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관능을 입다.
폴댄스 폴복을 떠올리면 대부분 피부와 봉의 마찰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을 과감히 드러낸 짧은 의상만을 떠올린다.
"스커트나 원피스 챙겨 오세요. 그 다음 날에는 청바지 챙겨 오시면 됩니다."
이름하여 스커트 폴링과 청바지 폴링."스커트나 청바지를요?" 짧은 의상 대신 사복을 입고 폴 위에 오르는 것 그것은 오랜 고정관념을 깨고 나를 마주하는 짜릿한 이벤트 같은 수업이었다.
흩날리는 쉬폰 스커트, 나비의 날갯짓처럼
샤랄라 하게 퍼지는 쉬폰 스커트에 가벼운 탑을 매치하고 차가운 폴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평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바닥을 밀어내며 공중에 몸을 실은 순간, 걸음마다 감겨오던 치맛자락이 사방으로 가볍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어둠을 깨고 나온 나비의 우아한 날갯짓 같았다.
원을 그리며 회전할 때마다 얇은 천이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파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함께 수업을 듣는 20~30대 젊은 회원들의 풋풋한 생동감 사이에서 위축도 되지만 이내 턱 끝을 들어 올린다. 그녀들이 가진 싱그러움과는 다른 매력이 나에게도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어색한 순간도 잠시, 화려하고 역동적인 기술 대신 부드러운 스트레칭과 선을 그리는 섬세한 손끝 하나에 호흡을 불어넣었다.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 치맛자락의 일렁임과 함께 나만의 무대가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그것은 나다운 실루엣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매혹적인 몸짓이었다.
다음 날 청바지를 입고 폴을 타는 것 또한 다른 차원의 자극이었다. 타이트한 데님은 전날 입었던 쉬폰 스커트의 하늘거림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에너지를 자아냈다. 거친 질감의 청바지가 차가운 금속 폴과 마찰하며 스치는 소리와 함께 묘한 자신감이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살갗이 닿지 않아 미끄러운 탓에 고난도의 동작을 펼치기는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 제한적인 움직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름의 관능미가 있었다.
'아름다움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다. 서툴고 실수하더라도 당당하게 나를 표현하는 그 찰나가 가장 눈부시다.'
1대 1 수업이 아니기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늘 턱없이 부족하다. 강사님의 시범 동작을 카메라에 담고 그 동작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린다. 금속의 촉감, 공중에서의 회전 감각, 몸이 꺾이는 각도 하나하나를 세포 속에 차곡차곡 저장하는 과정. 사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힘을 쓰는 것보다 흐름의 순서를 외우는 것이 더 어렵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그리고 싶은 선을 마음껏 펼쳐내는 시간. 이번 폴 수업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내 안의 숨은 감각을 깨우는 의식과도 같았다. 익숙한 사복을 입고 낯선 허공으로 뛰어든 곳에서 비로소 발견한 당당함. 그것은 폴 위에서 피어난 가장 섹시하고도 찬란한 나만의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