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데렐라의 마차는 하필 호박이었을까?

속을 비움으로써 완성되는 변신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⑮

제목 : 왜 신데렐라의 마차는 하필 호박이었을까?

부제 : 속을 비움으로써 완성되는 변신


미국에서 살 때 매년 10월이 되면 집집마다 벌써 핼러윈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 집도 현관 앞에 커다란 허수아비 장식을 세워놓고, 커다란 호박과 과일들과 장식품을 사서 집을 꾸몄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호박 등불 만들기였다.

칼로 호박 윗부분을 도려내면 아이들은 숟가락으로 호박 속의 씨와 섬유질을 긁어냈다. 미끄덩거리는 속을 파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속이 깨끗하게 비워진 호박에 무서운 얼굴을 그리고 눈과 입을 조심스럽게 도려내기도 한다. 그렇게 완성하고 나서 전등을 모두 끄고 호박 안에 작은 양초나 LED 전구를 넣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밭에서 굴러다니던 평범한 호박이 어둠 속에서 얼굴을 가진 등불이 되었다.

겉은 그대로인데 속을 비우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호박을 보면 꼭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당연, 신데렐라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핼러윈 호박과 신데렐라의 호박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핼로윈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신데렐라에서는 어둠에 놓인 한 소녀를 밝은 궁전으로 인도하는 셈이다. 물론 황금빛 마차로 변신하면서..


그럼 신데렐라에서 하필 왜 호박이었을까?


요정은 멀리 있는 귀한 물건을 가져와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신데렐라가 하루 종일 일하던 집과 정원 주변에 있는 평범한 것들을 이용한다. 생쥐도, 도마뱀도, 그리고 호박도.

사실 호박은 가난한 이들의 흔한 식재료였다. 호박은 땅에 심기만 하면 척박한 환경에서도 덩굴을 뻗으며 아무 데서나 무섭게 잘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근이 들거나 밀 수확이 망했을 때, 가난한 평민과 농노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먹던 가장 값싸고 흔한 비상식량이었기도 했다.

호박으로 마차를, 생쥐를 마부로 만들면서 요정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라 신데렐라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잘 활용하니까 더 재미있고 신비스러운 것 같다.

특히나 호박의 생김새가 마차를 연상하기 좋았을 것 같다.

특히 호박은 크고 둥글며 속을 파낼 수 있다. 속을 비우면 커다란 빈 공간이 생긴다. 마차로 변신시키기에 상상하기 좋은 모양이다.


호박의 변신은 신데렐라 자신의 변신과 닮았있다.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평범한 소녀가 그날 밤에는 화려한 무도회의 주인공이 된다. 밭에 있던 평범한 호박은 황금 마차가 되어 그녀를 궁전으로 데려간다. 평범한 것이 가장 화려한 것으로 변한다는 공통점.

그래서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는 단순한 마법의 소품이 아니라, 신데렐라 이야기 그 자체를 닮은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날 밤 호박이 없었다면 신데렐라는 궁전까지 걸어가야 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어도 자정 전에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유리구두까지 신고 있었으니 말이다.


동화 속 마법은 이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엌 한구석에 있던 호박처럼, 매일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순간, 호박은 등불이 되기도 하고, 마차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평범했던 삶도, 어쩌면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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