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닿지 않는 밤
서연에게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참 낯선 일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도 별생각이 없었다.
바쁘겠지.
그러고 끝이었다.
그런데 도진은 달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메시지가 왔는지 확인했고,
일하다 잠깐 시간이 생겨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밥 먹었어요?’
고작 그 한마디가 오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끼니를 궁금해한다는 게 좋았고,
하루 중 아주 잠깐이라도 자신을 생각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서연은 조금씩 도진의 연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도 도진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회식 있어요.’
서연은 곧바로 답했다.
‘또 술?’
도진의 답장이 왔다.
‘조금만.’
서연은 피식 웃었다.
도진이 말하는 ‘조금’이
자신이 생각하는 조금과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적당히 마셔.’
‘알겠습니다.’
‘담배도 좀 줄이고.’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잔소리 시작이네.’
서연은 웃었다.
‘싫으면 말고.’
‘좋은데요?’
서연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술 먹고 연락해.’
‘네.’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서연은 다시 일을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한창 마시고 있겠지.’
다시 일을 했다.
두 시간이 지났다.
또 확인했다.
없었다.
서연은 자신이 우스웠다.
누가 기다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연락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꼭 몇 시까지 해야 한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졌다.
서연도 일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도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마시고 있어?’
답이 없었다.
집에 도착했다.
씻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휴대전화를 봤다.
여전히 없었다.
서연은 침대에 앉았다.
전화를 걸까.
말까.
걸까.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회식 중인데 뭐.’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도진은 자신의 옛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말했다.
연락 때문에 힘들었다고.
상대가 자신이 어디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계속 확인하려 했다고.
서연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도진을 숨 막히게 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은 이상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은 자꾸 휴대전화를 봤다.
열한 시.
열두 시.
메시지가 없었다.
서연은 결국 짧게 보냈다.
‘집에 들어갔어?’
전송.
읽지 않았다.
조금 지나 다시 봤다.
그대로였다.
순간 별별 생각이 들었다.
많이 취했나.
택시에서 잠들었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서연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나무랐다.
‘왜 이래.’
별일 아닐 것이다.
술을 마시고 있을 수도 있고,
시끄러워서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날 서연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놓았다.
화면이 켜질 때마다 도진인가 싶어 확인했다.
광고였다.
또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다.
서연은 자신이 점점 우스워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 연락 하나를 기다려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 남자의 ‘잘 들어왔어요’라는 말 하나를 기다리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무렵,
서연은 결국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자자.”
혼잣말을 했다.
“내가 무슨 스무 살이야.”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 화가 났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걱정됐다.
그때 서연은 처음 알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보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걱정이라는 것이 따라왔다.
그 사람이 잘 들어갔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사랑은 생각보다 피곤한 감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도진이었다.
‘미안해요. 어제 술 마시고 들어와서 그냥 잠들었어요.’
서연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아무 일 없었구나.
그리고 조금 뒤,
서운함이 따라왔다.
‘전화 한 통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연은 쓰지 않았다.
대신 짧게 답했다.
‘잘 들어갔으면 됐어.’
도진에게서 곧 답이 왔다.
‘걱정했어요?’
서연은 손가락을 멈췄다.
뭐라고 할까.
많이 걱정했다고 할까.
밤새 기다렸다고 할까.
그러다 결국 적었다.
‘조금.’
도진에게서 웃는 이모티콘이 왔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연락할게요.’
서연은 그 말을 믿었다.
‘응.’
그리고 그것으로 끝냈다.
그날 저녁 도진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
“화났어요?”
“아니.”
“진짜?”
“응.”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서연이 웃었다.
“도진 씨.”
“네.”
“나는 어디 있는지 보고하라는 사람이 아니야.”
“알아요.”
“술 먹는 것도 뭐라고 하고 싶지 않고.”
“네.”
“그런데.”
서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
“잘 들어갔다는 말 정도는 해줘.”
도진도 잠시 조용했다.
그리고 말했다.
“알았어요.”
“그거면 돼.”
“걱정했구나.”
“조금.”
“조금?”
서연은 웃었다.
“많이 하면 집착이라며.”
도진도 웃었다.
“그건 다른 얘기죠.”
“뭐가 달라?”
“서연 씨는 아직 아니니까.”
아직.
그 단어가 서연의 귀에 잠깐 걸렸다.
하지만 그날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도진은 다시 다정했다.
서연의 하루를 물었고,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고,
몸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서연의 마음도 금방 풀렸다.
사람 하나를 좋아하게 되면
참 이상해지는구나 싶었다.
조금 서운했다가도
목소리를 들으면 괜찮아졌다.
그 사람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됐다.
그래서 서연은 그날의 일을
작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많이 마셨으니까.
피곤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달라졌다.
그날 이후,
도진이 술을 마신다고 하는 밤이면
서연은 조금 더 자주 휴대전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서연은 몰랐다.
한 번의 기다림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두 번의 기다림도
사랑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같은 이유로 계속 기다리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은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는 것을.
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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