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왕이불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자외선 차단 립밤을 꺼내 입술에 발랐다.
"만득 씨, 봤죠? 이것이 바로 지성인의 인력 관리입니다. 자, 아주머니가 섀도 블루 라인을 완성하시는 동안, 우리는 은하네 집 뒷담장으로 가서 '크림 아이보리' 컬러를 시작해 봅시다. 오늘 해지기 전까지 이 마을을 완벽한 털실 감옥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형님... 진짜 대단하구먼유. 점방 아지매를 저리 춤추게 만들다니..."
만득이는 경외감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크림 아이보리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불어온 똥바람에 몸이 휙 밀려 점방 처마 기둥을 다급하게 껴안았지만, 나의 미학적 카리스마만큼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점례 아주머니의 '강제 런웨이 워킹' 덕분에 점방 앞은 순식간에 푸른색 거미줄에 점령당했다. 산그늘 마을의 사람들은 처음엔 이 비실비실하고 싸가지 없는 종이 인형의 기행에 분노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 압도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털실의 촉감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은하의 할머니를 지키겠다는 명분(사실은 내 미적 강박을 채우기 위한 핑계)으로 시작된 이 거대한 장난질은, 낭성면의 무채색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었다.
해가 서산 너머로 꼬리를 감추자, 낭성면 특유의 짙고 서늘한 산그늘이 마을을 덮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어둠이 깔리며 삭막한 농촌의 밤이 시작되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의 산그늘 마을은 달랐다.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부터 점방 앞 평상, 곽두팔 이장님의 경운기, 그리고 마을 안쪽 은하네 집 대문까지. 낭성면 전체가 파스텔 핑크, 라벤더 퍼플, 섀도 블루, 크림 아이보리로 빛나는 거대한 털실 그물망에 포위되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부드러운 메리노 울의 솜털에 반사되자, 마을은 마치 파스텔 톤의 네온사인을 켜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학을 전공하신 어머니가 보셨다면 "포스트모더니즘과 농촌의 해체주의적 결합"이라며 기립 박수를 치셨을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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