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뼈, 허리, 다리 통증 및 가려움
2026년 4월 15일 수요일
허리 통증과의 2차전은 일단 나의 판정승이다. 바지춤을 부여잡고 읍소하지 않아도 직립 보행이 제법 그럴듯해졌으니까. 하지만 승전보 뒤에 남은 잔당들이 가관이다. 이 통증들은 퇴거 명령을 받고도 짐을 빼지 않는 세입자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섬광을 쏘아 올린다. 내 몸이지만 내 허락 없이 무단 거주 중인 뻔뻔함에 혀를 내두른다.
뾰족한 감각을 피하려 근육들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내 중심축은 붕괴하는 사탑처럼 기울어진다. 허리는 이제 합격점이라 자부하려는데 방심한 틈을 타 꼬리뼈가 자신의 존재감을 천근만근 드러낸다.
지난 3월 27일,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 오늘까지 세 번의 치료를 받았다.
특정 부위를 누르면 음성 지원도 없이 터져 나올 듯한 압통, 관절을 굴릴 때마다 들리는 사각사각, 딱딱 움직일 때마다 수만 번 연마된 칼날이 깎아내는 기분이다. 빨갛게 부어오른 환부의 열감은 라면 물이라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ㅋㅋ사실 나는 조금 쫄아 있었다.
이번에도 참고 넘겼다면 내 미래는 안 봐도 넷플릭스 4K 화질이다. 만성 통증이라는 늪을 지나 힘줄 파열이라는 대형 사고라도 쳤다면, 엄살만큼은 국가대표급인 내가 "나 죽네"를 연발하며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었을 게 뻔하다. 천만다행으로 파열 직전, 골라인을 통과하듯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억울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지난 5개월, 삶은 고요한 듯했으나 둔탁하고 끈질긴 통증이 나를 갉아먹었다. 이만큼이라도 버텨준 내 몸이 고맙다가도 열이 오르면 금세 미움이 찼다.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게 어찌 당연한 일일까. 아픔마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감각의 선물이라면, 나는 이 고난을 좀 더 축복으로 치환해보고 싶다. 내게 주어진 이 예민한 감각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원장님께 "주사 맞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슬롯적 자아를 끌어모아 그 외침을 필터링했다. 그리고 고통을 꾹꾹 눌러 담은 노트를 드렸다. 불명열과 통증 점수 7점을 상회하던 낱낱의 고백을 한참이나 읽어주시는 원장님 앞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유난스러운 사람인지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 정도 통증에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적어 내려간 게 과연 정상일까" 하는 자기 검열이 마음속 법정을 어지럽혔다. 나는 최근의 기록만 펼쳐 드렸는데 원장님은 과거의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주셨다. 그 정성에 마른침을 삼켰다.
에너지 레벨은 10점 만점에 4점. 컨디션은 60%,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눈을 뜨면 몸이 굳어 있었다. 앞벅지가 조여 오는 통증에 30분은 누워 버텨야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오늘은 10분 만에 발을 뗐다. 꼬리뼈 통증도 어제 6점에서 오늘 5점으로 작지만 분명한 후퇴를 보였다.
오후 1시. 무력함이 먼저 와 앉고 그 위에 통증이 겹쳐진다. 왼쪽 허벅지는 누가 안쪽에서 천천히 비틀고 있는 것처럼 뻐근하고 쩌릿하다. 허벅지의 압박과 꼬리뼈의 묵직함이 교차한다. 신경이 스치는 자리, 감각이 겹쳐지면 단순한 통증이 아니다. 몸이 아니라 상태다. 마음이 형태를 얻으면 이런 식일까. 한쪽은 조여 오고 한쪽은 내려앉는다.
아픔은 늘 구체적이다. 위치가 있고, 방향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래서 더 외면하기 어렵다. 지금 이 통증은 내가 무너지는 스타일과 너무 닮아 있다. 주사 후 1시간 경과 후 일시적으로 팽창감이 있었지만 나는 이 느낌이 자리를 잡으며 보내는 반가운 인사 같다. (금방 좋아졌다.)
개인의 경험으로는 주사가 들어오면 몸의 수분을 끌어당겨주어서 부푸는 느낌이 든다. 옛날에 유지가 안 될 때 속상했는데 지금은 회복에만 집중한다. 치료 초기에는 메우기에 급급했다면 치료 회차가 반복될수록 탄탄한 기초 공사가 될 테니까.
