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털실 미로 6/16

조각보 왕이불

by마광훈

마을 입구를 가득 메운 최고급 털실 박스 산맥 앞에서, 나는 전투를 앞둔 장군처럼 비장하게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전라남도를 호령하는 도지사 아버지와 미학의 대가이신 어머니의 피가 끓는 듯했다. 비록 그 끓는 피가 48.5키로그램이라는, 인체의 최소 규격에 해당하는 부피 안에 담겨 있긴 했지만 말이다.


"자, 인류 역사상 가장 부드럽고 4차원적인 물리적 보안 시스템, '메리노 울 미로'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색감 선택부터 하죠."


나는 박스 하나를 황금 가위로 찢듯 개봉했다. 그 안에서 솜사탕처럼 폭신한 '라벤더 퍼플' 컬러의 빅 얀(Big Yarn) 한 타래를 꺼냈다. 수박만 한 크기의 실뭉치는 50킬로가 안 되는 내 품에 과분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장님! 은하네 집 대문 문고리 좀 잡아주세요! 거기가 우리 프로젝트의 시발점입니다!"


"뭐? 문고리를 잡으라고? 야, 이 미친 종잇장아! 난 거름 부으러 가야 한다고!"


곽두팔 이장이 낫을 휘두르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여유롭게 주머니에서 스위스산 고농축 미스트를 꺼내 그의 얼굴 앞에 '치익-' 하고 분사했다. 프랑스산 온천수 미스트는 아니지만, 이것 역시 피부 온도 낮추는 데는 탁월하니까.


"화내면 피부 장벽 무너져요, 이장님. 거름 냄새는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파리 장미 정원 향기로 지워드릴 테니까, 일단 잡으세요. 지금 마을의 아이를 위해 자본주의의 정수인 최고급 울을 직접 묶겠다는데 협조를 안 하겠다는 겁니까? 제 손목 관절이 이 실 무게를 못 견디고 꺾이면 전남도청에서 민사소송 들어갑니다?"


도지사 아들이라는 타이틀과 미스트의 압도적인 향기 앞에, 곽두팔 이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은하네 집 대문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의 입술은 여전히 내가 발라둔 립밤 덕분에 영롱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시각적인 부조화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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