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의사 선생님과의 지구별 소풍✨️

폭풍우를 견디게 할 행복의 저축

by미리나


통증은 상처이기 이전에 몸이랑 마음 사이에 길~게 깔린 좀 질긴 시즌 같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음 화가 또 있는 그런 거.


그래서 원장님의 치료는 처방에서 잘 끊기질 않는다. 주사나 약으로 해결이 안 되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버텨보세요” 하는 타입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걸으며 벌어진 거리를 줄여준다. 그것도 치료인지 나는 나중에 알게 된다.


어떻게든 환자들과 시간을 써주시는 정말로 보기 드문 귀한 의사.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는 말이 이렇게 사람으로 증명될 줄은 몰랐다. 좋은 시대라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 사이에 놓여서 그 덕에 살아간다.




삶은 대체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망하곤 하는데 가끔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살맛이 나기도 한다. 원래는 환자분과 둘이서 단출하게 놀 생각이었다. 급 만남에 가벼운 수준의 약속이라 거창한 목적지는 없었고, 병원 휴게실 힐링 센터에서 적당히 심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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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예상치 못한 인물이 합류하면 공기의 밀도가 어색하게 뒤틀리기 마련이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같은, 텐션을 짜야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금세 방전되고 마는 체력인데 이번엔 좀 이상했다. 오래전부터 세트 메뉴였던 것처럼 합이 맞았다. 원장님도 좋으신 것 같고, 환자분도 티를 못 숨기고. 셋 다 비슷한 타이밍에 좋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있었다.


​"아~너무 좋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순도 높은 진심이라니. 셋이 모여 만들어낸 온도가 너무 적당해서 좋다는 말 말고는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삶은 가끔 이런 뜬금없는 선물을 준다. 짜놓은 계획보다, 우연히 섞인 타인의 온기가 더 완벽할 수도 있다는 '알아차림'이라는 선물을.


덕분에 나는 오늘, "인생 참 내 맘대로 안 되네"라고 한탄하지 않고 "내 맘대로 안 돼서 다행이다"라는 어색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뭐, 이런 식의 뒤통수라면 백 번이라도 환영이다.






맨발 걷기는 길을 잃은 듯한 느낌 속에서도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는 감각을 되살려준다.



5월 1일 금요일, AM 7:00 눈을 떴을 때 꼬리뼈와 다리 통증은 4점까지 내려와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가벼워진 아침을 느낀다. 몸은 아직 완전히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가기지개를 켜고 계단을 떠올린다.


“해보자.”


1층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AM 8:00, 원장님께 톡이 왔다.



SNS는 물론이고 병원 환우분들이 계신 오픈방에도 종종 묵상을 공유해 주시곤 하셨다. 나는 이런 원장님을 마주할 때마다 늘 놀라움이다. 1분 1초가 귀한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지나온 마음을 꺼내어, 타인의 삶까지 함께 일으켜 세워주시니, 그 곁에서 배운다기보다 자주 따라 물든다.



읽고 있으니 마치 낮은 곳을 거부하지 않고 바다에 이르는 물의 여정을 보는 듯했다. 나는 힘이 있을 때는 과신했고, 힘이 빠질 때는 속상해하며 무너졌던 사람이다. 최근에도 다르지 않았으니. 결국 나는 아직 그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양극단으로 끌어당기는 유혹을 뒤로하고,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합당하심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기를 구하는 그 마음. 그리고 나의 불편함도 당신의 섭리를 더 비추기를 바라는 고백은, 인내를 넘어 고난을 보석으로 빚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영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힘이 있을 때 교만으로 기울지 않고, 비천할 때 원망으로 무너지지 않는 평온. 그 중심이 우리 삶의 바닥 깊숙한 곳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답장을 회복으로 드렸다



아침에 급으로 같이 병원 다니시는 환자분께 전화를 드렸다. 이전 병원에서도 뵈었던 분인데, 2년 전 원장님 교회에 함께 따라갔을 때 서로 낯익다며 반갑게 인사 나눴던 기억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차로 통증 경력이 꽤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인상한 번 찌푸린 적이 없고 언제나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늘 차 한잔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침 그 기회가 오늘 온 것이다. 오늘 진료가 있으시다 해서 직접 찾아갔다. 오직 그분을 뵈러.



작년에는 SNS에 올려달라고 하셨던 것도 이제야 올린다. 올해는 둘 다 쌩얼로 ㅎㅎ탈의실에서도 한참을 담소를 나눴다. 노동절이라 오전 진료가 11시까지인데 대기 환자분들이 많아진 덕분에 1시까지 여유롭게 수다를 잔뜩 떨 수 있었다.


좌: 25년 9월 24일 병원 로비 음악회에서♡ 우: 5월 1일 탈의실에서♡



대구 욱수동에서 배운
치유의 보석✨️






몸 안에서 무언가 썩어드는 듯한 느낌이 올라올 때가 있다.

