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올 자리를 믿는 힘

오늘의 절망은 결론이 아니다

by미리나


자율신경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다. 오래 진료를 보다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다 설명하지 않아도 주치의 선생님은 작은 변화를 먼저 알아채신다. 이번에도 자율신경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치료를 몇 번이고 해 주셨다. 몸의 패턴을 읽고 있다는 느낌은 내게는 큰 안전장치다. 내가 2년 전 자율신경 치료가 성공적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외쳤을 것이다.


“원장님, 저 치료했는데 왜 좋아지지 않을까요 ㅠㅠ”



적어도 내 몸은, 한 번은 돌아온 적이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사실 수백 번일 것이다. 그때의 치료 경험이 기준점이 되어준 것은 내 삶의 별표 100개짜리 사건이었다. 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했더라면 지금처럼 “올라오고 있구나” 하며 견디기보다 훨씬 절박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으니까.




몸은 기억을 장시간 남겨준다. 한 번이라도 조절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 있으면 공포의 크기가 달라진다. 내 몸을 감지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능력 같다.


나는 고통을 통해 능력을 선물 받았다. 원치 않았던 방향의 초능력이지만.



아픈 건 괴로운데, 두려운 건 아픈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핸디캡이 남는다면 남으라지.


나는 믿는다. 만성통증 속에서도 사람은 자기만의 회복 경로를 찾아낸다고. 끝까지 가 볼 작정이다.








잠은 몸을 쉬게 하지만, 비겁하게 숨겨 두었던 통증까지 세트로 깨운다. 밤새 움직이지 않으면서 염증 물질이 고이기라도 한 듯 잠시 뻣뻣해진 몸을 보면 허탈함, 공허함, 위화감이 몰려온다. 주치의 선생님은 아이들처럼 호기심을 유지하라고 늘 조언하신다. 한데 자율신경은 쓸데없이 영민해서 위험이 지나갔는데도 혼자 계속 대비한다.




아무 일도 없는데 심장이 뛰고 괜찮다는데도 몸은 안 괜찮다고 외친다. 전쟁이 다 끝난 전쟁터에서 나만 아직 총을 쥐고 벌벌 떠는 병사 같다. 내 몸은 아직 싸움이 끝났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러니 몸이 아팠던 것이다.


“짜증 나, 돌겠네, 미치겠다, 죽고 싶네, 이 미친 병, 가족도 모르는 병!” 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가끔은 나조차 이해 안 되는데 가족이라고 알까?





5월 8일 금요일 몸을 일으켜 씻고 집을 나섰다. 대중교통 탈 기운도 없어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탈 때마다 마음이 찔린다. 환승 한 번이면 될 8 정거장 거리인데, 이것도 못하나 싶어 한심하다. 힘들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도 체력이 바닥나야 하나 싶어서.



그래도 오늘의 나는 씻었고, 옷을 입었고, 문밖을 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내게는 결심이다. 그래서 이 한 걸음도 회복이라고 우겨보고 싶다.



무력감의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곧 헬스장을 등록할 예정이다. 유연한 편이라 재작년 했던 폴댄스나 요가를 하고 싶은데 동작을 생각하니 절레절레.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러닝도 하고 근력운동도 해야겠다.




나는 마음먹은 일은 대체로 곧잘 해내는 편이었다. 살을 빼야겠다고 하면 실제로 감량했고,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내 몸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고관절이 아프고 불편해 움직이기 힘들었던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충분히 쉬고 있는데도 계속 아픈 경험은 충격이었다.



몸은 써야 하지만 의지대로만 다룰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과하게 쓰면 무너졌고, 너무 쉬어도 통증이 올라왔다. 그때 알게 됐다. 몸은 의지의 영역이 아니라, 조절과 균형의 영역이라는 것을.








진료 대기실에서 유방암 환우 어머님을 반년만에 뵈었는데 또 아프냐며 안타까워하신다.


