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와 서울쥐

나는 어느 쥐로 늙어갈까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⑱

제목 : 나는 서울쥐일까, 시골쥐일까

부제: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는 삶의 기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그러니 당연히 나는 서울쥐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고, 차가 많고,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가 익숙했다.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도 가장 복잡한 곳 중 하나였던 송파 잠실에서 살았다. 그리고 강남으로 출근했다. 아파트와 상가와 자동차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 사이를 매일 지나다녔다. 날마나 바쁘게 재촉하는 일상이었지만 또 그 곳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고, 풍요로왔다,


그러다 미국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겨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마을에서 살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동네가 금새 조용해졌다. 가로등마저 흐릿해서 일찍 어두워졌다. 한국처럼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는 카페나 식당도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지인들과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부부가 싸워도 갈 데가 없어.”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카페도 별로 없고, 갈 만한 곳도 많지 않으니 부부싸움을 하고 잠시 피신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는 농담이었다.

집 주변에는 깨끗하게 정돈된 공원이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공원의 넓은 호수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호수에는 물고기가 떠다녔고, 오리와 거위가 한가롭게 물 위를 오갔다. 가끔 토끼가 나타났고, 집 뒤편 산의 펜스 너머로 노루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복잡한 서울에 언제 살았던가 싶을 정도로 나는 그곳의 느린 생활에 금세 익숙해졌다. 서울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업무 때문에 서울이 아닌 작은 중소도시에 살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지방에서 괜찮겠어?” 그런데 정작 나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조용한 삶에 적응했으니까. 오히려 서울에 올라가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서울이 갑자기 너무 시끄럽게 느껴졌다.

차들이 너무 막혀서 움직이지 않는 교통체증 속에서 답답함을 느꼈고, 쉴 새 없이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길 사이에서는 방향을 잃고 서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건물마다 커다란 간판들이 번쩍거렸다. 서울에서 운전을 시작했던 나건만, 이젠 서울에서 운전하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쉴새없이 끼어드는 차량 앞에서 겁나는 순간순간들.

“아유.. 적응하기 힘드네.. 갑자기 나 시골쥐가 된 기분이야. “


이솝우화의 「서울쥐와 시골쥐」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이야기 속 서울쥐와 시골쥐는 서로 친구였다. 어느 날 서울쥐가 시골쥐의 집을 찾아간다.

시골쥐는 옥수수, 감자, 도토리 같은 소박한 음식을 정성껏 차려주지만, 서울쥐가 보기에는 영 시원찮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쥐가 시골쥐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식탁 위에는 고기, 케이크,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쌓여 있어 시골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도시는 정말 다르구나.” 너무 부러워서 서울에서 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고양이가 나타났다. 두 쥐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고, 간신히 쥐구멍으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도, 화려한 도시 생활도 더 이상 즐길 수 없었다.

결국 시골쥐는 말한다.

“나는 이런 곳에서는 못 살겠어. 차라리 내 집으로 돌아갈래.”


어릴 때는 이 이야기를 그저 도시와 시골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도시에는 맛있는 것도 많고 편리한 것도 많지만, 시골에는 소박해도 마음 편한 삶이 있다는 이야기. 우리는 흔히 이 우화를 읽으며 서울쥐의 화려하지만 불안한 삶보다 시골쥐의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얻곤 한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시골쥐에게도 먹이를 찾아야 하는 수고가 있고,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천적을 경계해야 하기도 한다.

도시의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의 불안이 놓여 있는 셈이다.

결국 어느 곳에도 완벽하게 편안한 삶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시에는 도시에서 감당해야 할 것이 있고, 시골에는 시골에서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불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불안을 견디며 살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복잡한 서울의 삶이 이제는 조금 버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편리함을 내려놓고 완전한 시골쥐가 될 자신도 없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더 조용한 곳으로 내려가볼까 생각하다가도 현실적인 생각이 따라온다.

‘잠깐, 쿠팡 로켓배송은 오나?’

‘병원은 가까운가?’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으면 차를 한참 타고 가야 하나?’

‘서울에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아니, 이건 뭐지?

내 안의 서울쥐는 이미 짐을 싸서 떠난 것 같은데, 아유.. 난 뼛속까지 시골쥐가 아니었다. 이런 회색 쥐라니.


나이가 들면서 삶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이다. 젊을 때는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찾았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러니 나는 아마 서울쥐도, 시골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늙어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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