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단계. 팔 생각도 없던 집이 팔리던 순간

by지크

인생에는 가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나를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부동산 상승장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신고가가 나왔고, 주변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집값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비쌌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비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떤 아파트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고 저도 괜히 들떴습니다.


사실 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합니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고 하니 우리 집은 도대체 얼마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실거래가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으로 집을 내놓았습니다.

부동산 사장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장님, 이 가격이면 쉽지 않을 텐데요"


저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안 팔려도 괜찮아요"


진심이었습니다.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시장은 언제나 그렇듯 상승 뒤에 하락이 찾아왔습니다. 최고가를 찍었던 집값은 몇 년 동안 계속 떨어졌고, 어느 순간 제가 내놓았던 가격은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숫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내놓았다는 사실조차 있었고 연락도 없었기에 완전히 잊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다시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뉴스가 조금씩 나오던, 여느때와 같은 오후에 갑자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 집 보러 가도 될까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네?"


"매수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설마 싶었습니다.


"그 가격인데요?"


"네"


"지금 시세 아시잖아요"


"그래도 보러 가겠다고 하십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멍했습니다. 4년 전 최고점 수준의 가격이었고 지금 실거래가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 그래도 보겠다고 하니 오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팀이 다녀갔습니다.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며칠 뒤 두 번째 팀이 왔습니다. 또 연락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다시 신경을 껐습니다. 그냥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전화가 왔습니다. 부동산 사장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사장님"


"네"


"계약할 분이 나왔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네?"


"매수 의사 확실합니다. 계약금 바로 넣을 수 있다네요"


저는 본능적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잠깐만요. 가격 확인하셨어요?"


"했습니다"


"제가 내놓은 그 가격이요?"


"네"


"정말요?"


"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였습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한동안 전화기를 놓지 못했습니다. 쇼파에 털썩 앉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습니다. 생각해보니 단순하게 집이 팔리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집을 팔면 어디로 이사를 가며 아내와 아이가 익숙한 이 동네를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진짜? 그 가격에?"


"응"


한참 동안 둘 다 말이 없었습니다. 아이와 놀아주며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냥 부산 가서 살면 안 돼?"


"부산?"


"우리가 원래 계속 언젠가 부산에 가서 살자고 이야기를 했었잖아. 마침 아이가 올해 유치원도 가야하고 이왕이면 이때 이사하는 것도 좋아보여"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저희는 예전부터 언젠가는 부산에 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습니다. 부모님도 계셨고, 동생 가족도 있었고, 서울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건 언젠가의 이야기였습니다. 당장 내일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서울 집 팔고 부산 집 사면"


"응"


"그 차액으로 당신이 그렇게 말하던 파이어에 가까워지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계산기를 꺼냈습니다. 현재까지 소중하게 키워온 현금성 자산에 아파트 매도 금액을 더하고 부산 아파트 매수 금액을 뺐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숫자를 보는 순간 손이 멈췄습니다.


파이어 목표 금액이 눈앞에 와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몇 년 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숫자가 실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집이 팔릴 것 같아요"


"그래?"


"만약 부산 내려가면 어떨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정할 일이지만"


"..."


"20년 넘게 떨어져있던 놈이 가까이 올 수 있으면 우리야 좋지. 손주도 자주 보고"


동생에게도 연락했습니다.


"진짜 내려오는 거야?"


"아직 모르지"


"오면 좋지. 애들끼리 놀기도 좋고"


부모님도 동생도 모두 환영해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연했습니다. 이건 집을 파는 문제가 아니라 서울을 떠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의 생활 터전이 바뀌고, 인간관계가 바뀌고, 아내가 친정과 멀어지며, 어쩌면 아이의 미래도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었습니다. 부모님 의견도 중요했고 아내 의견도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사람들은 그들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날 동료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 수 있었지만 동료들의 반대가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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