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도 뜸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원장님 사모님의 답장)
2025년 12월 3일 수요일 아침, 입원 당시 즐겼던 병원 뷰와 함께 원장님의 반가운 톡이 왔다.
당시 퇴원한 지 한 달 차였는데 랜선 회진이라니...정말 이 환자에 대한 극대한 진심은 어디까지일지 감이 안 온다.
그 깊이를 가늠하려 할수록 경외는 점점 아득해지고 나는 그 앞에서 길을 잃는다.
잠은 설쳤을지라도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듯 개운해졌다. 까칠해진 신경 위로 잘 주무셨냐는 말이 내려앉았다. 날 선 긴장이 봄눈 녹듯 사라지며 마음이 순해졌다.
수년 전 처음 뵈었을 때부터 내 마음은 늘 변두리만 맴돌았다. 고마움이란 건 모으기가 꽤나 일렁이는 감정이라 이를 한데 묶어 글로 옮기는 데는 생각보다 커다란 용기와 뻔뻔함이 필요했다. 사모님께 직접 글로 쓰기엔 쑥스러워 원장님의 손을 빌려 슬쩍 드린 마음이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배달된 모양이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까지 부풀어 올랐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다. 원장님이 간혹 들려주시던 가족분들 이야기에 나는 매번 살며시 압도당하곤 했다.
기다림이란 건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역꾸역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누군가의 시간이 기어이 꽃 피울 때까지 자신의 계절을 통째로 내어주는 숭고한 인내. 나는 의사의 길을 권유해 주시며 사모님의 그 아름다운 인내를 경외했던 것 같다. (바쁜 아빠를 늘 기다리셨던 엄마의 인내도 오버랩되었다.)
내가 이걸 올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어디선가 쌓이고 흘러온 마음들이 어느 순간 모여 앉는다. 글은 참 이상하다. 쓰려고 해서 쓰이는 게 아니라 쓰일 때가 되면 저절로 나를 지나간다.
원장님께서 사모님의 마음까지 전해 주실 줄은 정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용기 내어 볼걸... 발송된 마음 뒤로, 하지 못한 말들이 기분 좋은 소란을 피운다.
아래는 원장님 따님의 메시지다.
원장님은 내게 초상권과 저작권을 쥐여주셨다. 그것이 한 개인에게 허락된 얼마나 거대한 특권인지 알기에 가끔 숨을 고른다. ‘정말 괜찮은 걸까.’ 어떻게 그려내든 나의 모든 언어를 믿어내겠다는 압도적인 신뢰의 깊이를 가늠할 때마다 아득해진다.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아프게 조심스럽다. 투명한 믿음에 티끌 하나 묻히고 싶지 않아서, 서툰 의도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연마한다. 마치 유리로 성을 쌓는 기분으로.
빛을 머금으면 눈부시지만 작은 움직임에도 금이 가버릴 것 같은 연약하고도 고귀한 결정체.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과 여기까지여야만 한다는 절제가 교차한다. 이 경계 위에 홀로 서 있는 일은 때로 사무치게 외롭지만 그 경계와 외로움마저 내가 지키고 싶은 진심이다.
나는 오늘도 입을 너무 많이 움직였다. 원장님의 사려 깊음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 점잖은 핀잔을 들었다.
조심스러운 어투가 다 느껴진다. 나는 좋으면 납작해지고 멍청해진다. 적당히 좋아하면 좋으련만 내 마음은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원장님은 어쩌면 그렇게 혼을(?) 내실 때조차 인격적이신지. 그 바쁜 스케줄 속에 ‘나 같은 애 입단속’이라는 항목을 추가하게 해 드려 송구할 따름이다.
내 입은 자아가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발성기관으로 직행하는 이 경박한 팬심은 슬롯적 지능은 바닥을 치는데 원장님을 향한 충성심만 천장을 뚫는다. 원장님의 그 조심스러운 꾸짖음마저 ‘역시 우리 원장님은 인품도 남다르셔’라며 앓는 소리를 하고 앉아있으니 답이 없다.
어쩐지 죄송하면서도 원장님의 위대함을 소리 높여 외치는 확성기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하겠다. 이건 팬심이 아니라 일종의 질환이다.
나는 참으로 과분하게 행복한 환자다. 삶이란 아름답지만 이 거친 시대에 태어나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 이토록 고운 감정들을 길어 올리며 느끼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만약에 사모님을 뵙게 된다면 이 말을 꼭 가슴에 얹어드리고 싶다.
