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형태가 바뀌면 그날의 치료는 성공적이다
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치료받기 전 처음에는 왼쪽 골반, 등 옆구리, 앞가슴 쪽이었는데 골반 쪽은 좋아졌고 나머지는 좋아졌다 진행 중이다. 전형적인 힘줄염+ 진짜 정체는 대상포진으로 밝혀졌다. 대상포진이라니. 염증의 행진이다. ㅎㅎ
“대상포진은 원래 엄청 아프다던데요?” 하고 건성으로 넘겼다.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지금의 불편감이 그나마 치료라는 방어막 덕분에 순화된 버전이라는 사실에 마음을 놓는다.
가려움은 지도도 없이 이사를 다닌다. 어제는 왼쪽 갈비뼈에 살던 녀석이 오늘은 등으로 주소를 옮겼다.
아, 이 집도 마음에 드셨나 보다. 활동성 좋으신 입주민이다. 처방받은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으면 몸이 갑자기 ‘비행기 모드’로 전환된다. 바깥 신호는 다 끊기고 내부 시스템만 돌아간다. 눈꺼풀은 자동으로 다운되고 정신은 업데이트 중, 이건 강제 재부팅 직전이다.
중간중간 절전모드로 빠져든다. 이렇게 틈새잠이라도 허락해 주는 걸 보면 이 몸도 나를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 이 와중에 잠이 온다는 건 오늘 하루의 보너스 같은 일이다.
추가로 받은 약 처방전을 들고도 약국조차 갈 기운이 없어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편하게 살면 게을러질 것 같은 불안함이 생긴다. 대중교통을 타고 어떻게든 걸어보고 싶은 마음은 멀쩡한데 몸이 오늘은 배송 불가 스티커를 붙여버렸다. 의욕은 급행열차인데 몸은 막차도 끊긴 역 같다. 몸은 자꾸만 ‘절약 모드’로 들어가는데 나는 계속해서 무리한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사용자인 것이다.
타는 듯한 감각이 스친다. 닿기도 전에 베이는 통증이 하루를 잠식한다. 누가 피부에 토치를 켜둔 것만 같고 스치기만 해도 아픈 건 유리조각으로 만든 스웨터 옷을 입은 것 같다. 통증이 부피를 늘려서 방을 다 차지한 느낌. 그래도 이렇게라도 집으로 무사히 왔다는 것만으로 오늘은 체크인 완료. 사람답게 살진 못했지만 생존은 해냈다.
자고 일어나 양치질을 하는데 점점 작아진다. 몸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날, 서운함이 고여 썩는 날, 미움이 가라앉지 않는 날이 요즘 반복된다. 그러다 문득 겁이 난다. 이렇게까지 경계하며 사는 게 과연 사랑일까. 나는 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매일 사랑해주지 못하는가.
긴장해야만 안전하다고 믿어왔으니 내 자율신경이 멀쩡할 리 없다. 편안함은 경고처럼 느껴진다. 몸이 풀리면 마음은 조여든다. 편안함 속에서 느끼는 불안은 공포와는 결이 다르다. 나를 아끼기 때문에 생겨난 감정이라지만 지금의 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음미할 여유가 없다. 이미 충분히 맵다.
통증은 존재를 태운다. 그런데도 살아남는 일을 성실함으로 착각하고 있다. 통증보다 이 착각이 더 고통스럽다.
몸을 향한 서운함과 미움, 그리고 게을러질 것 같은 공포는 한 곳에서 싹튼다. 더 잘 해내고 싶은 나와, 분명한 한계를 가진 몸 사이의 간극. 그 틈을 메우지 못하고 나를 몰아붙인다.
이건 내 탓이 아니라고, 어디 가서 소리치고 싶다.
과거의 인간에게 편안함은 생존이었다. 지금 편안함은 정체로 해석하고 만다. 멈춤은 곧 뒤처짐이 된다. 그렇게 배워왔다. 이대로 멈춰 있으면 가치가 증발해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나 통증이 매운맛일 때 찾아온다.
기분이 좋을 때는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쉼도 재능이라고.
아플 때의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한다.
존재(Being)이고 싶다.
행위(Doing)로 증명되지 않고 싶다.
꼬리뼈의 통증은 다시 현실로 소환한다. 무엇을 해야만 값어치가 붙는다는 낡은 믿음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쉬어도 된다는 건 사인을 여러 번 보냈을 텐데 요즘은 읽씹 중이다. 가만히 있으면 존재가 옅어질까 봐,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 또 뭔가를 붙잡는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까지 포함해서.
오른발을 내밀면 꼬리뼈는 지금 자기 자리가 틀어지고 있다며 자기주장을 펼쳐대는 뼈님들의 외침이 신경 쓰인다. 진단을 받고 나니 괜히 더 아픈 느낌적인 느낌이 들지만 원장님 말씀대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서 몇 번이고 다행스럽다고 느낀다.
예전의 통증이 묵직한 쇳덩이 같았다면 지금의 통증은 잘게 부서진 설탕 결정 같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짜릿하고 찌릿하다. 꼬리뼈에 힘을 빼야지 결심한다고 해서 긴장이 풀릴 리 없다. 의식하면 할수록 몸은 더 빳빳하게 굳는다. 이럴 땐 그냥 통증의 변덕을 관조하는 수밖에 없다. 피부 표면의 발진이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타고 염증들이 소풍을 다니나 보다.
통증이 몸을 뷔페 접시 삼아 전국 일주를 시작한다. 어제는 왼쪽 옆구리를 메인 디시로 삼더니 오늘은 오른쪽 견갑골로 넘어가 디저트를 즐기는 모양이다. 이놈의 통증은 한 우물만 파는 법이 없다.