비어 있던 공간이 차오른 상태에서 새로운 성분이 더해지니 유지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통증을 크게 느낄 때 잠시 쉬게 한다.
나는 누적효과를 크게 믿는다. 비커에 물을 채우듯 처음에는 더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작은 변화로도 쉽게 올라간다.
FBT라는 신경 주사 효과는 그런 구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과민해진 신경을 잠시 내려놓게 만들고 몸이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가끔 나는 참 미련하다 싶다가도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을 임계점을 찾아낸다. 여러 통증이 일제히 범람하면 몸은 가장 거대한 파도를 전면에 세우고 나머지는 수면 아래로 잠재운다. 자극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면 특정 부위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무디게 마모시킨다.
작년에는 꼬리뼈 통증이 거의 7에서 8 사이의 고점이었다. 입원 중이었음에도 진료실을 향해 기어가듯 걸음을 옮겨야 했다. 병실에서 반나절을 꼬박 울며 버티던 날, 그때는 정말로 파쇄되는 듯한 느낌이 과장이 아니었다. 수액이나 주사 치료를 한 날이면 그제야 숨통이 틔었고 며칠은 내가 기워붙여지는 것 같았다.
허벅지에 자리 잡은 묵직한 뻐근함 위로, 이번에는 참기 어려운 가려움까지 가세했다. 통증처럼 명확하게 짚히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침범이다. 긁어보아도 가려움은 휘발되지 않고 살 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대로 더 인내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서둘러 봉헌하듯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 가끔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통증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공포가 한 곳에 고이지 않도록 긴장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지 않도록, 고통은 제 몫의 무게를 나누어 가졌다. 덕분에 나는 견딜 만한 사람이 된다. 아프면 울음이 터지고 나아지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나를 관찰하는 일은 꽤 재미난 유흥이다.
중둔근 같은 해부학적 용어는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보고 들어도 자꾸만 까먹는다. 그저 앞벅지, 뒷벅지, 옆벅지라 부르는 이 녀석들은 왜 번갈아 가며 말썽일까. 앉아 있거나 걸을 때 내 골반을 지탱해 주던 소중한 근육들. 한때는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겠다고 그토록 애를 쓰며 단련했던 존재들이다.
꼬리뼈 주변 근육이 바짝 긴장하면 골반의 축이 기우뚱해진다는 것쯤은 이제 안다. 균형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왼쪽 허벅지 바깥쪽 근육이 과하게 힘을 쏟았을 테고, 그 보상심리가 지금의 짓눌리는 듯한 뻐근함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디선가 뻗어 나온 가느다란 신경 줄기가 골반을 경유해 허벅지로 흐르고 있다.
7일 첫 진료 때 원장님은 당시 상태가 좋지 않아 꼬리뼈 치료를 길게 해 보자고 하셨다. 다행히 급격히 나빠지지 않아 며칠 치료를 쉬며 몸을 지켜보았다. 어제는 병원에 가려다 발길을 돌렸고 오늘은 원장님의 서울 세미나 일정이 있다고 하셔서 더 미룰 수 없었다. 결국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누군가 강제로 멱살을 잡아 끌어내지 않으면 나갈 의지는 형체도 없이 기화되어 버릴 것 같은 상태. 가라앉고만 싶은 권태로운 무력함이 나를 짓눌렀다. 이런 내가 한심해 견딜 수 없어서 마음의 항로를 틀었다.
“이게 지금 내 몸의 진실이다. 비난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심판하지말자. 이해해야 한다.”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5시 15분. 주사실 앞에 선 시간은 5시 40분 진료 마감 시간을 넘긴 미안함에 그리 아프지 않으니 내일 맞겠다고 하자, 원장님은 주사 세팅을 마쳤다며 인자하게 웃으셨다. 거절할 명분은 주사 바늘보다 얇아졌고 작년에 입원당시 원장님의 조언이 귓가를 스쳤다.
“아픈 걸 너무 참는 것은 좋지 않아요.”
오늘의 주사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들어갔다. 비단 위를 스케이트 날이 미끄러져 나가듯 샥샥 파고들었다. 옆으로 밀어내며 길을 터주는 기분. 무식한 팽창 통증도 없었다. 어떤 검문소도 거치지 않고 프리패스로 통과하는 완벽한 입성이었다.
