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털실 미로 5/16

조각보 왕이불

by마광훈

그 거대한 벤츠 화물차들이 멈춰 선 곳은 다름 아닌 은하네 집 앞, 정확히는 어제 내가 서 있던 그 골목 어귀였다. 트럭 문이 열리고 검은색 유니폼을 쫙 빼입은 배송 기사들이 내리자, 나는 얼굴 절반을 가리는 톰 포드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를 쓴 채 우아하게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내 48.5킬로그램의 육신 위로는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한 파리 컬렉션 신상 실크 로브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아, 기사님! 스톱! 스톱! 거기 바닥에 소똥 있어요! 벤츠 타이어에 소똥 묻히면 청담동 돌아가서 세차비가 더 나옵니다. 조심해서 내려주세요!"


나는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손가락을 우아하게 흔들며 배송 기사들을 지휘했다. 기사들은 내 과장된 몸짓에 당황하면서도, 트럭 짐칸을 열고 끝도 없이 쌓인 거대한 종이상자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곽두팔 이장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입술은 내가 어제 발라둔 명품 립밤 덕분에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야, 이 뼈다귀야! 이게 다 뭐여! 나라에서 수해 복구 물자라도 풀었냐? 뭔 박스가 이리 많아!"


"구호물자라니요, 이장님. 낭성면의 처참한 미적 수준을 구원할 이탈리아산 백신이라고 해두죠. 그리고 짐칸 쪽으로 너무 가지 마세요. 트럭 배기구에서 나오는 바람 맞으면 저 날아갑니다."


나는 실제로 화물차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몸이 휙 밀려나, 옆에 있던 전신주를 껴안듯 붙잡으며 대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송 기사 하나가 상자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다 실수로 테이프를 뜯어버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마광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시골 귀촌 1년 차 희망의 엔지니어

8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5화제1장 : 털실 미로 4/16