병명 하나 얻었다고 해서 삶이 대단히 변하지는 않는다. 내일은 또 어느 부위가 이 ‘바이러스의 맛집’으로 선정될지 귀찮으면서도 궁금하다. 양쪽 허벅지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이왕 힘든 몸, 어디 한번 화끈하게 아파보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주마. (순간 허리부터 하체를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의 고통이었다.)
“자율신경 실조증 치료를
지금도 받아?”
주변에서 눈치 없이 묻는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 치료는 증상의 소멸이 아니라 회복 탄력성의 확보로 완성되었다고 말이다.
자율신경 치료가 성공적이라는 것은 내 삶에서 증상이 영원히 0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의 찬바람, 스트레스, 변덕스러운 날씨에 흔들리던 몸이 다시 중심을 잡는 법을 배웠다는 의미다.
지금도 파도는 치고 배는 기우뚱 흔들린다. 그러나 금방 돌아오고 더 이상 침몰하지는 않는다. 이제 병은 나를 끌고 다니는 주인이 아니라 내가 고삐를 쥐고 다스리며 나아간다. 증상이 없는 상태가 완치가 아니다. 증상에 압도당하지 않는 상태, 내 삶의 주권을 다시 찾아온 상태. 나는 이제 이것을 ‘진정한 완치’라 말하고 다닌다.
예전의 통증이 맷돌에 온몸이 갈려 나가는 ‘짓이김’이었다면 지금의 통증은 수십 개의 얇은 가시가 돋친 예민함이다. 몸에선 수시로 전기가 지지직거린다. 내 신경이 세상 모든 진동을 끌어다 쓰는 것만 같다. 옷자락만 살짝 닿아도 신경이 튕긴다. 노출된 스위치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속에는 미처 출고되지 못한 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적절한 단어를 잃어버린다. 입 밖으로 아팠어요, 힘들었어요! 같은 실제의 무게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말을 한다.
어떤 날은 눈물이 터질까 봐 꾹 참는다. 침묵은 고통의 격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되어주는 것 같다.
쏟아내지 못한 서사들이 안에서 발효되고 정제되어 언젠가 온전한 나의 언어로 될 때까지 이 단단한 껍질 속에서 나를 지키기로 한다.
고통일 때 발화되지 못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무겁게 내부에 침전된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광장이 열려 있다.
그곳에는 단일한 ‘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온 여러 명의 내가 존재한다.
실은 치유할 힘조차 없어 방치 중이다. 에너지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용체가 지친 느낌이다. 지금은 덜 건드리고 있다. 아무것도 더 하지 않기.
그런데 글은 쓰고 있다.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은 나를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라앉지 않게 붙잡아주는 아주 작은 부력 같은 것이다. 예전에는 1~2시간이면 썼을 글도 며칠에 걸쳐 쓰지만 피로해지는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은 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망한 것도 아닌 애매한 하루였다. 그걸로 뭔가 해낸 것처럼 스스로를 달랜다. 그런 얄팍한 위안 없이는 하루를 정리할 수가 없다. 삼시세끼 같은 건 애초에 욕심이다. 그래도 먹었다고, 살아 있으니까 먹은 거라고 나를 설득한다.
씻는 일도 비슷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끝내고 나면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숨을 고른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초라하다. 별것 아닌 것들에 의미를 덧붙이고 그걸로 오늘을 버틴 것처럼 포장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식으로라도 하루를 이어 붙이지 않으면 금방 어디론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이유는 필요 없다. 힘드니까 힘든 거다. 그래서 내가 나를 인정해 주기로 한다.
내 몸을, 내 정신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기계처럼 대하지 말자. 아프거나 늘어질 때마다 밀려오던 서운함은 통제 욕구의 다른 이름이었다. 도구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느끼는 분노를, 나는 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친구가 지쳤을 때는 화를 내지 않는다. 안쓰러움을 느낀다. 이 차이도 외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움이 차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내 몸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취급했다. 그래서 최근에 내가 자꾸 미워졌다. 이벤트가 올 때마다 레전드를 갱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만 미워해야지.
또 다른 고통이 오면 이런 날도 잘 지나왔네, 하면서 그때의 나를 더 토닥여주어야지. : )
신경 분포를 따라 통증 및 소양감 동반
치료 전
6/10
넓고 묵직하게 퍼지는 통증
쇳덩이를 얹어둔 듯한 압박
치료 후 (4회 차)
5/10
전반적 강도는 감소
통증 양상은 둔한 통증 → 작고 날카로운 통증으로 변화
찌릿하고 따끔한 전기 자극
치료 전
넓고 둔한 지속성 통증
지속적인 압박감
치료 후
국소적이며 이동하는 통증
살을 세게 꼬집는 듯한 느낌
전기가 흐르는 듯한 신경통 양상
통증 위치가 좌측 → 우측으로 이동
치료 전
왼쪽 골반
좌측 옆구리
앞가슴
치료 후
골반: 호전
오른쪽 등 / 옆구리 / 가슴: 잔존 및 진행 중
추가 변화
꼬리뼈 통증: 자세 변화 시 악화
허벅지로 방사되는 통증 양상 지속
소양감: 일시 소실 후 다른 부위 재발
피부 과민: 가벼운 접촉에도 통증 유발
작열감: 타는 듯한 열감
피로감 및 심한 졸림 (약 복용 후)
긴장 시 통증 악화 (특히 꼬리뼈 부위)
치료 전
통증 범위가 넓고 무거운 양상
움직임 시 전반적 불편감 증가
치료 후
통증 강도 감소
여전히 묵직한 잔여감 존재
통증이 넓게 퍼짐 → 좁고 또렷한 자극으로 변화
통증의 총량은 줄었지만 둔한 압박 → 날카로운 신경통으로 재구성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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