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동화바카라을 잠시 덮으며...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에필로그

동화바카라을 잠시 덮으며...


우리는 흔히 동화는 어린이가 읽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는 그저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라고 믿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욕심 많은 사람은 불행해지는, 명확한 공식 같은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아이들이 훌쩍 성장해 나가는 삶의 여정과,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 관계속에서 배우고 겪어본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꿈꾸던 동화의 세계와는 사뭇 달랐다.


인생의 작은 골목길들을 걷다 보니 그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는 더 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려움을 겪으며 절망과 슬픔도 맛보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도전과 용기도 배웠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는 사랑과 바카라임을 배웠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관계를 배웠다.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는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드는 학문의 세계도 경험했다. 그렇게 나는 여러 역할을 지나오며 조금씩 지금의 내가 되어왔다.


어린아이의 그 순수하고 맑은 영혼, 빛나는 눈동자는 비록 없지만, 내게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쌓여 있지 않던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오며 겪었던 많은 경험들이 나이테만큼 내 안에 진하게 들어차 있다.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 시간들이 세상을, 그리고 동화를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굽잇길을 지나오면서 다시 읽게 된 동화는 어릴 때와 같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음식과 관련된 모티브를 중심으로 동화를 새롭게 해석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가다 보니 그것은 단순히 음식에 머물지 않았다. 음식 너머의 다양한 세상이 보이고, 관계가 보이고, 음식과 연결된 수많은 사물과 생명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음식이었지만, 음식은 동화 속 더 넓은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이 되어주었다. 동화가 내게 건네는 메시지는 어느새 인생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음식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사람을 보게 되었고, 사람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동화를 다시 읽으며 질문이 많아졌다.

원래 동화의 줄거리에서는 그냥 스치고 지나갔던 작은 장치들조차 어느 순간 내 생각 속으로 쓰~윽 들어오면서 “왜 그런 걸까?”라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그랬지?”, “아,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계속되는 나만의 질문들을 쫓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아,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새롭게 이해되기도 했다. 질문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동화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줄거리만 쫓았다면 이제는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 마음이 설레고 애정이 갔다. 그래서 자꾸 동화 속의 작은 것들을 향해 말을 걸면서 새로운 동화 속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마음에 쓰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 사소한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노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보다 들에 핀 이름 없는 들꽃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주인공이 아닌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갔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별것 아니라고 지나쳤던 것들 안에 오히려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니, 경험한 만큼 보이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동화는 어린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같은 동화도 또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벗어나 어른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이야기는 더 유연해지고, 더 다양해지고,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이만 먹었지 아직은 편협하고 얕은 지식으로 동화 속 이야기를 충분히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나의 인생 여정이 계속되는 한, 나는 한 뼘 더 성장해 갈 것이고, 더 넓어진 시각으로 나를 새롭게 빚어갈 것이다.


이제 그동안 읽었던 동화를 잠시 덮으며 이 글들도 끝맺지만, 동화를 다시 읽는 일은 내 인생의 새로운 화두가 될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동화를 만나게 될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하다.

또 10년 뒤에 똑같은 이야기들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이야기들을 읽었을 때 지금은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새롭 보인다면,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 내가 그만큼 또 더 살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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