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속 음식과 100일의 생리학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⑯
제목 : 곰은 어떻게 사람이 되었을까?
부제: 단군신화 속 음식과 100일의 생리학
찌개를 끓일 때도 마늘 한 스푼, 나물을 무칠 때도 마늘 한 스푼, 고기를 구울 때도 마늘 한 접시.
사실 요리를 할 때 마늘이 빠지면 맛이 밋밋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마늘은 특별한 향신료라기보다 거의 요리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한국인의 마늘 사랑의 기원을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서 찾기도 한다.
바로 단군신화의 웅녀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환웅을 찾아갔다. 환웅은 이들에게 쑥 한 단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곰과 호랑이는 동굴로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랑이는 뛰쳐나왔다. 그러나 곰은 끝까지 견뎌냈다. 마침내 사람이 된 곰은 웅녀가 되었고,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군신화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가 이상한 데서 발목이 잡혔다.
잠깐.
그런데 그 마늘, 정말 마늘이었을까?
고조선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시기의 한반도에 오늘날 우리가 먹는 통마늘이 존재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삼국유사》의 원문에도 현대어 ‘마늘’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산(蒜)’이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 지금 우리가 먹는 마늘이 전래된 시기는 고조선보다 훨씬 후대라는 견해가 많다. 그렇다면 웅녀가 먹었던 것은 정녕 마늘이 아니었던 것일까?
산(蒜)’을 달래와 같은 토종 식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것 역시 확정된 하나의 정답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다. 달래였든, 그와 비슷한 토종의 다른 풀이었든 분명한 것은 그 식물이 오늘날 우리가 마늘을 먹을 때 느끼는 것처럼 알싸하고 매운 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호랑이가 견디지 못하고 줄행랑을 칠 리가 없다.
왜 환웅은 하필 이런 음식을 주었을까?
달콤한 과일도 아니었다. 곡식도 아니었다. 말린 고기도 아니었다.
쓰고 향이 강한 쑥과, 코끝을 찌르는 냄새를 가진 알싸한 식물이었다. 그리고 그것만 먹으라고 했다. 햇빛도 없는 동굴에서 100일 동안.
육식성인 곰과 호랑이에게는 거의 가혹한 식이요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겨울잠을 자느라 동굴이 익숙한 곰에 비해 사냥에 능한 호랑이에게는 본능을 거슬러야 하는 일이 더 참기 어려웠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곰에게는 조금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곰은 어두운 은신처에서 긴 계절을 보내는 데 익숙한 동물이다. 먹이가 부족한 계절을 견디고, 움직임을 줄이고, 때가 되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어둠 속에서 견디는 동물. 먹이가 부족한 계절을 버티는 동물.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동물. 어쩌면 고대인들에게 곰은 ‘견디는 동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반면 호랑이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냥해야 하는 동물이다. 그런 호랑이에게 동굴에 들어가 햇빛도 보지 말고, 고기도 먹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생존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혹독한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곰만 남았다.
100일의 시간
우리는 유독 100일이라는 숫자를 많이 기억한다. 아기가 태어난 후 100일을 기념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100일 기도가 그러하다.
그런데 생리학의 눈으로 100일을 바라보면 몸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뼈는 평생 오래된 조직을 허물고 다시 만드는 리모델링을 반복한다. 하나의 골 리모델링과정은 대략 3개월 정도가 걸리며, 혈액검사에서 보는 당화혈색소(HbA1c) 역시 오늘의 혈당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략 지난 2~3개월 동안 우리 몸이 어떤 혈당 환경을 지나왔는지를 흔적으로 남기지 않던가.
매일 먹는 음식에 따라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정착하고 안정화되는 최소한의 시간도 3개월, 다이어트도 100일은 해야 하고, 우리가 마음먹은 계획도 100일은 해야 나의 습관으로 그나마 정착된다.
어쩌면 단군신화의 100일도 그런 시간이지 않았을까.
아마도 곰에게 주어진 시험은 단순히 쑥과 마늘을 먹는 일만이 아니었을 거다.
동굴에서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이고,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본능을 억누르는 시간이며, 이전의 존재와 새로운 존재 사이를 가르는 시간이다.
머무는 곳을 바꾸고, 햇빛을 차단하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 그게 진짜 곰을 웅녀로 만드는 과정이었을거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에는 곰이었다.
하지만 동굴에서 나왔을 때는 웅녀가 되어 있었다.
곰을 만든 것은 마늘이나 쑥이었을까, 아니면 견뎌낸 시간이었을까?
어쩌면 단군신화에서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음식과 함께 주어진 ‘금기’였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느냐만큼이나 무엇을 먹지 않는가. 어디에 머무는가. 얼마나 오래 견디는가.
그리고 자신의 본능을 얼마나 억누를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흔히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마늘이나 쑥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곰이 동굴에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에 달라진 것은 음식때문만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무엇을 먹었느냐보다, 그것을 먹으며 얼마나 견뎠느냐에 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