"저도 이유는 알고 싶은데, 안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오늘까지만 아프다 생각하죠 뭐"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나도 항암 네 번밖에 안 남았다고 해야겠네"라며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타인에게 말하듯 나 자신에게도 늘 담담함을 장착하고 싶다.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금방이다. 통증도 잠시 잊힌다.




약 효과가 괜찮은 것 같아 어제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5일 치를 더 처방해 주셨다. 전에는 머리만 빼고 온몸의 신경을 거친 솔로 세게 긁어내는 느낌이었다면, 약을 먹고 난 뒤에는 그 거칠던 통증이 잠깐 찌르르한 감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안심할 틈도 없이 통증은 또 다른 얼굴로 돌변했다.



억눌려 있던 게 움직이면 통증의 강도뿐 아니라 질감까지 달라지는 것 같다. 가끔 내 몸에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싶다.

아직은 하루를 견디는 데 온 힘이 들지만 끝이 안 보인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힘들다는 말만 자꾸 나온다.



원장님은 자주 '현재를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지금”이라는 말만 자꾸 마음에 박힌다. 다른 환우분들께도 마찬가지다. 몇 번이나 들었다.


아직은 내 마음에 금이 가 있나 보다. "좋은 말"에 자주 젖는 걸 보면.




지난달 원장님께 감정을 너무 잘 흡수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머무르되 지나가게 두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감정을 너무 깊게 끌어안고 오래 붙들지는 말라는 뜻과 비슷했다.




9일 토요일 아침, 점심, 저녁 약이 각각 달랐다. 점심 약까지 먹었는데 결과는 바로 몸으로 왔다. 한 차례 낮잠이 아니라 몸이 꺼지는 듯한 수면이었다. 깨어나도 깬 게 아니고, 다시 잠으로 끌려 들어갔다.



밤에도 약을 먹었고 잠은 계속 이어졌다. 이상하게 몸은 더 무거웠다. 컨디션은 50%. 절반만 살아있는 느낌. 소화가 안 되어 두 번 구토를 했다. 기운은 바닥을 뚫고 기운이 통째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누군가 오래 압축해 둔 통증을 탄환처럼 장전해 놓았다가 순간마다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유쾌하지 않은 이 느낌... 악 소리가 날 만큼 날카로운 통증이 얼굴과 턱으로 퍼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머리는 맑았다. 이 정도면 두통까지 올 법한데 웬일인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기뻤다.




10일 일요일 눈을 뜨니 오후 1시였다. 무려 14시간의 수면. 이건 분명 비정상적인 하루였다. 밤새 악몽을 꿨던 것 같은데 통증 때문에 두 번이나 깼던 것이 기억의 전부였다.



잠결에도 같은 생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됐다. 왜 이렇게 가렵고 아프지. 대상포진 약효가 떨어진 건가. 잠이 해결이 아니라 도망처럼 느껴졌다. 이만큼 잤으면 몸이 가벼워져야 하는데 더 깊은 통증 속으로 침잠하는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기지 못한 채 나는 다시 까무러치듯 잠에 떨어졌다. 주말은 엉망이었지만 잠이라도 잘 잔 것에 만족한다.




그 사이 카톡창에는 서울 날씨가 너무 좋다며, 대구도 화창할 테니 얼른 나가보라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쌓였다. 자율신경 오픈채팅방도 비슷했다. 누군가 산바카라을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올리자 부러워하는 이들, 그리고 벌써 몇 년째 이 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서로 고통을 토로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어느 분은 주사치료를 맞고 오셨다며 이 톡이 눈에 띄었는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빨리 병원 가고 싶다.



