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주사를 맞았다
5월 11일 월요일 양쪽 옆벅지와 등 한가운데로 주사가 세 번 연달아 들어왔다. 숨어 있던 통증을 하나씩 겨누듯 정확한 자리. 얼굴+귀통증 추가로 턱에도 주사 맞았다.
물리치료도 받았다.
새벽에 세 번이나 깼다. 빨리 병원에 가고 싶은데 몸은 그 마음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빨리 주사를 맞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왔다.
약을 두 번 처방받았는데 처음 약은 운이 좋았다. 먹고 잠들면 통증이 가벼워졌던 날이 두 번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짧은 경험이 과장되게 커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약을 떠올렸다. 증상 변동과 관계없이 취침 전에만 꾸준히 먹어보자며 ‘괜찮았던 두 번’에 쉽게 기대를 걸면서.
지금은 회복이라기보다 연명 같다. 버티는 방향으로만 하루가 이어지는 것 같다.
양쪽볼(턱)이 며칠 뻐근하더니 욱신거린다. 귓속도 먹먹함 이상의 통증이다. 뜬금없이 날개뼈에 자극이 오고 기존에 있던 옆벅지, 골반, 엉덩이, 꼬리뼈 통증이 강해지고 있다.
약을 먹으면 통증이 되살아난다. 윤곽이 지나치게 또렷한 통증. 단톡방이라도 있는 것 같다.
"얘 약 먹었대" 하면 우르르 다시 살아나는 식.
워낙 다발성 이벤트 경력이 화려해서 통증이 여기저기 퍼지는 패턴 자체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문제는 이번은 참아보자는 단계가 아니라는 거. 그래도 대구라 다행이다. 마음먹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서울이었으면 꼬박 일주일 내내 약과 정신력 중 누가 먼저 쓰러지나 대결했을 각이다.
양쪽 턱은 먹먹한 수준을 넘어섰다. 볼과 귀 주변까지 통증이 꽉 찼다. 거기에 날개뼈 위쪽엔 신규 멤버도 추가됐다. 앞벅지 통증은 갔고, 기존 멤버들은 활동 중이다. 옆벅지, 골반, 엉치, 꼬리뼈. 얘네들은 심하게 연결된 듯 한 곳이 아프면 돌아가며 자기주장을 한다.
전반적인 하지 통증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비교적 빨리 좋아졌는데 꼬리뼈 때문인지 자세가 계속 무너진다. 몸 전체가 긴장 상태다. 신경이 과흥분되어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순간순간 답답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프면 원래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급 시시해진다. 반대로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엄청 중요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초점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평온이 세계관 최종 보스 가치가 되는데 그런 게 삶의 상위권 행복이었다는 걸 왜 몸이 박살 나야 알게 될까.
새벽부터 울어서 눈은 퉁퉁 붓고 기운도 다 빠졌다. 병원 가는 택시 뒷좌석에 몸을 반쯤 누워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플 때 병원 간판만 봐도 안도감을 느낀다.
나: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 오늘 힘들어요. 뿌엥.
원장님: 오늘 안 좋아 보이시네요.
나: 두 번째 약은 먹으면 이상하게 더 아픈 것 같아요. 어제는 자다가 자주 깼고,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어요. 새로운 통증이라기보다는 눌려 있던 통증이 도드라지는 느낌이에요. 주사 후에 일시적으로 통증이 올라오는 것처럼요. 갑자기 귀랑 얼굴 통증도 생겼고요.
원장님: 아이고~ 오늘은 많네(웃음).
그런데 약 먹으면 그런다고요?(갸우뚱), 치료해 봅시다.
나: 네. (사실은 처음 약을 다시 먹고 싶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깜빡하고 다시 말씀드렸다).
병원에서는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간호 선생님이 안녕하지 못하는 얼굴이라며 나를 안아주셨다. 선생님도 슬픈 일이 있었다고 하시기에 나도 안아주었다. ㅋㅋ
천장 보고 바로 누워보세요.
잠시 뒤 원장님이 주사실로 들어오셨다. 치료할 게 많다며 또 웃으신다. 주사를 오더 하시며 손과 생각이 급히 바빠지시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죄송해졌다.
원장님: 얼굴(턱) 치료도 할게요.
