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팀에서 물량이 많은 형님 한 명이 유난히 힘들어 보였다. 날씨는 덥고, 휴일 때문에 밀린 물량까지 겹쳤다. 평소에도 많은 물량을 하는 사람인데 이날은 더욱 버거워 보였다.
우리 팀에서는 보통 5천 개 이상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량이 많은 날에는 늦은 시간까지, 힘들어도 버티면서 하는 분위기가 있다. 옆에 있던 다른 형님이 내게 말했다.
“고생한다고 말이라도 좀 해줘.”
그 말에는 우리는 다 같이 고생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물론 말했다. “형님, 요즘 고생 많으시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날씨도 덥고, 매일 많은 물량을 처리하니 힘들 수밖에 없다. 내가 걸렸던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그 물량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돈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많은 물량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내가 하던 물량 일부도 가져갔다. 나는 반대로 물량을 줄였다. 돈을 더 벌지 않는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시간을 공부와 글쓰기에 쓰고 싶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셈이었다. 한 사람은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선택했고, 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한 수입을 포기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한쪽의 희생만 잘 보인다. 늦게까지 배송하는 사람은 눈앞에 보인다.
“저 사람 정말 고생한다.”
반면 물량을 줄여 월 수입이 떨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일찍 끝나는 모습만 보인다.
“저 사람은 편하겠네.”
우리 팀은 특히 물량이 많다. 어떤 사람은 한 달에 6천 개 가까운 물량을 처리한다.
적은 지역에서는 2천 개 후반 정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팀 안에서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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