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좀 소개해줘

잘했냐??

by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나보다 한 살 어린 어른
2화. 여자 좀 소개해줘
카메라 테스트가 끝난 것은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대기실 문을 나오자마자 해원은 제일 먼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알림이 여섯 개.
아들 단체방 두 개. 광고 문자 하나. 모르는 번호의 부재중 전화 하나.
그리고 강태헌.
딱 한 줄이었다.
잘했냐?
해원은 잠시 화면을 내려다봤다.
이 사람은 참 이상했다.
잘했어? 괜찮았어? 떨리지 않았어?
그런 다정한 말 대신
잘했냐?
늘 그런 식이었다.
다정함을 툭 던져놓고 자기가 다정한 줄은 절대 모르는 사람처럼.
해원은 답장을 썼다.
잘했지. 누군데.
곧바로 답이 왔다.
떨어졌네.
“미친놈.”
해원이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옆을 지나가던 여자가 힐끗 쳐다봤다.
해원은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그러자 다시 진동이 울렸다.
영상 찍었으면 보내봐.
싫어.
왜.
못생겨서.
네 얼굴 하루 이틀 보냐.
해원은 걸음을 멈췄다.
이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거야.
못생긴 건 인정한다는 거야?
그래.
답장은 더 빨랐다.
사람 말을 꼭 그렇게 알아듣는다니까.
그럼 어떻게 알아들어.
봐야 잘했는지 알지.
심사위원이냐?
내가 더 정확하지.
웃음이 나왔다.
태헌과 대화를 하면 늘 이랬다.
처음에는 분명 짜증이 났는데 끝에는 웃고 있었다.
둘이 만나면 서로 말을 잘라먹었고, 누가 하나 양보하는 법도 없었다.
태헌이 아는 척을 하면 해원은 재수 없다고 했고,
해원이 지나치게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면 태헌은 혀를 찼다.
“윤해원, 너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어야 돼.”
“왜?”
“네가 그때 살았으면 열녀문 하나 세워졌어.”
“욕이지?”
“칭찬이다.”
“네 칭찬은 왜 항상 기분이 나쁘냐.”
그런데 몇 년을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해원은 묘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
예전의 해원은 맞고 틀리는 것을 먼저 나누었다.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바카라임지는 사람. 바카라임지지 않는 사람.
삶에는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태헌은 그것을 싫어했다.
“사람이 수학 문제냐?”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지.”
“기준은 필요한데 답은 하나가 아니라고.”
“너는 맨날 애매하게 말해.”
“애매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빨리 판단하는 거야.”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해원은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그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은 한 방향에서만 보면 안 된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세상에는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도 있다고.
그런 말을 할 때의 태헌은 이상할 만큼 어른 같았다.
고작 한 살 어린 주제에.
해원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또 메시지가 왔다.
밥 먹었냐.
아직.
밥부터 먹어.
잔소리하지 마.
너는 누가 잔소리 안 하면 굶잖아.
나는 애가 아니거든.
그때 태헌의 답장이 멈췄다.
해원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아마 또 다른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태헌은 늘 그랬다.
몇 시간씩 말을 쏟아내다가도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해원도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그런 걸 묻는 순간 관계가 달라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날 오후 네 시 무렵,
태헌은 서울 외곽의 한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여자가 있었다.
서른아홉.
유학을 다녀왔고 작은 갤러리를 운영했다.
지인의 소개였다.
처음 만난 날부터 태헌은 자신의 직업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무역 비슷한 거 합니다.”
“회사 규모는요?”
“그냥 먹고살 정도요.”
여자가 웃었다.
“대표님이시라던데요?”
“작은 회사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회사의 숫자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여자가 물었다.
“집은 어디 사세요?”
태헌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서울이요.”
“서울 어디요?”
“여기저기.”
여자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태헌은 그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차는 뭐 타세요?”
“아무거나요.”
“외제차 타신다고 들었는데.”
태헌이 웃었다.
“차 좋아하세요?”
“남자 보는 데 경제력도 중요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솔직해서 좋았다.
그런데 태헌은 이상하게 마음이 식었다.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여자가 말했다.
“다음에는 대표님 회사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켰다.
메시지가 하나와 있었다.
윤해원.
사진이었다.
카메라 테스트장에서 누군가 찍어준 사진.
머리를 단정히 올리고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밝은 색 옷을 입은 해원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한 줄.
