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이 없어도 사랑은 남는가
반려동물로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들은 가끔 깜짝 놀란다. 수컷 한 번 본 적 없는 암컷 도마뱀이 어느 날 알을 낳아 놓은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먹는 달걀도 대부분 수탉을 만난 적 없는 암탉이 낳은 무정란이다. 많은 동물의 암컷은 짝이 없어도 때가 되면 알을 만든다. 다만 그 알은 깨어나지 않는다. 생명이 되려면 수컷의 절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마뱀 중에는 이 규칙을 어기는 것들이 있다.
2006년, 영국 체스터 동물원의 코모도왕도마뱀 플로라가 알을 낳는다. 플로라는 태어나서 한 번도 수컷과 함께 지낸 적이 없었다. 사육사들은 당연히 무정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알 속에서 새끼가 자라고 있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새끼들의 유전자는 모두 어미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생명. 과학자들은 이것을 〈단성 생식〉이라 부른다. 마침 알이 크리스마스 무렵 깨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영국 언론은 〈동정녀 출산〉이라며 떠들썩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플로라의 새끼들은 모두 수컷이었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인간과 반대로 성염색체가 다른 쪽이 암컷이다. 어미 혼자 새끼를 만들면 같은 염색체 두 개를 물려받게 되고, 그렇게 태어난 새끼는 수컷이 된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 폭풍에 휩쓸려 외딴섬에 홀로 떠밀려 간 암컷 한 마리. 그녀는 혼자서 아들들을 낳는다. 그리고 그 아들들과의 사이에서 다시 무리를 이룬다. 단 한 마리에서 하나의 종족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미국 남서부의 사막에는 아예 수컷이 존재하지 않는 도마뱀도 있다. 뉴멕시코채찍꼬리도마뱀이다. 이 종은 모두 암컷이며, 모두 어미의 복제로 태어난다. 수백만 년 전 서로 다른 두 종의 도마뱀이 만나 생겨난 잡종이 수컷 없이 번식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생물이 이렇게 하지 않을까.
혼자서 번식할 수 있다면 짝을 찾느라 애쓸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다. 답은 다양성에 있다. 복제로만 태어난 무리는 모두 같은 약점을 가진다.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 병은 무리 전체를 쓰러뜨린다. 암컷과 수컷이 유전자를 섞는 것은 번거롭지만, 그 번거로움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는 보험이 된다.
그리고 채찍꼬리도마뱀에게는 기묘한 습성이 하나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크루스는 이들을 관찰하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수컷이 없는 이 도마뱀들이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한 암컷이 수컷처럼 다른 암컷의 등에 올라타 구애를 한다. 몸속의 호르몬 주기에 따라 역할은 번갈아 바뀐다. 그리고 이런 구애를 받은 암컷은 혼자 지낸 암컷보다 더 많은 알을 낳았다.
수컷은 사라졌다. 번식에 짝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런데도 이 도마뱀들은 아직 서로에게 구애를 한다. 그리고 사랑을 받은 쪽이 더 많은 생명을 낳는다. 사랑은 필요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