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시급.
나보다 한 살 어린 어른
10화
최저시급짜리 과외
“일본어 좀 가르쳐줘.”
강태헌의 메시지는 늘 맥락이 없었다.
해원은 버스 안에서 화면을 내려다봤다.
아침에는 광고 촬영 날짜를 묻더니,
점심에는 주식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어란다.
얼마 줄 건데?
답장은 금방 왔다.
최저시급.
해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쳤냐?
비싸?
시간당 최저시급 받고
너 같은 학생을 내가 왜 가르쳐.
잠시 후.
그럼 나도 하나 가르쳐줄게.
뭘.
돈 버는 법.
해원은 피식 웃었다.
네가?
응.
뭘로.
당근.
이번에는 정말 소리 내 웃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해원을 힐끗 바라봤다.
해원은 입을 가리고 다시 화면을 봤다.
강태헌이 당근을?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비싼 차를 타고,
일 년에 몇 달씩 해외를 돌아다니고,
식당에 가면 직원들이 먼저 알아보는 남자가
중고거래 앱을 들여다보며
오천 원, 만 원을 흥정하는 그림이라니.
해원이 답했다.
너 당근 할 줄 알아?
당연하지.
사진 찍어서 올리는 거?
그건 초등학생도 하지.
그럼 뭘 알려주게.
답장이 잠시 없었다.
그리고 한 줄.
물건이 아니라 흐름을 보는 법.
해원은 손을 멈췄다.
가끔 저 인간은 저랬다.
실없는 농담을 하다가
갑자기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인데?
만나면 알려줄게.
공짜?
일본어랑 교환.
해원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좋아.
곧 메시지가 왔다.
내가 훨 손해긴 하지.
미친놈.
ㅋㅋㅋ
두 사람은 이틀 뒤 카페에서 만났다.
해원은 작은 일본어 교재 한 권을 들고 나왔다.
태헌은 빈손이었다.
해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학생이 바카라도 없이 왔어?”
“선생이 준비해야지.”
“너 그냥 집에 가.”
태헌이 웃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자, 선생님.”
“왜.”
“오늘 수업 목표.”
해원이 일본어 바카라을 펼쳤다.
“히라가나부터 다시.”
태헌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아는데.”
“써봐.”
“굳이?”
“써.”
태헌이 펜을 들었다.
첫 줄부터 틀렸다.
해원이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봤다.
“너 일본 다녔다며.”
“응.”
“근데 이것도 헷갈려?”
“말은 하면 되지.”
“말도 못 한다며.”
“알아듣기는 잘해.”
“제일 얄미운 학생 유형이네.”
태헌이 웃었다.
“나는 언어 습득이 좀 느려.”
“좀?”
“남들보다 열 배 정도.”
“그럼 내가 왜 가르쳐.”
“대신 이해력은 열 배 빨라.”
해원은 눈을 흘겼다.
“그건 누가 인정했는데?”
“내가.”
“역시.”
“객관적인 사람이라.”
“네가 제일 주관적이거든.”
둘은 동시에 웃었다.
잠시 후 해원이 바카라을 가리켰다.
“이거 읽어봐.”
태헌은 한참 들여다보다 겨우 읽었다.
발음이 엉망이었다.
해원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야, 그게 아니고.”
“뭐가 달라.”
“완전히 달라.”
해원이 태헌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손가락으로 문장을 하나씩 짚으며
천천히 발음해 줬다.
태헌은 글자는 보지 않고 해원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해원이 고개를 들었다.
“왜 나를 봐.”
“입 모양 보려고.”
“바카라 봐.”
“입 모양 보라며.”
“내가 언제.”
“방금.”
“거짓말하지 마.”
태헌이 웃었다.
해원도 따라 웃었다.
이상했다.
별것도 아닌 시간인데
마음이 편했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를 바카라임져야 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윤해원.
친구 앞에서 실컷 웃는 여자.
태헌이 문득 말했다.
“좋네.”
“뭐가?”
“이거.”
“일본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있는 거.”
해원의 손이 잠깐 멈췄다.
태헌은 아무렇지 않게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내 차례.”
“뭐?”
“돈 버는 법.”
화제를 바꾸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해원은 조금 전 말을 물을 틈도 없었다.
태헌은 중고거래 앱을 열었다.
“너 뭐 팔아봤어?”
“옷도 팔고, 농산물도 팔고 이것저것.”
“어떻게 올렸는데?”
“사진 찍고 가격 정해서.”
“가격은 어떻게 정했어?”
“다른 사람 거 보고.”
태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시간만 쓰고 돈은 못 버는 거야.”
“또 잘난 척한다.”
“봐.”
태헌은 종이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구입가.
판매가.
택배비.
이동 시간.
플랫폼별 수요.
계절.
지역.
같은 물건도 어디서 가져와
언제,
어느 지역에,
어떤 사진으로 올리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다.