나: 얼굴에 주사 맞아요?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맞는다는 염증주사도 얼굴에는 무서워서 못 맞는데 잔뜩 긴장했다. 원장님은 생각보다 안 아프다고 하셨다. 대상포진이 신경통이냐며 귀랑 얼굴까지 다 아프다며 힘들다고 푸념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그 한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앞면이 아픈 건 아니죠?” 하고 다시 확인하시는데 아마 안면마비나 벨마비 같은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셨던 것 같다. 그래서 얼른 턱 쪽이라고 덧붙였는데 그런 작은 표현까지 놓치지 않고 살피는 태도 덕분에 지금까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사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증상이고, 내 기준에 대충 넘겨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들이 많았을 텐데도 혹시라도 숨어 있을 진짜를 놓칠까 조심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신뢰하게 된다.
그래도 계속 긴장됐다. 왜 아프다고 해서는... 안 맞는다고 할까.(대쫄보 특)
주사가 들어갔는데 정말 1도 불편하지 않았다. ㅎㅎ 다만 오른쪽 턱 쪽은 조금 뻐근했다. 이후 옆벅지 주사와 꼬리뼈 근처 주사도 맞았다.
꼬리뼈 쪽 주사를 맞을 때 바늘이 잘 안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말씀드렸더니 원장님은 아직 바늘을 빼지 않았다고 하셨다. ㅎㅎ 그런데도 억지로 바늘을 빼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안에서 휘젓는 것처럼 느껴져 순간 무서웠다. 근막이 촘촘해 바늘이 걸리는 듯했고 그 때문에 작은 각도 조정이 반복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주사를 맞아본 것도 아닌데 컨디션도 이슈로 긴장을 해서 평소보다 별의별 감각들이 다 느껴진다.
은 쟁반 좀 주세요(?)
빨리 주사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통증을 꾹 참고 있었는데 몰래 눈물이 났다. 주사를 놓으시던 원장님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난데없이 “은쟁반(?) 있나요” 하시는 것이다. 간호사님도 의아하신 듯 바라보자, 원장님 말씀이 압권이었다.
“미리나님 눈물 받아서 진주 만들어 우리 모두 살림에 보탭시다.” ㅋㅋㅋ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씀하시는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내가 웃으니 원장님도 본인이 말하고도 웃기셨는지 같이 웃으시고, 그 모습을 보며 또 웃고, 선생님들과 함께 웃음바다가 됐다. 정말 웃음은 강력한 치료제인 것 같다.
한바탕 웃고 나니 주사 맞은 얼굴도 시원했다. 글을 쓰는 지금, 오른쪽 통증만 욱신하고 얼얼하게 남아 있다.
내가 우는 게 흔치는 않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건네시는 농담이 참 감사했다.
“은쟁반에 눈물을 받아 진주를 만들자니”
환자의 슬픔을 소중하게 다뤄주는 낭만 의사. 눈물을 아주 귀하고 값진 것처럼 말해주시는 듯했다.
울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막상 눈물이 나면 내가 약해진 것 같고 왜 이렇게 나약할까 부정적으로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은쟁반 덕분에 슬픔도 가치 있는 감정처럼 다독임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면 파워 F)
진주는 조개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보석이라고 한다. 아픔 속에서 흘리는 눈물도 슬픔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반짝이는 보석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결과로 남을 수 있겠다는 큰 위로가 됐다.
그 생각에 집에 와서 또 울었다.ㅋㅋㅋ
울고 있는 민망함과 슬픔을 센스 있게 달래주시는 말 한마디에 오늘은 내 눈물이 귀하게 느껴진다. 정말 은쟁반에라도 받아두고 싶을 정도다.ㅎㅎㅎ지금 흘리는 눈물이 나중에는 진주 같은 보석으로 예쁜 행복으로 짠! 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수액을 맞으며 오랜만에 잠이 들었다. 오늘은 갈증이 없었다. 원장님께 처음 먹었던 약 처방을 부탁드렸는데 한참 고민하시는 눈치였다. 다른 건 참 넉넉하신 분인데 약에는 유독 인색하시다. 내가 약이 잘 듣는 체질도 아니고 앞전에 3일 치 스테로이드 양을 꽤 많이 썼기 때문에 지금은 더 쓸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렸더니 대상포진 약과 알레르기 약은 제외한, 일주일치만 처방해 줄 테니, 상태를 조절해 가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평소와 너무 다른 몸 상태에 한참을 누워 있다가 나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다음 날이 되면 원장님께서 늘 물으시는 단골 멘트가 있다.
“제가 어제는 마무리를 못 봐서요. 치료 후 좀 어떠셨어요?”
자고 왔다고 하면 잘했다며 웃으시곤 꼭 한마디를 더 덧붙이셨다. 그 목소리가 아직도 음성지원 되는 것 같다.
“어제는 의료비뿐 아니라 숙박비도 받아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