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직 이혼 안 했어?

강태헌이었다.

by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나보다 한 살 어린 어른

1화
너 아직 이혼 안 했어?

“너 아직 이혼 안 했어?”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봤다.

강태헌이었다.

아침부터 뜬금없는 인간.

나는 한참 동안 답장을 쓰지 않았다.

그러자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살아 있냐?”

나는 피식 웃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어.”

곧바로 답이 왔다.

“그러니까 이혼은?”

나는 결국 손가락을 멈췄다.

이 인간이 또 이러네.

강태헌은 일 년에 한두 번쯤
아무 맥락 없이 내게 이혼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두 번째에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부터는 조금 이상했다.

“너 왜 자꾸 내 이혼 여부를 물어?”

읽음.

답이 없었다.

역시나.

자기가 불리한 질문에는 귀신같이 입을 닫는다.

잠시 뒤 전혀 다른 메시지가 왔다.

“나 결혼할 거야.”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누구랑?”

“그러니까 네가 여자 좀 소개해줘.”

미친 인간.

나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답장을 썼다.

“나보고 네 결혼정보회사 하라고?”

“너 사람 보는 눈 있잖아.”

“내가?”

“응.”

“처음 듣는다.”

“내가 인정해 주잖아.”

“싫어.”

1초도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왜?”

“귀찮아.”

“소개만 하면 되지.”

“조건 많잖아, 너.”

잠시 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정말 조건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착한 여자.

자기 일 있는 여자.

돈에 지나치게 관심 없는 여자.

여행 좋아하는 여자.

외국어 조금 하면 좋고.

술 지나치게 많이 안 마시고.

감정 기복 심하지 않고.

거짓말 안 하는 여자.

나는 읽다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아래로 밀었다.

끝이 없었다.

“야.”

“왜.”

“그 정도면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주문 제작을 해야 돼.”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못 보냐?”

“너 몇 살인데 평생이 그렇게 많이 남았다고.”

“너보다 한 살 어려.”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럴 때마다 한 살 어린것을 꼭 강조한다.

“그래. 어린놈아.”

“말 똑바로 해. 강태헌 선생님.”

“미쳤냐?”

“역시 교양이 없어.”

“차단한다.”

“너 나 차단 못 해.”

나는 손가락을 멈췄다.

왜 못 하는데.

그 말을 쓰려다가 지웠다.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강태헌과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정확히 언제부터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내가 답답한 소리를 하면 그가 구박했고,
그가 너무 잘난 척하면 내가 한 마디씩 눌러줬다.

우리의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너는 왜 세상을 그렇게 좁게 보냐.”

“나는 현실적으로 보는 거야.”

“그게 좁은 거야.”

“잘난 척하지 마.”

“모르면 배워.”

“싫어.”

“그래서 발전이 없는 거야.”

“차단한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나는 그가 추천한 바카라을 읽었고,

그가 가보라고 한 곳에 가봤고,

그가 했던 말 중 몇 개는
내 삶의 기준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나는 원래 꽤 고지식한 여자였다.

정해진 것은 지켜야 했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했고,
열심히 살면 결국 어떻게든 된다고 믿었다.

강태헌은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말했다.

“해원아, 세상이 네 교과서처럼 움직이면
나도 참 편하겠다.”

“그러는 넌 왜 그렇게 비뚤게 보는데?”

“비뚤게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보는 거야.”

“말은 잘한다.”

“그러니까 나랑 친구 하는 거 아니냐.”

맞는 말이라 더 얄미웠다.

그런데 사실

내 인생에서
내 가치관을 몇 번이나 바꿔놓은 사람은
강태헌이 거의 유일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기대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 년 전,
내 삶이 가장 힘들었던 그날 전까지는.

그날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겪었다.

속이 뒤집히고
손이 떨리고
나는 내가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인 것 같았다.

그때 태헌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평소 같았으면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왜인지 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웃음을 거두었다.

“너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울었냐?”

“안 울었어.”

“윤해원.”

그가 내 이름을 똑바로 불렀다.

“말해.”

나는 처음에는 조금만 이야기하려 했다.

그런데 한번 입을 열자 멈추지 못했다.

한참을 떠들었다.

화도 냈다가,
울었다가,
내가 너무 바보 같다고도 했다.

그는 중간에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말을 다 끝낸 뒤
한참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해원아.”

“응.”

“네 잘못 아니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결국 소리 내어 울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일인지.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강태헌이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평생 누군가를 바카라임지는 쪽에 서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나보다 어린 남자가
나보다 훨씬 어른 같았다.

그 뒤로
나는 가끔 그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가끔.

그런데 절대로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친구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남자에게는 늘 여자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들이 있었다.

여행에서 만난 여자.

지인이 소개해준 여자.

사업 때문에 알게 된 여자.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가까워졌다는 여자.

그는 종종 그 여자들 이야기를 내게 했다.

“이번 여자도 이상해.”

“또?”

“처음 만났는데 집이 몇 채냐고 묻더라.”

“네가 돈 많은 척했겠지.”

“내가 언제?”

“네 말투 자체가 돈 많아 보여.”

“그게 뭔 소리냐.”

“재수 없다는 뜻.”

그는 웃었다.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다 괜찮았다고 했다.

밝고,
착하고,
자신에게 관심 있는 것 같았다고.

그런데 조금 지나면
꼭 하나씩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겼다.

돈을 지나치게 궁금해하거나,

사소한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태도가 달라지거나.

“너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야?”

내가 물으면 태헌은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그럼?”

“평생 같이 살 사람을 고르는 건데
대충 고를 순 없잖아.”

나는 그 말을
그냥 노총각의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여자들을 고르는 이유가
단순히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재산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규모라는 것도.

그날 오후.

나는 카메라 테스트를 앞두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어쩌다 지원하게 된 모델 오디션이었다.

분장을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태헌이었다.

“카메라 테스트 잘해.”

나는 웃었다.

이 인간이 기억하고 있었네.

“응. 광고촬영도 하나 봐.”

“너 그런 거 잘할 것 같아.”

“왜?”

잠시 뒤 답이 왔다.

“얼굴이 옛날 여자 같잖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야!”

곧바로 하나가 더 왔다.

“좋은 뜻.”

“미친 인간.”

“한복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옆에 있던 여자가 나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메시지를 썼다.

“오늘 떨어지면 네 탓.”

“붙으면?”

“내 실력.”

“역시 뻔뻔하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남자는

왜 내 오디션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왜 몇 년째
내가 이혼했는지를 묻는 걸까.

그날 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강태헌은 한 변호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변호사가 말했다.

“이대로 가시면
법정상속인 문제가 남습니다.”

태헌은 무표정하게 서류를 넘겼다.

“그러니까 미리 정리하려는 겁니다.”

“누님들 쪽에는 정말 한 푼도 남기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태헌의 손이 멈췄다.

“네.”

단호했다.

“저 죽고 나서
그 집안으로 넘어가는 돈은
십 원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배우자가 가장 중요해집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결혼을 생각하는 분이 있으십니까?”

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조금 전까지 나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카메라 테스트 잘해.

한복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그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한 명 있기는 한데.”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분입니까?”

태헌이 작게 웃었다.

“아니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덧붙였다.

“아직 남의 여자라서.”

그 시각,

나는 그 남자가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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