숨통 트이는 기분 넘. 잘. 알





가족, 친구, 일, 병원까지. 오픈방이 많다 보니 모든 말을 제때 읽지는 못한다. 그래도 늦게 들어갔다가 유독 눈에 걸리는 분위기라는 게 있다. 얼마 전엔 방 안이 한동안 절망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는 지쳤고, 누군가는 무너졌고, 체념 같은 말들이 물처럼 번졌다. 나도 같이 가라앉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장문을 썼다. 힘든 건 얼마든지 털어놓되, 서로를 더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는 말만은 하지 말자고. 응원까지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살아가는 방향의 말을 남기자고. 나 역시 자칫하면 그 절망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제안에 약속이라도 한 듯, 그때부터 서로에게 예쁜 말들만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고통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그 마음들이 무거워지는 나의 주말을 간신히 지탱해주고 있었다.




나를 정성껏 돌봐주신 원장님도, 내가 어둠 속에 머물던 시간엔 이런 마음이셨겠거니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힘을 얻었던 원장님의 말씀들을 퍼드린다. 그 커다란 마음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웠고 언젠가 희미해질까 봐 녹음을 하고 집에 와서 곱씹고 받아 적어 두기도 했다.


그 마음들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호기심이 되고, 살아갈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나에게도.








통증은 늘 일정하지 않고, 지금 상태는 회복의 길로 나아가고 있지만 순탄하지 않다.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통증이 매운맛일 땐 주사효과가 확실할 때가 많아서서 단순하게 아픈 게 낫다.



지금은 통증이 어설프게 퍼져서 더 힘들다. 주사를 맞고 ‘무통’을 경험하면 몸은 현재의 상태를 완벽했던 순간과 비교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 통증보다 더 성가시고 예민하게 느껴지는 대조 효과가 생긴다. 큰 불은 꺼졌지만 신경은 아직 경계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된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통증을 참는 상황이 더 지루하고 괴롭다. 산바카라이 좋다는 건 알지만 실행할 힘이 없다. 저녁 이후부터 눌려 있던 염증 반응이 더 크게 올라온다. 얼굴, 눈, 귀 주변까지 욱신거리며 얼얼하다. “잠깐 쉬고 싶다 아니 그만하고 싶다.”




심장 소리가 귀 안쪽에서 둔탁하게 울렸다. 숨겨둔 북이 두드려지는 것처럼 고요할수록 더 또렷했다. 옆구리와 견갑골은 양손으로 움켜쥐고 비트는 듯 조여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잠깐 괜찮아질 것 같다가도 갈비뼈 사이로 긴장이 느껴졌다.




엉치뼈, 골반뼈, 꼬리뼈, 하지통증은 사타구니까지 번졌다. 전부 숫자로 치면 5 정도. 견딜 만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정도였다.문제는 특정 자세였다. 몸이 조금만 이탈나면 눌려 있던 전류가 통과하듯 쩌릿한 통증이 튀어 올랐다. 단번에 7까지 올라갔다. 통증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강도는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는 울리고, 어딘가는 당기고, 어딘가는 날카로워졌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밤공기 속 잡음처럼 끊임없이 떠다녔다. 다행인 건 이제 종일은

아니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 잠들 땐 행복한데 일어날 땐 고통스러워서 무력함으로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할 수 있다. 오로지 몸을 지키기 위해 다 버리고 정말 애써왔다고.




약을 먹고 더 아픈 게 느껴졌던 게 황당하지만 몸 안에서는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상처 위로 갑자기 조명이 켜지는 것처럼.


더 아파진 건 아니고 이제야 다 느껴지는 것뿐이다.




통증은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다. 약이 들어오면 몸이 치료시작이라고 깨우는 걸 경험한 적이 있다.



왜 위기 앞에서는 이렇게 쉽게 기울까. 분명한 건 감정 없이는 회복될 수 없고 오늘의 절망이 결론도 아니고, 오늘의 평온도 완성은 아니다.


감정은 지나가는 컨디션이자 날씨일 뿐이다. 흔들린 뒤에도 다시 돌아올 자리를 잃지 않는 힘을 많이 기르고 싶고, 늘 잘해가고 싶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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