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왕이불
이장님이 허리춤에서 시퍼런 낫을 빼 들었다. 만득이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지만, 나는 48.5킬로그램의 연약한 몸뚱이를 꼿꼿하게 세우고 이장님 앞을 가로막았다.
내 펄럭이는 린넨 셔츠가 마치 방패처럼 보였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저 펄럭이는 깃발에 불과했다.
"이장님. 낫을 대는 순간, 이장님은 단순한 기물 파손이 아니라 '국제적 예술 작품 훼손죄'로 구속될 겁니다. 게다가 이거, 전남도지사 카드로 결제한 거 아시죠? 실 타래 한 상자에 이장님 댁 소 한 마리 값입니다. 끊어보시죠. 전남과 충북의 지역 감정이 이 털실 하나로 폭발하는 걸 보고 싶으시다면요."
나의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지독하게 자본주의적인 협박에 이장님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도지사라는 단어의 무게가 낫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긴 것이다.
"너... 너 진짜 돌아버린 놈 아니냐. 대체 왜 이러는 겨? 우리 동네가 무슨 거미줄 쳐진 흉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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