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물량은 남고 사람은 떠난다

by대건

이전에 있던 팀의 팀장이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관리자와 부딪히기도 했고, 불만을 이야기하며 바꿔보려 애쓰기도 했다. 그가 떠날 생각을 하기까지 어떤 마음들이 쌓였을지, 이제는 다른 팀에서 일하는 내가 모두 알 수는 없었다.


그 무렵 그 팀에 결원이 생겼다. 한 사람은 조부상으로, 또 다른 사람은 아파서 나오지 못했다. 빈자리를 메우러 타팀의 기사가 왔다. 부인과 함께 배송하는 그는 평소 물량이 적어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어느새 나흘째 지원 업무를 하고 있었다.


혹시 팀장이 떠난 뒤의 자리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었다. 당장 물량이 필요해서 나왔을 수도 있고, 부탁을 받아 도왔을 수도 있었다. 다만 어려울 때 직접 나서서 일한 사람이 나중에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구역을 맡으면 만족할지는 모르겠다. 나도 조금씩 지원을 나가봤지만, 물량이 많은 만큼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사람이 바뀐다고 길이 짧아지거나 배송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얻고 싶은 자리여도, 막상 맡고 나면 벗어나고 싶은 자리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팀에서도 비슷한 마음들이 보인다.


추석 특수기가 지나고 피로가 뒤늦게 드러나는 듯했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생각해서인지 물량을 조금 줄이고 싶어 하는 기색도 보였다. 학교나 공장처럼 시간이 걸리는 곳을 덜어내고, 어떻게든 자신의 구역을 조금 편하게 만들고 싶은 눈치였다.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왔다.


“거기는 네 구역 바로 옆이잖아. 네가 조금 해주면 내가 훨씬 낫지.”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그는 그곳을 가기 위해 신호를 거쳐야 했고, 나는 가까이서 배송하고 있었다. 같은 곳을 배송하더라도 내가 움직이는 시간이 더 짧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동선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조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없던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가 아끼는 시간보다 내가 더 쓰는 시간이 짧다고 해서, 내 시간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곳이라는 말만으로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물량 넘치면 네가 대신 가라.”


반쯤 장난으로 건네는 말도 부쩍 늘었다. 팀장이 스트레스 받겠다며 적당히 하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어떤 대꾸가 나오는지 귀를 기울였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 침묵의 뜻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농담 속에 받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도 물량이 많으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이번 추석에는 나 역시 힘들었다. 내게 구역 일부를 맡아달라던 그는 팔이 아프다는 말도 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정을 안다고 해서 내가 일을 더 받아줄 여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 팀에서는 물량을 받았다가 형과 크게 다툰 적도 있었다. 그만둘 생각까지 했고, 지금 팀으로 옮겨왔다. 현재 구역에도 이미 다른 구역의 일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다시 무언가를 더 받았다가 예전과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형도 반대했고, 나 역시 늘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상대에게는 그 결정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바로 옆이고, 돈도 더 벌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형 이야기를 꺼내면 거절하기 위해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두 사람이 함께 일한다. 혼자 일하는 사람보다 일찍 끝난다면, 그 시간에는 두 사람의 수고가 들어 있다. 끝나는 시각만 보고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일을 마친 뒤에 보내고 싶은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더 일하는 데 쓸지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었다.


처음 그가 구역을 맡을 때 나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돈을 벌어야 한다며 할 수 있다고 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었을 수 있다. 나도 겪어봤으니 그 판단이 달라지는 것까지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물량이 많으면 줄이라는 다른 동료의 말에는 대꾸가 없고, 내게 일부를 맡아달라는 이야기는 이어지니 마음이 복잡했다. 수입은 필요하고 몸은 힘들 것이다. 가능하다면 수입은 많이 줄이지 않으면서 손이 가는 구역을 덜어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마음은 이해해도 내가 받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이라면 팀장에게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역 일부를 타팀으로 이관할 수 있는지, 사람이 부족하다면 인원을 늘릴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이미 여러 번 조정된 구역을 되돌리기 어렵다면, 지금 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다른 팀에도 사정이 있고, 사람을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옆에 있는 동료가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버티다 보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자리를 옮길 뿐이다.

받아준 사람도 처음에는 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까운 곳 몇 군데, 조금 늘어난 물량 정도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다 피로가 쌓이고, 집에서 다툼이 생기고, 어느 날 그 사람도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그 과정의 일부를 이미 겪었다.


떠날지도 모른다는 이전 팀장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가 지친 이유를 물량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떠날 때마다 남은 물량을 누가 맡을지만 생각한다면, 다음에 그 자리에 온 사람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 구역을 더 편하게 만들고 싶다. 덜 힘들게 일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편해지는 방법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당연하게 넣고 싶지는 않다. 내 시간도 그렇게 다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맡은 일을 오래 하고 싶다. 그러려면 더 할 수 있어 보이는 순간에도 멈춰야 할 때가 있다. 할 만한지는 직접 일하는 내가 판단해야 한다.


힘든 동료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받아든 나도 무너진다면, 좋은 뜻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한 번 무리해서 일을 늘렸다가 형과 다투고,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남을 위한다는 명분이 내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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