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속인 사람들
거짓말이 들통난 사람이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장면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들은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1920년 2월, 독일 베를린. 한 젊은 여자가 운하에 몸을 던진다. 경찰에 구조된 그녀는 신분증도 없었고, 자기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 병원으로 보내졌다.
2년 전, 러시아 혁명으로 쫓겨난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가족이 한밤중 지하실에서 모두 총살당했다. 그러나 막내딸 아나스타샤만은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유럽에 떠돌고 있었다. 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름 없는 그 여자를 보고 말한다. 당신, 러시아의 공주 아니에요?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총살당하던 밤 쓰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한 병사의 도움으로 탈출했다고.
세상은 둘로 갈렸다. 망명한 러시아 귀족들 가운데 일부는 그녀가 진짜 공주라고 믿었다. 그녀가 황실 사람만 알 법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여동생은 직접 그녀를 만나 보고 고개를 저었다. 한 사설탐정은 그녀가 폴란드 출신의 공장 노동자 프란치스카 샨츠코프스카라는 증거를 내밀었다. 그녀가 진짜 공주인지를 가리는 소송은 독일 법정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법원은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했고,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리고 198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60년 넘게 아나스타샤였다.
그녀가 죽은 지 10년 뒤인 1994년, 과학이 답을 내놓는다. 그녀가 생전에 수술을 받았던 병원에 그녀의 몸 조직 일부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 DNA는 러시아 황실과 일치하지 않았다. 대신 프란치스카 샨츠코프스카의 친척과 일치했다. 그녀는 폴란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군수 공장에서 일하던 여자였다. 그리고 훗날 발견된 황제 가족의 유해는, 아나스타샤가 그날 밤 가족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공주라고 믿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60년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말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는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었다.
1959년,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거짓말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험실에서 보여 준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 시간 동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을 시킨다. 그리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에게 이 일이 아주 재미있었다고 거짓말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한 무리에게는 그 대가로 20달러를, 다른 무리에게는 1달러를 주었다.
나중에 그 일이 정말 재미있었는지 묻자, 20달러를 받은 학생들은 솔직하게 지루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1달러를 받은 학생들은 그 일이 꽤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고작 1달러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바꾸어 버렸다.
페스팅거는 이것을 〈인지 부조화〉라고 불렀다. 인간은 자신이 한 일과 자신이 믿는 자기 모습이 어긋날 때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한 말을 믿어 버리는 것이다.
거짓말은 기억만 고쳐 쓰지 않는다. 양심도 무디게 만든다. 2016년 영국 런던의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거짓말을 여러 번 하게 하고 그동안 뇌를 촬영했다. 처음 거짓말을 할 때,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강하게 반응했다. 마음이 찔린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되풀이할수록 그 반응은 점점 약해졌다. 그리고 반응이 약해질수록 다음 거짓말은 더 커졌다. 뜨거운 물에 담근 손이 곧 온도에 익숙해지듯, 뇌는 거짓말의 불편함에 익숙해진다. 첫 거짓말은 찔리고, 두 번째는 덜 찔리고, 열 번째는 아무렇지 않다. 연구진은 이것을 〈미끄러운 비탈〉이라 불렀다.
거짓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돌아와 말한 사람의 기억을 고쳐 쓰고, 양심을 무디게 한다. 그리고 충분히 오래 되풀이되면, 마침내 그 사람 자신이 된다.
가장 위험한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운하에서 건져 올린 이름 없는 여자는, 아마 마지막 날까지 공주로 눈을 감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