며칠 전 하체가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날처럼... 그럴 때마다 원장님께 받은 삶을 꺼내어 되짚는다. 이 귀한 가르침과 회복을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원장님을 뵐 때마다 살기 싫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리곤 했다. 남의 이야기처럼 꺼내놓았지만, 사실 나도 지나온 자리들이다.



원장님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내가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먼저 알아주셨다. 흩어져 있던 말들을 정리해 달라고 하셨고, 원장님께 환자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이어져 있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더 분명히 느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늘 연결이 생기고 유대가 쌓인다.
원장님이 먼저 마음을 내어 주시니 환자들끼리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암 환우, 통증 환자분들이 빠른 회복을 할 수 있는 이유이자 희망이다.







과거의 내 증상을 체크해 보았다. 공황장애는 진단받은 게 아니라서 공황 비슷한 느낌만 있었다. 비뇨기는 완전 엉망이었고, 지금은 하체가 엉망이다.






분위기 좋은 치료실은 늘 웃음꽃이 핀다.






원장님은 우리를 대구 욱수동으로 데리고 가셨다. 30분쯤 맨발로 걷고, 작은 개천에 들어가 첨벙첨벙 물장구도 쳤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즐겁고 신이 났다. 돌리는 시선마다 그야말로 꽃길이었고 몸을 맡기고 있자니 자연 한가운데에 담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치료하는 자, 치료받는 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소년 같으신 맨발 의사 선생님 ㅋㅋ 앉아 계시다 잠 온다고 하셨다. ㅎㅎ


욱수동에서 봄향기를 가득 먹었다



나는 담소를 나누다가 지나간 일들이 생각나면서 서러웠다. 욱수동 와서 욱했다ㅋㅋㅋ 그래도 이렇게 풀어내고 같이 웃을 수 있었다는 게 행복했다.




아픈 사람들의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 주셔서 감동!! 유튜브 "행복한 의사 김정훈의 건강 이야기" 치면 나온다.




환자분도 즐겁다고 하셔서 나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역시 급벙개는 재미있다. 원장님이 담티역에 내려주셨는데 둘 다 내리자마자, 힘들고 아프다며 ㅋㅋㅋ집에 와서 떡실신했다. 낮잠을 두 번 잤더니 괜찮아져서 집 앞 도서관에 가 바카라도 읽고 미드도 봤다. 오랜만에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 먹으며 평온한 주말을 보냈다.




집 엘리베이터에 붙은 프로그램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 느낌이면 운동도 등록해서 할 수 있겠는데?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건 해본 적이 없는데 참 저렴하다.





조금만 흔들리며 지나가죠


2년 전 원장님이 보내주신 메시지인데 내 울음 포인트는 아닌 게 없지만 "조금만 흔들리며 지나가죠" 마지막 문장에 울음을 터뜨린 기억이 난다. 나는 이 말을 이제 완전히 이해한다.





충분히 만끽한다는 것은 노는 것도 맞겠지만, 마음의 에너지를 풀충전해 두는 게 아닐까 싶다. 폭풍우(비바람)가 몰아칠 때 저축해 둔 행복의 기억을 꺼내어 버틴다. 즐거울 때 온전히 즐기지 못한 사람은 힘든 시기가 왔을 때 꺼내 쓸 에너지가 없어 더 쉽게 무너지는 것 같다.



삶에서 고통을 안 만날 수는 없다. 그런데 행복으로 마음의 뿌리를 내리면, 비바람이 불어도 나무가 뿌리째 뽑히지 않고 흔들리는 정도로 그 시기를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원장님은 고통을 없애는 것보다 고통에 대응하는 나의 진폭을 줄이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여러 말로 이야기해 주시곤 했다.



봄날은 길지 않고, 맑게 개인 하늘빛 같은 날도 많지 않다. 시간의 유한성을 강조하는 말 같아서 슬프다. 그래서 평온한 일상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삶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시간인 것이다.



나중에 여유 생기면 즐겨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 또한 “지금은 아파서 안 돼, 여행은 무슨”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이 순간의 맑은 하늘을 온몸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만큼 비극이 또 있을까.



과거에는 이 말이 좋은 말로만 들렸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여러 번의 비바람을 겪으며 내면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또 아플까 봐에 잠식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충분히, 기쁘게, 차고 넘치도록 이 시간을 누리고 싶다. 곧 다가올지 모를 내일의 시련을 이겨낼 강력한 무기를 준비하려면.


그리고 나는 아직 그 ‘무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정말 중요한 건 버티기 위한 힘이 아니라 다시 돌아와도 괜찮을 만큼의 기억을 얼마나 잘 쌓아두는가가 아닐까.


어쩌면 그 답은 오늘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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