원장님이 걸어오신 고단한 의사의 길이, 한 인간의 직업적 소명이 아니었음을. 죽어가는 영혼,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명수와 같은 구원의 빛이었고 그 빛이 한 환자의 삶에 얼마나 깊고 시리게 닿았는지를 말이다.
이때까지 또 병원에 올 줄 꿈에도 몰랐다. 알면서도 외면해 왔는지 모른다. 내일의 절망을 오늘로 배달받지 않았기에 나는 어제 태연하게 웃고 떠들며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앞 일을 전부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축복인가. 인간은 한 치 앞의 낭떠러지를 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이기에 벼랑 끝에서도 꽃을 피우며 살아간다. 비극의 예고편이 생략된 덕분에 오늘도 무너지지 않은 척, 이 일상을 꾸역꾸역 잘 버텨내고 있다.
발을 들이는 매 걸음마다 여러 감각들이 날을 세운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 낮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요하게 흐르는 병원의 공기.
그래, 모르고 살았기에 가능했던 삶이었다. 비밀을 품고 나는 또 이 문턱을 넘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복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2026년 2월 5일, 치료 종료 버튼을 누른 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병원에 원장님의 레이더는 고장 날 줄 모른다. 적당히 하셔도 될 텐데 넘치는 에너지로 나를 세심히 살피신다. 그런 마음을 받다 보니 나도 무언가를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등을 떠밀어 나까지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만든다.
내가 ‘환자’라는 칙칙한 계급장을 떼고 ‘행복한 환자’라는 모순적인 표현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그분의 경계 없는 환대 덕분이다.
어떤 날은 이 보물 같은 귀한 말씀들을 나만 조용히 간직하고 싶고, 또 어떤 날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가끔은 이 다정함이 세상을 모두 구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원장님, 저도 온 마음을 다해 응원 펀치 날리는 중입니다.
‘노 베이스’였던 제가 이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건 순전히 원장님이 만드신 결과예요. 치료의 진전이 없다고 느끼며 울던 날들, 또 너무 잘 돼서 허둥대며 웃던 삽질의 시간들, 알고 보니 그거 다 성장을 위한 빌드업이었더라고요.
몇 년 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구걸하듯 마음의 척추가 굽어 있었다. 의사의 눈치를 보느라, 내 아픔이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느라 잔뜩 쪼그라든 마음의 척추는 펴질 기미가 없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신 김정훈 원장님 덕분에 숨길 곳 없는 나 자신이 되어 비참함조차 근사하게 앓을 수 있었다. 완치라는 목적지보다 그 과정에서 마주친 배려들은 달콤했다.
치료가 끝날 때마다 나는 다시 아파지고 싶다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극진한 환대를 다시 한번 온몸으로 감각하고 싶어서.
서두르지 않는 치유의 속도가 나를 살게 했다.
통증에 시달리기만 했던 나는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만성적인 괴로움은 1년 정도 지나면 정말로 괜찮아졌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핵심은 누구를 만나 어떤 태도로 그 시간을 견디느냐가 결국 전부다. 아픔은 도려내야 할 종양이 아니라 남은 삶 동안 손 잡고 걸어가야 할 조금 느리고 긴 호흡의 과정이다.
통증이 사라지길 기도하며 신을 찾는 대신, 고통과 함께 우아하게 살아가는 법을 더 깊게 배우고 싶다. 아픔이 나의 일부로 편입되면 비극은 일상의 장르가 될 테니까.
통증의 소멸보다 중요한 건 통증을 대하는 나의 자세였다.
세상의 채도는 그대로인데 나라는 존재의 명도만 누군가 강제로 낮춰버린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이것은 명백히 오류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이 메시지를 드릴 때 나는 심각하게 아팠다.
제 고통의 크기가 세 손가락 안에 든다던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꼽힐 만큼 고통스러운 환자인 저를, '수선'해야 할 대상이 아닌 '존재' 자체로 대해주신 원장님,
억지로 고치려 하기 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 외에는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은
처음 만났습니다.
버티는 모습도, 무너지는 순간도 다른 말로 덮지 않고 그대로 두어 기다림으로 지켜봐 주신 덕분에 저는 비로소 저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락받은 시간들이 제게는 가장 큰 치유였습니다.
그래서 이 감사는 고마움이자, 한 사람을 온전히 모아주신 데 대한 끝없는 깊은 안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