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 날.
6화. 같은 마음, 다른 시간
도진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 날.
서연은 아침부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몸은 피곤했다.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야 했고,
또 하루가 시작됐다.
그런데 전날과 조금 달랐다.
양치질을 하다가 웃었다.
옷을 입다가도 웃었다.
신발을 신으면서도 문득 웃음이 났다.
그러다 현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멈췄다.
“왜 웃어?”
대답은 알고 있었다.
도진 때문이었다.
어제 함께 걸었던 길.
차가 지나갈 때 자신의 팔을 잡았던 손.
헤어지고 나서 보내온 메시지.
‘다음에는 더 오래 봐요.’
서연은 그 문장을 벌써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몰랐다.
다음.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서연은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일.
돈.
시간.
그리고 또 일.
아침부터 움직였고,
점심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잠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도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밥 먹었어요?’
서연은 웃었다.
‘아직.’
곧 답장이 왔다.
‘또요?’
‘바빠.’
‘그래도 먹어야죠.’
서연은 장난스럽게 답했다.
‘잔소리.’
도진에게서 웃는 이모티콘이 왔다.
서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 짧은 대화 하나가 좋았다.
바쁜 하루 한가운데
작은 창문 하나가 열린 것 같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연락이 끊겼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서연은 일을 하면서도 가끔 휴대전화를 봤다.
메시지는 없었다.
‘바쁜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도진도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왔고,
그 자리에서 바카라임져야 할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지시해야 했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했다.
서연은 그런 도진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자기 일을 하는 남자.
맡은 것을 끝까지 바카라임지는 남자.
그런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서야 메시지가 왔다.
‘이제 끝났어요.’
서연은 거의 바로 답장을 보냈다.
‘고생했네.’
잠시 뒤 전화가 왔다.
“뭐 해요?”
도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서연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일하지.”
“아직도?”
“응.”
“도대체 언제까지 일해요?”
서연이 웃었다.
“도진 씨도 이제 끝났잖아.”
“나는 그래도 한 군데서 일하잖아요.”
“자랑이야?”
“아니.”
도진이 웃었다.
“걱정이지.”
서연은 그 말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이
아직도 조금 낯설었다.
“이번 주에 볼까요?”
도진이 물었다.
서연의 마음이 먼저 대답했다.
보고 싶다.
그런데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언제?”
“일요일?”
서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일요일.
그녀에게 일요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일하면 돈이 되는 날이었다.
하루를 쉬면 그만큼 수입이 줄었다.
남들에게는 하루 쉬는 것이
그저 하루 쉬는 일이겠지만,
서연에게는 계산이 필요했다.
이번 달 나갈 돈.
공과금.
생활비.
아직 처리하지 못한 것들.
머릿속에서 숫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도진이 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생각 중.”
“일요일도 일해요?”
“응.”
“하루 쉬면 안 돼요?”
참 쉬운 말이었다.
하루 쉬면 안 돼요?
서연도 그러고 싶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예쁜 옷을 입고,
도진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시간 걱정하지 않고 밥을 먹고,
해가 지는 것도 보고,
헤어질 시간이 됐을 때
‘조금만 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서연은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볼게.”
“무리하지 말고.”
“보고 싶다며.”
“보고 싶죠.”
“그런데 무리하지 말래.”
“그러다 서연 씨 또 아프면 어떡해요.”
그 말에 서연은 잠시 조용해졌다.
좋았다.
자신을 보고 싶은 것보다
몸을 먼저 걱정해 주는 말.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조금 아쉬웠다.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보고 싶어요.’
‘내가 갈게요.’
그런 말을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서연은 그런 자신이 조금 낯설었다.
전화를 끊은 뒤
서연은 한참 생각했다.
도진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상했다.
상대가 잘못하지 않아도
아쉬울 수 있었다.
보고 싶은 만큼 보고 싶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내가 한 걸음 가면
상대도 한 걸음 와주길 바랐다.
서연은 그제야 알았다.
사랑에는 마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시간도 필요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차를 타고 가도 꽤 걸렸다.
퇴근 후 잠깐 얼굴을 보고
커피 한잔 마시기에는 멀었다.
서연에게는 여러 개의 일이 있었고,
도진에게는 바카라임져야 할 하나의 일이 있었다.
둘 다 열심히 살았다.
그게 문제였다.
서연은 문득 웃었다.
‘둘 다 이렇게 바쁜데 연애는 언제 하지?’
젊을 때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났을까.
모르겠다.
서연에게는 비교할 젊은 날의 연애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게 처음 같았다.
보고 싶은 것도 처음.
기다리는 것도 처음.
시간을 내고 싶어서
돈과 시간을 저울질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며칠 뒤.
도진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멋있었다.
서연은 사진을 확대해서 봤다.
그러다 자신이 웃겨 다시 줄였다.
‘뭐 하는 거야.’
또 확대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일하는 남자는 좀 멋있네.’
도진에게서 바로 답이 왔다.
‘좀?’
서연이 웃었다.
‘많이 해줄까?’
‘그렇게 해주세요.’
‘싫어.’
‘왜요?’
‘버릇 나빠져.’
도진에게서 웃는 이모티콘이 왔다.
서연은 휴대전화를 가슴에 잠시 안았다.
이런 대화가 좋았다.
대단한 약속도 아니고,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가 조금 달라졌다.
그날 밤.
서연은 일정을 확인했다.
일요일.
손가락이 그 날짜 위에서 멈췄다.
쉬어버릴까.
하루쯤.
돈 생각하지 말고.
해야 할 일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가볼까.
그러다 다시 계산기를 켰다.
하루 일당을 계산했다.
화면에 숫자가 떴다.
서연은 한숨을 쉬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연애도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웃으면서 한 말인데
조금 씁쓸했다.
잠시 뒤 도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자요?’
서연은 바로 답했다.
‘아니.’
‘뭐 해요?’
서연은 잠시 고민하다 적었다.
‘도진 씨 만날 시간 찾는 중.’
한동안 답이 없었다.
괜히 보냈나 싶었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나도요.’
서연의 손가락이 멈췄다.
짧은 세 글자.
나도요.
그것이면 됐다.
서연은 웃었다.
아직은 둘 다 서툴렀다.
사랑보다 일이 먼저였고,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
내일 해야 할 일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시간에
서로를 만날 시간을 찾고 있었다.
서연은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사랑이란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는데도
그 사람에게 조금씩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아직 몰랐다.
앞으로 두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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