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동안 자리는 이미 정해지고 있었다
이번 장마에는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렸다. 잠깐 쏟아지고 그치는 비가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게 이어지는 비였다. 차에서 물건을 꺼내는 짧은 순간에도 상자가 젖었고, 빗줄기가 거센 날에는 우산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건이 젖지 않게 신경 쓰며 미끄러운 바닥까지 살펴야 했으니, 배송 속도는 평소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의 팀으로 옮겨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맡은 구역에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가 많아서, 비를 피해 물건을 정리하고 배송할 수 있었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요란했지만 차를 지하로 넣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몸도 물건도 비교적 안전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일수록 좋은 구역이 하루를 얼마나 바꾸는지 실감했다.
처음부터 이런 구역에서 일했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몸은 많이 쓰는데 효율은 좋지 않은 구역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참고 일하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 내 사정을 알아보고 조정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불합리한 조건을 견디는 일이 어느 순간 성실함이 아니라 내 선택처럼 굳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먼저 팀 이동을 요청했다. 지금 조건으로는 계속 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다른 팀으로 옮겨달라고 말했다. 괜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도 됐지만, 말하지 않은 사정을 누군가 알아서 헤아려주기를 기다리는 데는 이미 지쳐 있었다. 결과는 이동이었다. 이번 장마에 지하주차장을 오가며 배송할 때마다, 그때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비를 맞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달리 계속 기다린 동료가 있다. 그의 구역은 비가 오면 배송이 더 힘들어졌고, 지하주차장을 쓰기 어려운 곳이 많아 빗속에서 물건을 들고 움직여야 했다. 그 역시 자신의 구역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고, 주변 사람들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당장은 자리가 없으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더 나은 구역을 맡게 될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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