해원은 처음엔 장난처럼 듣다가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말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너 이런 걸 어떻게 알아?”
“장사했으니까.”
“무슨 장사?”
“이것저것.”
“또 이것저것.”
태헌은 웃었다.
그리고 해원의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이거 봐.”
해원이 며칠 전 올려놓은 물건이었다.
“사진부터 틀렸어.”
“뭐가.”
“네가 사고 싶은 사진이야?”
해원은 가만히 봤다.
아니었다.
태헌은 물건을 창가 쪽으로 옮기더니
각도를 바꿔 사진을 찍었다.
설명 문구도 고쳤다.
가격도 조금 올렸다.
해원이 놀랐다.
“가격을 왜 올려?”
“싸다고 무조건 사는 게 아니야.”
“중고인데?”
“사람은 가격으로도 물건을 판단해.”
태헌이 판매글을 다시 등록했다.
“기다려봐.”
“얼마나?”
“몰라.”
그런데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채팅이 들어왔다.
구매 가능할까요?
해원의 눈이 커졌다.
“어?”
또 하나.
오늘 거래 가능한가요?
해원이 태헌을 바라봤다.
“뭐야.”
태헌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공부 좀 해.”
“너 진짜 장사했어?”
“했다니까.”
“어느 정도?”
태헌은 커피를 마셨다.
“먹고살 정도.”
“거짓말.”
“왜.”
“먹고살 정도 아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태헌의 눈이 아주 잠깐 변했다.
그러나 곧 웃었다.
“윤해원.”
“왜.”
“사람 캐는 버릇 생겼냐?”
“네가 수상하잖아.”
“내가 뭐가.”
“생각해 보니까 이상해.”
해원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몇 달씩 여행 다니지.”
“응.”
“회사 안 가도 회사 잘 돌아간다며.”
“응.”
“주식으로 몇백, 몇천 빠지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
“아무렇지는 않아.”
“비싼 식당 직원들은 너 알아보지.”
태헌이 웃었다.
“너 나 관찰했냐?”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고.”
“관심 많네.”
“말 돌리지 마.”
그때 태헌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이름이 떴다.
김 전무.
태헌의 표정이 달라졌다.
“잠깐.”
그는 전화를 받았다.
“네.”
해원은 다시 일본어 바카라을 들여다봤다.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바로 옆자리라
말이 들렸다.
“그건 제가 없어도 진행하세요.”
잠시 침묵.
“싱가포르 쪽 지분은 그대로 두고.”
해원의 손이 멈췄다.
지분?
태헌이 말을 계속했다.
“대표이슬롯에서 결정하면 됩니다.”
또 잠시 침묵.
그리고 마지막 말.
“제가 귀국했다고 모든 걸 저한테 보고하지 마세요.
회사 굴러가게 만들어놨잖아요.”
전화가 끊겼다.
해원은 일본어 바카라만 내려다봤다.
태헌이 물었다.
“왜.”
“아무것도.”
“표정이 왜 그래.”
해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
“응.”
“진짜 뭐 하는 사람이야?”
태헌은 잠시 해원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웃었다.
“당근 가르쳐주는 사람.”
“장난하지 마.”
“일본어 배워야 하는 사람.”
“강태헌.”
해원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태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중에.”
“뭘 나중에.”
“네가 알아야 할 때 말해줄게.”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네가 그걸 정해?”
태헌의 표정이 굳었다.
해원은 말을 이어갔다.
“너는 나한테 맨날 여러 방향으로 보라며.
모르면 알아보라며.”
“그래.”
“그런데 네 얘기는 왜 맨날 숨겨?”
이번에는 태헌이 대답하지 못했다.
해원은 가방을 챙겼다.
“수업 끝.”
“벌써?”
“최저시급만큼 했어.”
태헌이 웃었다.
“얼마 보내면 돼?”
“필요 없어.”
“왜.”
해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손해 보기 싫어졌어.”
“윤해원.”
“왜.”
“삐쳤냐?”
해원이 그를 내려다봤다.
“내가 몇 살인데 삐치냐.”
자기가 하던 말을 돌려받은 태헌이
결국 웃었다.
하지만 해원은 웃지 않았다.
“다음엔 네 얘기 하나 가져와.”
“무슨 얘기.”
“진짜 강태헌 얘기.”
그리고 돌아섰다.
태헌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후,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김 전무였다.
태헌은 받지 않았다.
대신 해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수업 언제?
해원은 카페를 나온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
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까지도.
그러나 새벽 한 시.
잠이 오지 않던 해원은 결국 휴대전화를 들었다.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
강태헌.
검색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췄다.
오래된 친구였다.
친구를 인터넷에서 검색한다는 게
왠지 못할 짓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궁금했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인가.
해원은 결국 손가락을 움직였다.
강태헌.
검색.
화면이 바뀌었다.
첫 번째 결과를 읽는 순간
해원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화면 맨 위에는
해원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태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가 붙어 있었다.
최대주주.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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