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분노의 반대말

by미리나


지난달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교회 독서 모임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꺼내셨고, 마음속에 묵혀 있던 생각들을 하나씩 건드려 일깨우는 듯했다. 워낙 말씀을 잘하셔서, 그 경험을 어떻게든 내게도 나누어주고 싶어 하시는 정중한 진심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이야기는 숲 속의 시냇물처럼 졸졸졸 끊이지 않고 흘러갔다. 세상에서 발견한 좋은 것을 얼른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듯한 그 순수한 마음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듣고 있으면서도 자꾸 그 자리에 가 있었다.




"분노의 반대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원장님이 내게 물으셨다.

나는 길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거의 자동처럼 대답이 나왔다. “평온, 침착, 여유요.”


말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나왔다. 그런데 무언가 걸린 듯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속이 불편해졌다.



원장님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다.


“분노의 반대말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호기심은 감정보다 장치처럼 버튼 같은 것. 분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쪽으로 향하던 길목을 틀어버리는 스위치 같았다.


집에 와서도 호기심이라는 세 글자가 계속 남았다.



감정은 고쳐야 하는 대상인가


나는 늘 고치려고 했다. 분노가 올라오면 참아야 하고, 이 성격을 바꿔야 하고, 이 반응을 없애야 한다고 믿었다. 문제를 발견하면 제거해야 한다는 전제는 하드웨어적인 사고였다. 고장 난 부위를 찾아 수리하거나 교체하는 방식.



그래서 사람도 그렇게 본다. 저 사람은 원래 성격이 안 좋고, 말투가 공격적이고,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단정하는 순간 생각은 편해지지만 그 사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나도 같이 멈춘다. 그런데 멈춰버린 그걸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사고방식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적으로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왜 지금 저 타이밍에 저 말이 나왔을까, 저 사람은 요즘 어떤 상태일까,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이 나를 옥죈다.


"나는 왜 이 말에 이렇게까지 반응하고 있지."


이 질문은 답을 바로 주지 않지만 감정의 속도를 늦춘다.




분노는 빠르다. 거의 빛처럼 결론을 내린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는 무시당했다, 이건 공격이다. 감정은 늘 확신에 차 있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영상으로 말하다가 갑자기 뭐가 올라왔다. 그때 그 의사 선생님 두 분은, 왜 열이 나는 나를 봐주지 않았지? 결국 진료실 의자에 앉게 하지도 못하고 나를 되돌려 보냈다. 아플 때 제대로 신경을 못 받았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반응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한 분은 놀라서 달려왔지만, 그 놀람은 돌봄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다른 한 분은 판단을 서두르느라 내 상태를 충분히 머무르며 보지 못했다.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상황처럼 취급되었다. 두려웠다. 통증 때문이 아니라 통증을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에.


아플 때 외면당한 기억은 몸이 누군가에게 기대려다 공중에 멈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문득문득 같은 높이에서 다시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열이 나던 몸보다 여기서는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왜 그랬지? 가 아니라 “그때 왜 혼자 남겨졌지.”


지금, 이렇게 꺼내 말하는 건 그때 끝나지 못한 장면을 나에게 이어 보는 시도이다.


참 이상하다. 당시에는 상처였지만 이미 아문 자리만 더듬는 기분이었고 신경을 긁는 잔여감은 희미했는데...




감정은 생각보다 물리적이다. 명치 끝이 딱딱하게 굳고 심박수가 귀에 들릴 만큼 요란해지면 머리는 그제야 허겁지겁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붙인다.



호기심은 감정을 멈추지 않고 방향을 바꾼다


그 순간 짧게 멈춘다. 그리고 다른 버튼을 누른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했지. 나는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지. 이 질문을 던지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기분은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는 내가 감정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다음에는 감정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끌려가는 상태에서 바라보는 상태로 바뀐다. 분노는 나를 감정에 붙여버리지만 호기심은 그걸 떼어낸다.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감정에 붙잡히는 걸 선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율신경은 충성스러운 일개미다


몸도 비슷하다. 명령이 떨어지면 이유를 묻지 않는다. 뇌가 실수로 위험 버튼을 눌러도 진짜라고 믿고 밤새 방어벽을 쌓는다. 주인은 지쳤는데 몸은 계속 긴장을 유지한다. 고장이 아니라 과하게 성실한 상태라서 더 괴롭다.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으니까.




이런 증상들은 설명하기 어렵다. 두통, 어지럼증, 소화불량, 두근거림. 수치로 명확하게 나오지 않으니까 아픈 걸 설명해야 하고 심지어 증명해야 한다. 에너지는 바닥인데 거기에 납득까지 시켜야 한다. 그 과정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혼자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된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의지가 약하고 원래 불안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생각은 끝난다. 더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그건 포기다. 소프트웨어적으로 보면 질문이 완전히 바뀐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이렇게 반응하도록 학습됐을까, 어떤 패턴이 반복되고 있을까, 지금 나는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 중일까. 이 질문을 시작하면 고쳐야 할 대상에서 빠져나와 관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이동한다.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억지로 바꾸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뭘 고치려고만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런다고 문제를 당장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안에서 휘말리는 상태에서 바깥에서 구조를 보는 상태로 위치를 바꿔주는 것 같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분노의 반대말은 뭘까.



예전에는 평온이나 침착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은 아니다. 그건 결과다. 충분히 거리를 둔 뒤에 오는 것. 그 앞에는 훨씬 작고 거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게 있다.


감정을 없애지 않는다. 대신 흐르는 방향을 바꾼다. 나와 감정을 붙여놓지 않고 그 사이에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가 생기면 선택을 한다.


반응할지, 멈출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볼지.



나는 화는 있지만 예전보다 조금 늦게 낸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가끔은 다른 선택을 한다.



분노의 특징은 빠르고 확신적이다. 분노 상태에서는 생각 전에 반사 반응이 나온다. 분노는 감정과 나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호기심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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