이 정도면 안 떨어지겠지?
태헌은 한참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정말 이상한 여자였다.
자기 외모에 별 관심도 없고, 돈 버는 일에는 악착같으면서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무엇을 시작할 때마다 자기는 나이가 많다고 투덜거리면서
막상 시작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태헌은 답장을 보냈다.
떨어져도 네 인생 안 끝나.
잠시 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또 웃음이 나왔다.
태헌은 화면을 보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자신이 방금 만난 여자와 해원을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휴대전화를 껐다.
“미쳤네.”
혼잣말이었다.
한 시간 뒤, 해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받자마자 반말이었다.
태헌이 말했다.
“어.”
“여자 소개해준다며?”
“네가?”
“응.”
태헌의 표정이 달라졌다.
“누구?”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괜찮은 여자 하나 있긴 해.”
“몇 살?”
“나보다 여섯 살 어려.”
“직업은?”
“그런 거부터 묻냐?”
“그럼 뭘 물어봐.”
“사람 됨됨이부터 물어야지.”
태헌이 헛웃음을 냈다.
“윤해원.”
“왜.”
“너는 왜 내 결혼에 그렇게 열심히야?”
해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네가 소개해달라며.”
“그래도.”
“그래도 뭐.”
태헌은 창밖을 바라봤다.
차창 너머 서울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면 좋겠어?”
해원이 웃었다.
“당연하지.”
“왜?”
“네가 혼자 늙어 죽는 것보다 낫잖아.”
“그게 다야?”
“뭐가 더 있어야 돼?”
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원이 먼저 말했다.
“야, 근데 조건 좀 낮춰.”
“내가 뭘.”
“착해야 하지, 예뻐야 하지, 정신 멀쩡해야 하지, 자기 일 있어야 하지, 돈 안 밝혀야 하지.”
“중요하지.”
“그런 여자 있으면 왜 너한테 소개하냐. 내가 데리고 살지.”
태헌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 여자 좋아하냐?”
“미친놈아.”
“그러니까 말을 똑바로 해.”
“끊는다.”
“잠깐.”
해원이 전화를 끊으려다 멈췄다.
“왜.”
“너는?”
“내가 뭐.”
“만약.”
태헌이 말을 멈췄다.
처음이었다.
항상 말이 빠른 남자가 문장을 고르고 있었다.
“만약 네가 다시 결혼한다면 어떤 남자랑 살고 싶은데?”
해원은 웃었다.
“갑자기?”
“그냥.”
해원은 대충 넘기려다가 이상하게 진지해졌다.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성실한 사람.”
태헌은 말이 없었다.
“자기 인생을 남한테 맡기지 않는 사람.”
“또.”
“정직한 사람.”
“또.”
해원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말했다.
“같이 있을 때 웃을 수 있는 사람.”
태헌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해원이 물었다.
“왜 물어봤어?”
태헌은 창문을 조금 내렸다.
밤공기가 들어왔다.
“그냥.”
또 그 말이었다.
해원이 혀를 찼다.
“넌 꼭 중요한 건 그냥이래.”
태헌은 웃었다.
“그러니까 여자 소개나 잘해.”
“알았어. 사진 보내줄게.”
“됐어.”
“왜?”
“별로 안 궁금해.”
“야! 네가 소개해달라며.”
“마음 바뀌었다.”
“뭐야.”
“나중에.”
전화가 끊겼다.
해원은 화면을 바라봤다.
“이상한 놈.”
그리고 태헌은
방금 만난 여자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삭제했다.
그날 밤.
그는 오래된 금고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서류와 사진, 그리고 작은 검은색 수첩이 있었다.
첫 장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혜진.
옆에는 짧게 한 줄.
재산 확인 후 태도 변화.
두 번째.
정유라.
거짓말 반복.
세 번째.
박소영.
직원에게 함부로 함.
이름이 열두 개쯤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
태헌은 한동안 펜을 들고 있었다.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결국
한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윤해원.
펜 끝이 멈췄다.
태헌은 한참 고민하다 그 아래에 한 줄을 썼다.
돈을 모르는데도 내 곁에 있는 여자.
그리고 잠시 후,
그 문장을 까맣게 지워버렸다.
대신 새로 적었다.
절대 시험하지 말 것.
태헌은 수첩을 덮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몰랐다.
몇 달 뒤,
그 수첩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될 사람이
바로 윤해원이라는 것을.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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