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집이 가장 좋은 집이라고 누가 말했나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⑭
제목 : 아기 돼지 삼형제, 집을 짓다
부제 : 벽돌집이 가장 좋은 집이라고 누가 말했나
엄마 돼지가 이제야 보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이야기는 세 마리의 돼지가 집을 떠나 독립하면서 시작된다.
집을 떠나기 전, 엄마 돼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여러 번 당부했다.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릴 때는 삼형제를 떠나보내는 엄마가 사실 안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엄마가 내게 크게 다가온다.
아들 셋을 세상 밖으로 보내는 엄마. 잘할 수 있을까, 다치지는 않을까, 누가 괴롭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몇 번이고 당부했을 것이다. 나는 어느새 그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야기는 집을 짓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첫째 돼지는 짚으로 집을 지었다. 둘째 돼지는 나무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막내 돼지는 벽돌로 집을 지었다. 그런데 늑대가 나타나 첫째 돼지의 짚집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둘째 돼지의 나무집도 날려버린다. 하지만 막내 돼지의 벽돌집은 아무리 세게 불어도 끄떡하지 않는다.
화가 난 늑대는 굴뚝을 타고 내려오고, 막내 돼지는 미리 준비해둔 펄펄 끓는 솥으로 늑대를 물리친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난다.
교훈은 분명하다.
‘집은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도 어릴 적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크고 튼튼한 집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읽게 되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 삐딱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진짜 벽돌집이 제일 좋은 걸까?
짚으로 만든 집도, 나무로 만든 집도, 벽돌로 만든 집도 모두 집인데.
그 누가 첫째 돼지에게 “너는 왜 그렇게 쉽게 집을 지었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둘째 돼지에게는 왜 벽돌을 쓰지 않았느냐고 따질 수 있을까.
진짜 벽돌집이 제일 좋은 걸까?
우간다에서 만난, 숨 쉬는 집
나는 우간다에서 몇 달간 지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집을 볼 기회가 많았다.
시골에서는 짚과 진흙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우간다 전통 가옥을 만날 수 있었다. 영어로는 흔히 ‘허트(hut)’라고 부르는 집이다. 코끼리풀이나 짚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원추형 지붕과 진흙으로 만든 벽. 처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집과는 너무 달라서 소박하다 못해 허술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집을 그저 ‘낡고 가난한 집’이라고 생각하면 놓치는 것이 있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환경에서 흙과 식물성 재료를 이용해 실내의 열을 조절하고 자연스럽게 환기가 이루어지도록 만든 집.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재료가 그들의 환경에 맞는 재료였던 것이다.
물론 내가 들렸던 집의 주인은 지붕의 짚을 새것으로 갈아주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그러지 못한다며 속상해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집을 유지하는 데에도 삶의 무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짚으로 만든 집이 하찮은 집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나무로 지은 집
캘리포니아에서 몇 년간 살면서 집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캘리포니아에는 목조주택이 많았다. 내가 살던 집도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캘리포니아는 지진이 잦은 지역이다보니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경량 목조구조는 구조적 특성상 지진에 대응하기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무는 유연성이 있어 지진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하기 좋을 뿐 아니라 지진으로 무너질 때 콘크리트나 벽돌 건물에 비해 무너질 때 무게가 가벼워 생존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에는 나무가 얼마나 많던가. 그만큼 목조건물 짓기에는 재료도 풍부한 지역이다.
내가 살던 빨간 벽돌집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은 ‘2층 빨간 벽돌집’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와 동생, 삼촌, 고모들까지 대식구가 살던 집. 예쁜 앞마당에 장미넝쿨이 아치를 이루고 있었고, 그 너머 나무로 만든 그네랑 민들레와 진달래가 예뻤던 집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가 초가집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그리고 벽돌집으로 빠르게 변해가던 시절이었다. 새마을운동의 노래에 등장했던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보여주듯, 집의 모습은 시대와 함께 달라졌다. 내가 살았던 빨간 벽돌집도 그 변화 속에 있었다.
세 마리 돼지, 모두 잘 했어~
그러고 보니 아기 돼지 삼형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닐까.
첫째 돼지는 자기가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지었다. 둘째 돼지도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조금 더 튼튼한 집을 지었다. 막내 돼지는 벽돌을 선택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막내가 옳았다. 늑대의 입김 앞에서 살아남은 것은 벽돌집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늑대의 입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야 하고,
어떤 곳에서는 지진을 견뎌야 하고,
어떤 곳에서는 비와 바람을 견뎌야 한다.
그러니 좋은 집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으로 지었느냐보다 무엇을 견뎌야 하는 집이냐가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나는 첫째 돼지도, 둘째 돼지도 혼내고 싶지 않다. 어릴 때는 막내 돼지가 제일 현명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세 마리 모두 대견하다. 집을 처음 짓는 어린 돼지들이 얼마나 고민했을까.
무엇으로 지을까.
어떻게 지을까.
내가 살 집을 어떻게 만들까.
각자의 방법으로 집을 지어보겠다고 애쓴 세 마리의 돼지가 이제는 꼭 내 아들 같고, 딸 같다. 모두 열심히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엄마의 마음이 되어.
그런데 늑대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들려주는 동화가 있다.
존 셰스카의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늑대가 갑자기 억울한 존재가 된다. 늑대의 주장에 따르면 그날 자신은 아기 돼지들을 잡아먹으러 간 것이 아니었단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늑대는 할머니 생신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는데, 하필 설탕 한 컵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아기 돼지들에게 설탕을 얻으러 갔다가 심한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늑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사건도 누구의 목소리로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돼지에게는 무서운 늑대의 습격이었지만, 늑대에게는 억울한 사건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인지 모른다.
어른이 되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게 나이가 들어 좋은 한 가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