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신경실조증과 만성통증에 도움이 되는 맨발 걷기
의사가 신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고통을 제거하지만 인간은 고통을 공유한다.
신은 하늘 위에서 명령으로 병을 고칠지 모르지만 원장님은 자기 영혼을 비상식량처럼 씹어 삼키며 타인의 공백을 메워주는 존재였다.
신이라면 마모되지 않겠지만 인간이기에 마모되면서까지 곁을 지키는 그 모습.
병이 당장 사라지는 것보다 사라지지 않는 상태를 함께 견디던 날들을 나는 더 깊게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인격적 마주침’을 경험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설명되지 않는 온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 거리,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접촉.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연말이면 으레 공중을 떠도는 정형화된 덕담들이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거나 "건강하세요"같은 짧은 말들. 원장님이 보내오신 인사는 결을 달리했다.
"함께한 여행은 저에게도 참 기쁨이고 큰 위로였습니다"
인격적 마주침은 치유력이 강하다. 지난 한 해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물질도, 성취도 아니었다. 함께 쌓아온 시간의 두께였다.
한 명의 환자를 넘어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신 영광스러운 마음을 잘 간직하고 싶다.
세상은 의사를 신의 파생상품쯤으로 취급하는 듯하다. 전지전능을 할부처럼 나눠 쓰면서도 그 대가를 고스란히 당신에게 전가한다. 하지만 내가 본 당신은 신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비상식량처럼 씹어 삼키며 타인의 공백을 메워주었다. 당신의 내면에는 마모가 축적되고 있었다.
자신을 태워 타인의 시간을 연장하는 촛불형 생애
그 잔광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니, 한때 나에게 상처를 남겼던 의사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 역시 어둠 속에서 타인을 비추다 시력을 잃어버린 가련하고도 인간적인 존재들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다.
희생은 증발이 아니다. 당신의 에너지가 깎여나간 자리에 누군가의 생존이 두툼하게 적층 되었음을 부디 잊지 않기를. 당신의 하루는 종결부호가 아니라 쉼표였다는 것을.
나는 감정의 장부를 다른 방식으로 정리했다. 과거의 어떤 의사들이 내게 남겨놓고 간 그 오래된 금속성 통증을 계속 문지르며 불꽃을 튀기지 않기를.
우리는 서로를 완치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고장인지 울음인지 구분해 내는 낡은 정비소의 공동운영자 같았다. 비록 내게 의학적 전문지식은 없었으나 서로의 아픔을 정성껏 봉합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끝끝내 호기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와 유사하다. 내가 무심코 흘린 미열의 호흡이 어딘가에서 냉각된 엔진을 데우고 그 잔열이 궤도를 돌아 나를 재점화시키는 불꽃으로 귀환할 가능성!
당신이 폐차 직전의 내 육체에 과할 정도로 정성스러운 연료를 주입해 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아직은 고장 난 채로 굴러가는 이 세계를 불신하지는 않는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사실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내게 스며든 원장님의 말은 귀를 스쳐 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너진 몸과 마음에 빈틈없이 채워지는 점성 높은 흰 석고 반죽 같았다. 상처 입은 기억들이 더 이상 형태를 잃고 흩어지지 않게 했던 그 말들은 빈틈을 메우고 굳으면서 마음의 모서리마다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나는 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곳에 남아 있는 목소리를 가만히 꺼내어 본다. 온기는 늘 뜨겁지는 않지만 손끝이 완전히 식어버리지 않을 만큼의 온도로 데워져있다.
그것이 나를 가만히 붙들어 둔다.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냉정해야 할 사람의 전문가의 시선에 가능성을 보아주셨다.
나는 언제든 확장할 수 있고 아직 끝난 사람이 아니다.
2026년 2월 16일 월요일
2026년 3월 7일 토요일
의사 선생님과 아픈 이야기 대신 이런 일상을 나누는 게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시상하부’라니, 전문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시는 게 웃기고 인상적이었다.
3월 13일 금요일
나의 오지랖 염색체는 틈만 나면 발동한다. SNS로 소통하며 많은 질문을 받아 원장님께 부탁을 드리면 늘 귀 기울여주신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무엇이든 도와주실 분인데 그 바쁨을 알기에 늘 조심스럽다.
원장님께 안부 전화가 왔고, 대화 중 3월 29일 맨발 걷기 일정을 이야기해 주셨다. 컨디션을 보고 가겠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몸이 아프고 무력해 실제로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흙의 촉감과 숲길을 떠올려보아도 침대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태였다.
가고 싶은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지만 당장의 휴식이 더 절실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갇혔을 때 원장님과 병원 식구들은 끊임없이 보고 싶다던지, 손을 내밀어 나를 다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열차로 1시간 40분이면 가는데 힘들 때는 천리 길 보다 멀게만 느껴지곤 했다. 그 거리감을
메워준 것은 늘 병원 식구들의 안부였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기적처럼 일으켜졌다.
늘 환자분들을 살뜰히 챙기시는 뒷모습이 좋아 습관처럼 셔터를 눌렀다. 주변 사람들도 사진을 보며 ‘힐링’이라 말해주었고 나의 치료 과정이 누군가에게 의미와 힘이 된다는 건 벅찬 기쁨과 감사로 채워주었다. 가족에게도, 가까운 친구에게도 아픈 티를 낼 수 없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들이 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그곳에 있는 ‘나’를 또 만나고 싶어서인지.
아픔과 치료에만 갇히지 않도록 환자들과 맨발 걷기 같은 야외활동을 함께해 주신 원장님께 한 없이 감사하다.
지금은 14층 규모의 큰 병원을 이끄시느라 자주 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시간들은 모두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 맨발 걷기도 무력감에 조금 좋아지게 해 주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좋았다.
누군가는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각자의 휴대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나에게는 원장님과 나누는 이 힐링의 소통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이라 검색만 하면 지식이 쏟아지지만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에게 직접 듣는 조언은 차원이 다르다.
진료실에서는 시간 관계상 다 들을 수 없고 환자로서 지식과 관심을 직접 전수받는 일은 매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특히 행보칸 환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애칭이 나를 불러줄 때 그 이름이 주는 에너지가 참 반갑다.
원장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본다. 그 정성에 보답하고 싶어 나 또한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할 때도 많다.
결과가 어떻든, 원장님이 보여주시는 그 진심을 동력 삼아 다시 기운을 내보려 한다.
오늘도 쏟아주신 정성에 깊은 감사를 전하며.
상처 입은 치유자
행복한 H 병원 김정훈 병원장님이 지구별 친구들에게 전하는 뜨거운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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