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통증
2026년 5월 5일 화요일
무력감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상한 물처럼 피로가 고였다. 나를 자꾸만 아래로 끌어당긴다. 전신은 물을 잔뜩 머금은 솜이불처럼 변해 골격을 무겁고 눅눅하게 짓누른다.
고통이 한가득 들어찼다. 마음의 빈터에 뒤늦게 들이닥친 것은 깨끗한 평온이 아니라 미처 치우지 못한 채 쌓여온 전신의 통증이다. 나는 이번에 나를 무너뜨린 것이 마음이 아니라 육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마음이 부서진 날들은 언제나 오싹한 냉기를 동반했다. 내가 깨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든 것이 흩어진 뒤에야 알게 되었다. 찬란한 햇빛 아래에서도 세상은 얇고 불투명한 막 너머에 존재했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수만 리 물밑에서 건져 올린 듯 먹먹하고 멀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유령처럼 부유했다.
그 유령의 시간 동안 나는 살아 있음을 연기했다. 입술을 억지로 끌어올려 웃고, 대답하며, 괜찮다는 말을 공기 중으로 흩뿌렸다. 뼈마디와 근육 사이, 장기의 구석구석에 낱낱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터져 나오는 이 통증은 비명을 지르지 못한 나를 대신해 온몸으로 울어주는 나의 애도 기관이다.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괜찮아지려 하지 않는다. 천장을 향해 열린 눈 속으로 빛이 고인다. 숨이 폐의 가장 깊은 구석까지 드나드는 느낌을 사뿐사뿐 따라간다. 몸은 제 몫의 통증들을 꺼내놓는다. 나는 그 울음을 말리지 않는다. 배신감과 서운함의 겹 속에 갇혀 있던 몸이 이제야 제 무게대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제 발바닥의 상처를 핥는 동물처럼, 이 피로를 통해 나의 부피를 체감한다. 내가 바닥의 일부처럼 깊이 가라앉는 저녁.
요즘 특히 아침이나 자기 전, 신경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한 없이 예민해졌었다. 가려움이 호전돼도 통증은 기존 통증에서 더 얹어져 옷깃만 스쳐도 살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고,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칼로 긁는 듯 욱신거렸다. 문제는 통증만이 아니었다. 계속 긴장한 신경 끝에서 몸의 에너지가 조금씩 새어나가는 느낌이었다. 몸은 방전 직전 같았고, 통증은 잠든 사이에도 쉬지 않았던 듯, 식은땀과 어지러움이 몸을 떠돌았다.
5월 6일 수요일
중간중간 무력감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은 아니다. 악화되지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걸 믿으며 오늘도 나아간다. 중간에 또 주저앉더라도 결말만큼은 늘 해피엔딩이었으니.
오늘 병원 진료를 못 봤다. 집에서 앓다가 늦게 출발했고, 도착하니 5시가 넘어 있었다. 간 김에 테이블에 앉아 글도 썼다. 치료 효과가 요즘은 보통 5일 정도 유지됐는데, 이번엔 그걸 넘겼다. 안심이 돼 노트에 적어두었다.
“5일 돌파.” ㅎㅎ
누군가에게는 겨우 5일일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이 매일 파티처럼 몰아치던 시기의 나에게는 그 5일이 거의 작은 기적에 가까웠다.
잠깐 담소를 나누었다.
5월 7일 목요일
치료를 받지 않은 지 일주일째.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앞벅지 통증과 팽창감은 절반 정도 줄었지만 옆벅지는 남아 있었다. 핸드폰을 오래 보기 어려웠고 팔에 힘이 빠졌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상태들을 붙잡고 있으면 더 쉽게 무너질 것 같아서다.
악몽도 잦아졌다. 줄어들긴 했지만 주 2회 정도는 밤 사이 눌러둔 것들이 새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통증도 이제는 함께 사는 것에 가까워졌건만 체념과 반항 사이를 오가다가 어느 날은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몸은 참 꾸준하다. 외출이라곤 병원이 전부지만 그 시간이 아주 싫지만은 않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바로 눕는다. 그래도 웃을 일이 있었다면 그날은 좋은 날이다.
삶이 내게 보내는 편지
그동안 나는 당신을 몸이라 부르지 않고 마땅히 견뎌야 할 '짐'이라 불렀습니다. 서운함과 배신감이 칼날처럼 돋아나 스스로 무너지는 당신을 채찍질하며 제대로 아플 권리조차 박탈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버티고 버티다 투명하게 닳아버린 당신의 관절과 근육들은 배신을 한 것이 아니었는데 가장 정직하게 나를 위해 소멸해가고 있었음을... 미워하느라 외면했던 당신의 통증은 당신이 내게 보낼 수 있었던 마지막의 간절한 비명이었습니다.
아픈 몸을 미워하는 일은 부서진 집의 기둥을 발로 차는 것 같아요. 나는 나의 유일한 거처였던 당신에게 너무도 모진 집주인이었습니다.
버텨야만 했던 강요된 삶의 의지를 내려놓습니다. 이제야 당신은 자신의 고유한 무게를 되찾아 바닥으로 더 낮은 어둠으로 가라앉습니다.
가라앉음은 추락이 아니에요. 그것은 대지에 온몸을 밀착시키는 화해의 내맡김입니다. 닳아 없어진 자리마다 고요한 정적이 차오르기를 기다립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닳아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나의 마음만 아픈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견디려 하지 말고, 그저 당신의 무게만큼만 그 침대에 머물러 주십시오.
제 무게대로 가라앉는 법을 배운 당신의 몸이 오늘 밤만큼은 어떤 검열도 없이 편안히 아프다가 눈뜨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