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왕이불
마을 입구를 가득 메운 최고급 털실 박스 산맥 앞에서, 나는 전투를 앞둔 장군처럼 비장하게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전라남도를 호령하는 도지사 아버지와 미학의 대가이신 어머니의 피가 끓는 듯했다. 비록 그 끓는 피가 48.5키로그램이라는, 인체의 최소 규격에 해당하는 부피 안에 담겨 있긴 했지만 말이다.
"자, 인류 역사상 가장 부드럽고 4차원적인 물리적 보안 시스템, '메리노 울 미로'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색감 선택부터 하죠."
나는 박스 하나를 황금 가위로 찢듯 개봉했다. 그 안에서 솜사탕처럼 폭신한 '라벤더 퍼플' 컬러의 빅 얀(Big Yarn) 한 타래를 꺼냈다. 수박만 한 크기의 실뭉치는 50킬로가 안 되는 내 품에 과분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장님! 은하네 집 대문 문고리 좀 잡아주세요! 거기가 우리 프로젝트의 시발점입니다!"
"뭐? 문고리를 잡으라고? 야, 이 미친 종잇장아! 난 거름 부으러 가야 한다고!"
곽두팔 이장이 낫을 휘두르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여유롭게 주머니에서 스위스산 고농축 미스트를 꺼내 그의 얼굴 앞에 '치익-' 하고 분사했다. 프랑스산 온천수 미스트는 아니지만, 이것 역시 피부 온도 낮추는 데는 탁월하니까.
"화내면 피부 장벽 무너져요, 이장님. 거름 냄새는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파리 장미 정원 향기로 지워드릴 테니까, 일단 잡으세요. 지금 마을의 아이를 위해 자본주의의 정수인 최고급 울을 직접 묶겠다는데 협조를 안 하겠다는 겁니까? 제 손목 관절이 이 실 무게를 못 견디고 꺾이면 전남도청에서 민사소송 들어갑니다?"
도지사 아들이라는 타이틀과 미스트의 압도적인 향기 앞에, 곽두팔 이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은하네 집 대문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의 입술은 여전히 내가 발라둔 립밤 덕분에 영롱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시각적인 부조화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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