 진정한 풍류였다.


그가 채운 잔은 술잔이 아니라, 집착 없는 자유를 담는 마음의 잔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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