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에게도 권력이 있을까
10년 동안 함락되지 않던 트로이의 성문을 연 것은 칼이 아니었다.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거대한 목마였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것을 선물로 여기고 스스로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날 밤, 목마의 배 속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빠져나와 성문을 열었다.
개미의 세계에도 목마가 있다.
어떤 개미 종의 여왕은 홀로 다른 개미 군락으로 숨어 들어간다. 개미는 눈이 아니라 냄새로 서로를 알아본다. 낯선 냄새를 풍기는 침입자는 곧바로 공격당한다. 그래서 이 여왕은 먼저 상대 군락의 냄새를 몸에 덮어쓴다. 그리고 군락 깊숙이 들어가 그곳의 여왕을 찾아낸다. 여왕을 죽인 뒤에는 그 몸을 핥고 문질러 죽은 여왕의 냄새까지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일개미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여왕을 섬긴다. 다만 그 여왕이 어제의 여왕이 아닐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어미를 죽인 자의 알을 정성껏 키운다.
인간은 곤충의 무리를 들여다볼 때마다 그 안에서 왕과 신하, 권력과 복종을 찾아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벌집을 다스리는 커다란 벌을 〈왕〉이라고 불렀다. 그 벌이 암컷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2천 년이 지난 1609년, 영국의 목사 찰스 버틀러가 『여성의 군주국』이라는 바카라을 쓰면서다. 그때부터 그 벌은 여왕벌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곤충의 세계에는 정치가 있었다.
쌍살벌의 둥지에는 엄격한 서열이 있다.
우두머리 암컷은 알을 낳고, 아랫것들은 먹이를 나르고 둥지를 짓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엘리자베스 티벳츠는 이 벌들의 얼굴에 있는 검은 점무늬가 계급장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점이 많고 복잡할수록 강한 벌이다. 그녀는 실험을 한다. 약한 벌의 얼굴에 물감으로 점을 그려 넣어 강한 벌처럼 꾸민 것이다. 결과는 가혹했다. 가짜 계급장을 단 벌은 동료들에게 집중 공격을 당했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지위를 속이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개미의 세계에는 전쟁과 노예도 있다.
어떤 개미 종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도, 새끼를 돌보지도 못한다. 대신 이웃 개미 군락을 습격해 번데기를 훔쳐 온다. 훔쳐 온 번데기에서 깨어난 개미들은 자신이 납치된 줄도 모르고 주인을 위해 평생 일한다. 그러나 반란도 있다. 독일의 생물학자 주자네 포이치크는 노예가 된 개미들이 주인의 번데기를 몰래 물어 죽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들은 풀려날 수 없지만, 가까운 곳에 사는 친족들이 다음 습격을 당하지 않도록 적의 다음 세대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꿀벌 왕국의 왕위 계승은 더 잔혹하다. 늙은 여왕이 무리를 이끌고 떠나면, 벌집에는 여러 마리의 새 여왕이 번데기 방에서 자라고 있다. 가장 먼저 깨어난 여왕은 다른 방들을 찾아다니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자매들을 침으로 찔러 죽인다. 두 여왕이 동시에 깨어나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 결투를 앞둔 여왕들은 서로를 향해 날개를 떨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양봉가들은 이것을 〈여왕의 노래〉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실리는 수십 년 동안 꿀벌 무리를 관찰했다. 꿀벌 무리가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때, 그곳을 정하는 것은 여왕이 아니었다. 정찰벌 수백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져 후보지를 둘러보고 돌아온다. 그리고 춤으로 자기가 본 곳을 알린다. 좋은 곳일수록 더 오래, 더 열정적으로 춤춘다. 다른 정찰벌들은 그 춤을 보고 직접 가서 확인한다. 마음에 들면 돌아와 같은 춤을 춘다. 경쟁하는 후보지를 알리는 벌에게는 머리를 들이받아 춤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한 후보지에 충분한 수의 지지자가 모이면 무리 전체가 그곳으로 날아간다. 실리는 이것을 〈꿀벌의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여왕은 그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왕이 하는 일은 알을 낳는 것뿐이다. 여왕이 늙고 약해지면 일벌들은 새 여왕을 키우고, 옛 여왕을 몸으로 둘러싸 질식시키기도 한다.
인간은 벌집을 보며 왕을 떠올렸고, 여왕을 떠올렸다. 그러나 벌집을 다스리는 것은 여왕이 아니었다. 어쩌면 인간이 곤충에게서 본 것은 곤충의 정치가 아니라, 늘 우두머리를 찾아 헤매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