양쪽 허벅지와 왼쪽 골반에 주사가 들어가는데 원장님께 차라리 바늘을 빼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애원했다. 이런 느낌이 몇 번 있었다. 주사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형언할 수 없는 청량함이 있다. 크...(탄성이 나왔다.)
걸을 때 왼쪽 다리는 좀 무겁지만 혈액순환의 온기가 후끈하게 감돈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그 느낌도 나쁘지 않다.
"천장 보고 똑바로 누워보세요!"
경추를 교정하실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목을 짓누르고 팔꿈치로 압박하며,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묵살하던 어느 의사의 폭력적인 손길. 그 트라우마에서 나를 건져 올린 건 오늘의 이 세심한 교정이었다.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고 몸은 완전히 무장해제 되었다. 반사적인 떨림은 있었으나 통증은 단 1도 없었다. 우둑 소리가 날 때마다 번지는 쾌감에 엔돌핀이 차올라 가능만 하다면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관절은 얼마쯤 지나야 또 소리를 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콜라겐 조직 등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혼자 목을 돌릴 때는 몸이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가 된다. 아프지 않은 범위, 잘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대충 타협하며 돌리게 되는데 전문가의 교정은 다르다. 닫혀 있던 특정 관절을 정확히 조준해 짧고 강렬하게 길을 터준다. 평소 쓰지 못하던 가동 범위가 순식간에 열리며 꽉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듯한 해방감이 든다.
힘의 밀도도 압도적이다. 내가 할 때는 힘이 사방으로 분산되지만 전문가의 손길은 근육이 버티기도 전에 이완된 타이밍을 낚아채 부드럽게 파고든다. 아픔을 참아내는 고통이 아니라 힘이 빠지면서 마디마디가 풀려나가는 희열이다.
압력이 순간적으로 변하며 생기는 기포 소리를 한때는 뼈를 맞추는 소리로만 알았다. 제대로 된 전문가의 손에 내 몸을 맡겼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통증 없는 시원함의 정체다. 혼자 목을 비틀다 삑사리가 난 적이 있다. 시원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반복하거나 스스로 흉내 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설픈 손길은 독이 될 뿐이다.
원장님께서 18일 토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씀에 “네”라고 대답했으나 간호 선생님이 예약을 잡아주겠다는 말에는 확답을 드리지 않았다. 내일 아침 내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의 절망적인 통증과는 다른, 운동 직후 느껴지는 기분 좋은 뻐근함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씻고 누워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재워질 때의 그 짜릿하고 황홀한 기분.
작년, 주사 치료가 이틀을 버티지 못해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떠올린다.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그 문턱에서 맴돌던 내가, 이제는 몸의 신호에 맞춰 병원을 찾는 여유까지 생겼다. 몸이라는 게 때로 제멋대로라지만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냈다.
앞으로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어차피 그때도 나는 또 물어볼 테니까.
5개월이라는 기적 같은 시간. 때로 울며 다시 입원하고 싶던 순간들을 버텨낸 내가 기특하다.
나의 유약함이 단단한 근육으로 바뀐 건 원장님이 주신 시간의 처방 덕분이다. 포기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는 예언 같은 위로로 나의 흔들리는 중심을 붙잡아 주셨다.
*고속도로가 뚫리는 기분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체 구간을 넘어 아예 지반이 부풀어 오르는 포트홀 투성이가 됐다. 약물이 퍼지는 속도보다 내 몸의 대사 속도가 거북이 걸음이라 주입된 액체(?)들이 허벅지 근육 사이사이에 끼어 "나 여기 있소"라며 자기주장을 펼친다. 묵직하다 못해 이제는 내 다리가 아니라 남의 집 기둥을 빌려다 붙여놓은 기분이다.ㅎㅎ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가려움이라니 싶지만 살갗을 긁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뼛속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단체로 회식이라도 벌이는 듯한 기분 나쁜 간질거림.
오늘 밤은 깊은 잠 속으로 침잠하련다.
*원장님, 바늘 빼지 말아 달란 말 취소할게요. 아까 마음속으로 했던 말은 엔돌핀이 선사한 일시적 광기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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