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기 위해 오른다
사람은 비가 내리는 것을 본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 우산 위로 떨어지는 소리, 젖은 아스팔트 냄새. 그러나 그 누구도 비가 시작되는 순간을 본 적은 없다. 비는 언제나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높이에서 태어나, 다 자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
비의 탄생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바다와 강과 나뭇잎에서 물이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되어 떠오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는 차가워지고, 수증기는 다시 물방울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물방울은 혼자서는 맺히지 못한다.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다에서 날아오른 소금 알갱이, 사막의 먼지, 꽃가루, 심지어 바람에 실려 올라간 세균. 빗방울은 모두 이 작은 씨앗 하나를 품고 태어난다.
구름 속 물방울은 너무 작아서 떨어지지 않는다.
빗방울 하나가 되려면 구름 방울 백만 개가 모여야 한다. 그렇게 무거워진 물방울은 마침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그리는 눈물 모양과 달리, 떨어지는 빗방울은 공기에 눌려 햄버거 빵처럼 납작한 모양이 된다.
모든 빗방울은 한 번은 하늘로 올라갔던 물이다.
내려오기 위해서는 먼저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떨어지는 것만 보고 슬퍼하지만, 비는 사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다.
땅에 닿은 비는 강이 되고, 샘이 되고, 뿌리를 적신다. 사막의 어떤 개구리는 비가 올 때까지 몇 년 동안 땅속에서 잠을 잔다. 어떤 씨앗은 수십 년을 기다린다. 많은 생명에게 비는 단 하나뿐인 식량이다. 그리고 지구의 물은 거의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같은 물이 올라가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갈 뿐이다. 오늘 내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은 언젠가 공룡이 마셨던 물인지도 모른다.
그 물은 지금 우리 몸속에도 흐르고 있다.
사람의 몸은 60퍼센트가 물이고, 피는 그 대부분이 물이다. 물은 쉽게 데워지지도, 쉽게 식지도 않는다. 같은 양의 쇠보다 열 배 가까운 열을 품어야 온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우리의 피는 37도 안팎을 지킨다. 피에는 소금기도 있다. 바닷물보다 훨씬 옅지만, 그 짠맛은 생명이 처음 태어난 곳이 바다였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바다를 몸속에 담은 채 뭍으로 올라온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실 비는 지구가 만든 거대한 정수기다. 바닷물이 증발할 때 소금과 찌꺼기는 모두 바다에 남는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깨끗한 물뿐이다.
인간은 이 정수기를 기다리지 못했다. 1854년 런던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 의사 존 스노는 사망자들의 집을 지도 위에 하나하나 점으로 찍어 나간다. 점들은 브로드 거리의 한 우물 펌프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가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 내자 전염병은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목숨을 앗아 가는 것은 나쁜 공기가 아니라 더러운 물이었다. 이후 인간은 물을 모래에 거르고, 약품으로 가라앉히고, 염소로 소독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수돗물에 염소를 넣기 시작하자 장티푸스로 죽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수돗물은 인류가 만든 어떤 약보다 많은 생명을 구했다.
오늘날 국제 우주 정거장의 우주인들은 자신의 땀과 소변을 걸러 다시 마신다. 그 물의 98퍼센트가 되살아난다. 우주인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오늘의 커피는 어제의 커피라고. 인간은 결국 하늘이 수십억 년 동안 해 온 일을 작은 기계 안에서 흉내 내고 있다.
그러나 비는 생명만 주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신들이 큰비를 내려 인간을 쓸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 인도에는 물고기의 경고를 듣고 배를 만든 마누가, 그리스에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데우칼리온이 있다. 중국에는 13년 동안 물길을 다스려 대홍수를 막아 낸 우 임금이 있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민족들이 하나같이 세상이 물에 잠겼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학자들은 그 뿌리를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서 찾기도 한다. 거대한 빙하가 녹으며 바다의 높이가 100미터 넘게 올라갔고, 해안에 살던 사람들은 고향이 물에 잠기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렇다면 다른 행성에도 비가 내릴까.
금성에는 황산 비가 내린다. 그러나 그 비는 땅에 닿지 못한다. 지표의 온도가 450도가 넘어 떨어지는 도중에 다시 증발해 버린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는 메탄 비가 내린다. 중력이 약하고 공기가 짙어서, 빗방울은 지구보다 훨씬 크고 느리게, 마치 눈송이처럼 내려온다. 천왕성과 해왕성의 깊은 곳에서는 다이아몬드 비가 내릴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태양계 밖의 한 행성에서는 녹은 유리가 시속 수천 킬로미터의 바람을 타고 옆으로 쏟아진다고 한다.
우주는 온갖 비로 가득하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낸 바로는, 하늘에서 내린 물이 땅에 닿아 강이 되고, 그 물을 생명이 받아 마시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다.
다음에 비가 오면 잠시 창밖을 바라보자. 저 빗방울들은 먼 바다에서, 숲에서, 누군가의 눈물에서 올라갔다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그 귀환을 기다려 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